이명박·박근혜 핵심실세 전방위 수사 줄줄이 구속될 수도

전 정권 핵심 무기구매 주도 뒤 거액 리베이트 정황

천문학적 방산사업 뒤에 감춰진 실세들 하나 둘씩 수면 위로

비정상적 자금 거래 포착…리베이트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도

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일부 협력업체 사이에 비정상적인 자금 거래가 있다는 정황을 포착함에 따라 향후 수사 방향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방산비리에 대해 반역행위로 규정하는 분위기여서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정치권을 휩쓸 수도 있다.

검찰은 비정상적인 자금 거래와 관련해 구체적인 정황을 포착하고 리베이트 등을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 규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21일 “협력업체와 KAI 간 거래에 이상 징후가 몇 가지 발견돼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조금 이상한 거래가 있어 그 부분과 관련해 실무자를 조사하고 자료도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KAI의 수백억대 원가 부풀리기 및 하성용 전 대표 등 경영진의 하도급 업체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KAI와 하청 협력업체 사이의 이상 거래 징후를 포착하고 있다고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의 좁혀지는 수사망

방산비리 수사를 받아온 하성용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지난 20일 오후 열릴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KAI는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새 대표이사를 선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 전 사장이 사임함에 따라 장성섭 부사장(개발부문 부문장)이 새로운 대표이사 선임 전까지 사장 직무대행을 수행하게 된다.

하 사장은 이날 KAI를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KAI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하 전 사장은 “저와 KAI 주변에서 최근 발생되고 있는 모든 사항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KAI 대표이사직을 사임한다”며 “그동안 항공우주산업 발전을 위해 쌓아올린 KAI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지금의 불미스러운 의혹과 의문에 대해서는 향후 검찰 조사에서 성실히 설명드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 전 사장은 앞으로 있을 검찰 수사를 의식한 듯 “많은 분들이 염려하시듯 T-50 미국수출과 한국형전투기개발 등 중차대한 대형 사업들은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 수사가 국가적으로 큰 이익인 KAI의 거래를 방해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풀이된다.

하 전 사장은 “국가 항공산업의 더 큰 도약을 위해 KAI 임직원들이 다시 한 번 매진할 수 있도록 모든 분들의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검찰은 현재 KAI의 수백억대 원가 부풀리기 의혹과 하 전 사장의 횡령 의혹을 포착해 본격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지난 14일 개발비 등 원가조작을 통해 제품 가격을 부풀려 부당한 이익을 챙긴 혐의(사기) 등과 관련해 KAI의 경남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하면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이어 18일에는 협력업체들까지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KAI가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항공기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에 일감을 몰아주고 리베이트를 받는 등의 방식으로 뒷돈을 수수한 의혹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KAI는 다목적 헬기인 수리온,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경공격기 FA-50 등 국산 군사 장비를 개발해온 국내 대표적인 항공 관련 방산업체다.

검찰은 KAI가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고등훈련기 T-50, 경공격기 FA-50 등을 개발해 군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원가의 한 항목인 개발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최소 수백억원대의 부당 이득을 챙겼을 수도 있다고 본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하 전 대표 등 경영진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파헤치고 있다. KAI가 하 전 사장의 측근 인사 업체가 포함된 일부 협력업체에 용역과 항공기 부품 하청 일감을 몰아주는 특혜를 주고 그 대가로 뒷돈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주요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 등 일련의 혐의와 맞물려 2013년 5월 사장에 취임했다가 지난해 5월 연임에 성공한 하 전 사장의 ‘연임 로비’ 가능성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 전 사장 입 다물 수도

​ 검찰은 지난 18일 하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조모씨가 대표로 있는 T사와 KAI 출신인 위모씨가 운영하는 Y사 등 5곳의 KAI 협력업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해 KAI 관련 계약서, 회계자료 등을 대거 확보해 분석 중이다.

검찰은 우선 비자금 조성 여부까지 포함한 경영 비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나서 하 전 대표의 연임 및 수주 관련 로비 가능성 등으로 수사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도 KAI 본사와 협력업체 관계자 여러 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관련 의혹 조사를 벌였다.

전날 KAI 이모 경영지원본부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수사팀은 일단 내주까지는 회계자료 등 많은 양의 압수물과 계좌추적에 주력해 범죄 혐의를 구체화하고 나서 핵심 경영진과 하 전 사장을 순차적으로 소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KAI 비자금 조성 의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 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은 하 전 사장의 비자금 사용처와 로비 등으로 수사가 확대될 경우를 주목하고 있다. 이에 검찰이 전 정권 실세를 정조준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는 지난 20일 이모(57) KAI 경영지원본부장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이 이 본부장을 불러 조사하면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부분은 그가 하 전 사장의 비리를 돕거나 방조했는지 여부다.

이 본부장은 경영지원실장 등 요직을 거친 인물로 검찰은 그가 하 전 사장의 각종 비리를 뒷받침해온 측근 가운데 한 명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이 윗선 수사에 본격 착수한데다 하 전 사장이 이날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하 전 사장 소환이 이르면 다음 주 중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KAI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가 비자금 사용처나 연임 로비 여부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한다. 청와대의 캐비닛 문건 등을 통해 전 정권 실세들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상당수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이 수사의 최종 목표 역시 전 정권의 실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수사 타깃이 하 전 사장을 비롯해 정권 실세 등의 뒷돈 거래를 포함, 지연ㆍ학연 등으로 엮인 전 정권 윗선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KAI는 지난 2013년부터 2년간 52억원 가량의 상품권을 구매했으나 이 가운데 일부는 사용처가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이 이를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시 사들인 상품권 가운데 일부가 군 장성 로비에 쓰인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특히 그 과정에 A사가 개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눈에 띄는 매출이 없던 이 회사가 KAI 협력업체가 된데다 대표가 전직 군 장성 출신이기 때문이다.

KAI가 아닌 다른 기업을 창구로 군 장성에 대한 상품권 로비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아울러 검찰은 하 전 사장이 연임하는 과정에 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그러나 하 전 사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수사가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 전 사장이 자신과의 연관성을 일체 부인하고 침묵으로 일관할 뿐만 아니라 전 정권 실세의 연결도 부인할 경우 이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KAI 측이 원가를 조작해 개발비를 챙기는 과정에서 수백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로비가 이뤄졌다는 의혹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미 KAI 전 차장급 직원 손모씨를 한국형 방위산업 개발과 관련한 외주용역을 자신의 친인척 회사에 몰아줘 수십억 원을 챙긴 혐의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손씨는 처남의 명의로 설계용역업체를 차려 KAI로부터 247억 원 상당의 용역을 맡아 용역비 단가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돈을 가로챈 것으로 검찰조사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수년째 잠적한 손씨가 국내에 머물고 있다고 보고 검거에 집중하고 있다.

앞서 감사원은 KAI가 개발한 수리온의 결함과 무리한 전략화 과정 등을 공개 발표했다.

1조2000여억 원을 들여 개발한 수리온이 결빙 성능과 낙뢰보호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엔진의 비행 안전성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체 내부에 빗물이 새는 문제도 확인됐다.

또, KAI는 수리온에 들어가는 안전 경보 부품에 가짜부품이 들어간 걸 알고도 이를 보고 없이 협력사에 몰래 부품 교체를 지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하성용-무기상 밀월

박근혜 정부의 주요 사정기관들이 하 전 사장을 둘러싸고 불거진 각종 비위 의혹을 알고도 묵인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정황들이 하나 둘씩 수면위로 드러나 주목을 끈다.

하 전 사장이 박근혜 정부의 핵심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라는 소문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 이에 KAI에 대한 수사가 방산비리에 연루된 이전 정부의 핵심 인사들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사정기관이 KAI에 대한 범죄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한 정황이 최근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13년 4월 하 전 사장이 KAI 경영관리본부장 시절 회사 자금을 횡령해 십억여원대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관여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이 관련 의혹의 사실관계 확인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 전 사장이 KAI의 새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경찰 역시 KAI에 대한 여러 첩보를 입수하고 구체적인 내사까지 했으면서도 본격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에도 하 전 사장의 개인 비리 첩보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내용은 결과에서 빠졌다.

검찰 역시 2015년 초 감사원에서 처음으로 수사 참고자료를 이첩받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이달 14일에야 KAI의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일각에서는 KAI에 대한 비리 첩보는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생산돼 사정기관으로 흘러들어 갔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대로 수사한 기관은 없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감사원·검찰·경찰 등 정부의 주요 사정기관에 하 사장의 비리 제보가 거듭 들어갔음에도 본격적인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목할 것은 하 전 사장의 부인이 박 전 대통령과 먼 친척 관계라는 점이다. 이에 하 전 사장이 정권의 비호를 받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도 친박 실세 의원이 “KFX 사업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도 잘 아는 하성용 대표를 만나보라”고 조언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치권 등에서는 과거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에서 과거 KAI의 자금 비리를 포착했으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영향으로 수사를 보류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하 전 사장의 유착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아울러 하 전 사장이 재임하던 때 KAI가 국산 고등훈련기 T-50의 미국 등 수출을 추진하고 있었던 점도 의심을 사고 있다. T-50의 미국 수출은 박근혜 정부가 많은 공을 들인 대표적인 치적사업이라는 점에서 실세들이 사업의 이권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