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이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과거 정부 민정수석실 자료를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밝히고 있다. 박 대변인이 들고 있는 문건은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문건’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국정농단 수사 2라운드 정재계 사정 광풍 몰아치나

최순실 외 정권 실세 각종 비리 연루 정황 담겨

박 정권, 삼성 등 기업 총수들과의 검은 거래 내용도 포착

청와대가 지난 14일 공개한 이른바 ‘캐비닛 문건’에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문건 속에는 전 정권의 여러 비리가 담긴 것으로 알려져 그 파문이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는 박근혜 정부 등 이전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생산한 300종에 육박한 문건을 발견했다며 이날 문건들을 전격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국민연금 의결권과 관련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을 검토한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현재 진행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안에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정유라씨, 삼성그룹이 연루되어 있는 국정농단 사건을 뒷받침하는 여러 내용들이 담겨 있어 이를 둘러싼 여·야간의 공방도 치열할 전망이다.

문건 속에 담긴 비밀들

문건은 정본과 부본, 혹은 한 내용을 10부 복사한 것을 묶은 자료 등이다.

내용별로 보면 ▦2014년 6월 11일부터 2015년 6월 24일까지의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장관 후보자 등 인사자료 ▦국민연금 의결권 등 각종 현안 검토자료 ▦지방선거 판세전망을 비롯해 기타 자료 등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자료 1건도 발견됐다. 이것은 2013년 1월 생산된 것으로, 사무실의 책상서랍 뒤쪽에 들어 있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민정비서관실 공간을 재배치하던 중 7월3일 한 캐비닛에서 이전 정부 민정비서관실에서 생산한 문건을 발견했다. 자료는 회의문건과 검토자료 등 300종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에 따르면 이번 문건은 민정비서관실 캐비닛에서 발견됐다. 캐비닛이 있던 곳은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 부문과 사정 부문이 함께 사용하던 공간으로, 현 정부에선 민정부문 쪽 공간만 사용해 왔는데 문건이 발견된 캐비닛은 사정 부문 쪽에 놓여 있었다.

이 자료들이 발견된 경로에 대해 박 대변인은 “이 캐비닛은 사용하지 않았다. 민정비서관실 인원이 보강돼 공간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캐비닛을 정리하다 자료를 발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문건 가운데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라는 제목의 문건엔 ▦관련 조항 ▦찬반 입장 ▦언론보도 ▦국민연금 기금 의결권 행사 지침 ▦직접 펜으로 쓴 메모의 원본 ▦또 다른 메모의 복사본 ▦청와대 업무용 메일을 출력한 문건 등이 들어 재판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을 검토한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져 정재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대변인에 따르면 자필 메모로 ▦삼성경영권 승계 국면→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며 삼성이 국가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 ▦삼성의 당면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대응 ▦금산분리 원칙규제 완화 지원 등 구체적인 지시사항이 적혀 있었다.

이에 청와대와 검찰 주변에서는 삼성 관련 문건 등의 작성 시기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재임시기라는 점을 지적하며 우 전 수석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을 제시하고 있다.

일명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도 담겨 있다. ‘문화예술계 건전화’라는 문건엔 ▦문화융성 기반 정비 ▦건전 보수권을 국정 우군으로 적극 활용 ▦문체부 주요 간부 검토 ▦국ㆍ실장 전원 검증 대상 ▦문화부 4대 기금 집행부서 인사 분석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비닛문건 정계 쓰나미 예고

또 박 대변인은 “고(故)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자료도 있었다”고 메모 문건을 공개했다.

메모엔 ▦일부 언론 간첩사건 무죄 판결-조선 간첩에 대한 관대한 판사, 차제 정보 수사 협업으로 신속 특별행사법 입법토록→안보 공고히 ▦대리 기사, 남부 고발-철저 수사 지휘 다그치도록 ▦전교조, 국사교과서 조직적 추진-교육부 외에 애국 단체ㆍ우익 단체 연합적으로-전사들을 조직, 반대 선언 공표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김 전 수석의 메모 중 대리기사 건은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으로 추정된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변인은 “이들 자료는 소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원본은 관할인 청와대 국정기록비서관실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고, 복사본 가운데 필요할 만한 내용은 검찰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캐비닛 문건 파문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질 전망이다. 청와대는 지난 14일에 이어 지난 20일에는 삼성물산 합병 의결에 대한 국민연금 동원, 인터넷 포털 통제, 보수세력 육성 의혹 등을 담은 박근혜정부 청와대 문건을 추가 공개했다.

이전 정부 기획비서관실로 쓰였던 현재 국정상황실에서 발견된 것으로 504건에 달한다. 2014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작성됐다.

청와대 문건 공개를 두고 청와대 주변에서는 사정 정국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에서 제1 국정목표를 ‘적폐청산’으로 잡은 것을 고려할 때 문건 공개는 그에 대한 전초작업이라고 보는 것이다.

박수현 대변인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할 것인지, 정부가 개입한다면 의결권 방향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관한 것과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적 경영권 간섭에 대해서는 국민연금 등을 적극 활용하되 정부가 대기업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여지지 않도록 위원 구성을 신중하게 하고 관계 부처는 한목소리로 대응해야 한다’는 표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사실상 청와대가 재판 개입 논란에도 국정농단 재판의 핵심인 박 전 대통령과 삼성 간 ‘거래’ 의혹을 제기한 것이어서 여야간의 공방전도 예상된다.

이어 검찰은 당장 청와대 문건 수사팀 인력을 보강하고 본격 수사에 나사는 등 ‘국정농단 수사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 특수1부가 다시 바빠졌다. 검찰 내 최고 ‘칼잡이’로 불리는 특수1부는 박근혜정부 민정수석실 문건, 면세점 사업자 특혜 선정 의, 수리온 개발 비리를 동시다발로 수사 중이다.

이전 정부의 권력 남용, 경제(기업) 정책, 방위 산업 관련 비리를 모두 특수1부가 도맡아 수사하게 됐다.

지난 18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청와대에서 발견된 민정수석실 문건 일부를 전날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이관받았으며, 이 사건을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에 배당했다.

청와대에서 발견된 박근혜정부 민정수석실의 ‘캐비닛 문건’ 관련 수사는 이전 정부의 권력남용을 정조준하는 방향으로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건 다수가 우 전 수석이 현직으로 재임할 때 만들어진 것임을 감안할 때 우 전 수석과 당시 민정수석실이 주요 수사대상으로 지목될 것이란 말이 검찰 주변에 파다하다.

발견된 문건에는 최순실 국정농단과 연관된 사안이 다수 포함됐다. 수사결과에 따라 우 전 수석 혐의 입증뿐만 아니라 최씨 국정농단의 퍼즐을 맞출 수 있는 주요 단서들이 쏟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은 이유다.

검찰 누구를 정조준할까

검찰은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된 면제점 사업자 선정도 특수1부에 배당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면세점 관련 수사는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졌던 ‘기업 길들이기’가 본격 타깃이 되는 분야다.

박 전 대통령은 물론 경제정책과 기업정책을 담당했던 이전 정권 실세들도 대거 수사 선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돼, ‘제2의 국정농단 수사’로 불리고 있다.

검찰은 관세청 실무자들이 면세점 사업자 선정 평가점수 조작에 왜 가담했는지, 구체적인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진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면세점 선정 평가 과정에서 얼마나 개입했는지가 될 전망이다. ‘재벌 길들이기’ 차원의 평가 조작이었다는 수사결과가 나온다면 상당한 파장이 일수도 있다.

또 수리온 관련 수사도 전 정권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감사원은 전날 수리온이 기체 설계 결함 및 결빙 상황에서 나타나는 엔진 이상 등 비행안전성 문제가 있음에도 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 등이 무리하게 전력화를 시도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감사원은 장 청장과 헬기 사업 담당자 등 3명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법조계에서는 이전 정권의 방위산업 전반에 걸친 비리 수사로 번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방위산업의 특성상 비리가 적발되면 그 규모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고, 국민적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장 휘발성이 강한 수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빠르고 신속한 수사를 위해 현재 특수1부 수사 검사가 8명으로 증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상시 특수부 2개 수준의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사건의 공소유지에 투입된 특수1부가 최씨 딸 정유라씨 사건, 감사원 면세점 수사의뢰 등 여러 중요 사안을 맡아 ‘청와대 캐비닛 문건 사건’의 본격 수사를 앞두고 인력을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특수1부는 특검이 넘긴 민정비서관실 문서와 메모 내용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검찰은 특검이 청와대에서 넘겨받은 정무수석실 발견 문서들도 순차적으로 이첩받아 함께 수사할 계획이다.

여기에 국정상황실과 안보실에서 추가로 발견된 대량의 전 정부 문건도 특검을 거쳐 검찰로 넘어올 전망이다.

청와대가 정무수석실 문건을 가리켜 ‘적법하지 않은 지시 사항’이 있다고 공개한 가운데 이번 수사 성격상 검찰의 칼날은 당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이병기·이원종 전 비서실장을 향할 전망이다. 당시 정책조정수석은 현정택ㆍ안종범 전 수석이다.

추가 수사를 통해 전 정권 청와대 관계자들이 기소될 경우 박 전 대통령도 공모 관계로 추가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