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적폐청산 급물살…코레일 자회사 고질적 비리 문제, 이번엔 바뀔까

자회사, 출자회사는 철도퇴직자 전용 재취업 회사

비정규직 비율 평균 50%에 가까워…코레일테크는 95%

코레일유통, 코레일네트웍스 등 적폐 대상으로

정권 바뀌자 정규직화 시도하는 코레일

지난 4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홍순만 코레일 사장이 퇴임했다. 작년 5월 취임한 홍 사장은 임기동안 성과연봉제, 파업, 비정규직, 재해사고 등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친박인사’ 꼬리표를 달고 있던 홍 사장 사퇴 여론도 높아졌고 결국 코레일을 떠났다.

이제 시선은 5개 자회사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유제복 코레일유통 사장은 홍 사장과 함께 양대노총이 선정한 적폐공공기관장으로 선정됐다. 유 사장 이외에도 나머지 4개 자회사 사장들 역시 모회사인 코레일의 꼭두각시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그간 공공기관을 수익성 관점에서 바라보던 기존 의식을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며 “수익성이 아닌 공공성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밝히면서 철도 공기업에 대해서도 손댈 뜻을 보였다. 그간 코레일 5개 자회사들은 과도한 수익 창출 시도와 비정규직 양산 등 각종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낙하산 인사에 퇴직자 재취업 창구가 된 자회사

사퇴한 홍순만 코레일 사장은 ‘친박실세’로 꼽히던 유정복 인천시장의 측근으로 인천시 경제부시장 부임 7개월 만에 코레일 사장에 지원해 부임했다. 하지만 거듭된 안팎의 사퇴요구에 결국 지난 4일 퇴임했다.

정·관계의 낙하산 인사 뿐 아니라 코레일 자회사가 철도퇴직관료의 일자리로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정감사에서 꾸준히 제기된 문제다. 지난 2014년에는 감사원이 퇴직자 부당채용을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감사원은 “코레일테크는 철도공사 퇴직자 9명을 채용공고나 심사절차 없이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계약직으로 채용했다”며 모회사인 코레일에 지도·감독 방안을 강구하도록 지시했다. 감사원이 지적한 사례 중 하나로는 응시원서 접수기간 내 원서를 제출하지 않은 퇴직자를 면접대상자로 추가한 뒤 이전 사장이 직접 면접해 1급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당시 감사원 인사 조치로 인해 보직 변경된 한 직원은 시간이 지나 다시 복귀해 현재까지 요직에 근무하고 있다.

철도업계에 따르면 보통 철도공사 퇴직자들은 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로지스자회사와 민간자본이 투입된 신세계 의정부역사, 롯데역사 등 출자회사에 재취업하고 있다. 특히 롯데역사의 경우 2014년 3월 강모 임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7월까지 5명의 퇴직임원이 줄줄이 내려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이 회사의 지분은 롯데쇼핑주식회사 및 특수관계자가 68%를, 한국철도공사가 25%를 보유하고 있어 민간 지분율이 높다. 코레일테크의 백종찬 사장은 철도공사 전남본부장으로 퇴직해 롯데역사 상임고문을 거쳐 2015년 3월 코레일테크 대표이사로 취임하기도 했다.

외주화된 자회사…높은 비정규직 비율

코레일 5개 자회사는 높은 비정규직 비율로도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2017년 1/4분기 기준 코레일 5개 자회사의 비정규직 비율은 약 47.4%에 달한다. 전체 직원의 절반 가까운 인원이 고용 안정성을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자회사들의 환경마다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가 있다. 역사 내 편의점 등을 운영하는 유통 부문을 담당하는 코레일유통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은 약 46%다. 하지만 여기에는 코레일유통이 관리하는 편의점 ‘스토리웨이’에 근무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이 포함된 숫자다.

자회사 가운데 가장 높은 비정규직 비율(95%)을 나타내는 코레일테크도 사정이 있다. 철도 궤도 공사, 철도 전기설비 유지· 관리 등 안전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코레일테크는 코레일에서 관련 공사를 수주해 위탁업체와 협업하는 시스템이다. 보통 사업은 2~3년간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참여하는 인원들이 모두 코레일테크의 비정규직이 된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숨은 이유가 있는 셈이다. 코레일관광개발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10%대로 낮은 편이지만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이직율이 20%에 달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곳은 역무업무를 위탁하고 있는 코레일네트웍스다. 코레일네트웍스의 비정규직 비율은 42%이지만 무기계약직까지 범위를 넓히면 정규직 비율은 5%에 그친다. 비정규직을 차치하더라도 코레일네트웍스의 무기계약직은 자회사 가운데 압도적인 수치를 보인다. 이는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전사적 무기계약직 전환 방침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본사인력만 정규직화하고 현장 정규직들은 무기계약직이 돼 버렸다. 직급체계와 급여체계가 바뀌면서 연봉에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알리오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수당 및 복리후생비 포함 정규직 연봉은 4400여만 원, 무기계약직은 2500여만 원으로 2000만원 가까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코레일네트웍스 현장 근로자들은 사측의 중간착취로 인해 다른 민간 업체 위탁 역무원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규직화는커녕 몰래 비정규직 해고를 준비한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은 ‘스마트승차권 자동발매기’ 무인발권기를 도입하면서 직원들이 근무하는 매표창구를 내년 3월까지 전국 경부선 역사 당 한 개씩만 남기고 폐쇄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같은 계획은 매표업무를 위탁하는 코레일네트웍스에 하달됐다. 하지만 현장 관리자들에게 메일로 전달되는 과정에 유출되면서 200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스마트폰이나 홈페이지 등 철도이용고객 스스로 발권하는 비율이 늘면서 매표창구 발매율이 줄어드는 등 고객의 승차권 구입방식이 변화하고 있어 매표창구 일부를 조정하고는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코레일은 매표창구 발권율은 2013년 38% 수준이었으나 올해는 25%로 줄었다는 수치를 내놓았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코레일이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에 강제로 창구 일부를 축소해 직원을 줄이고 무인발권기를 통한 자동발매율을 인위적으로 늘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자동발매율 증가를 내세워 매표 창구 축소를 유도하는 근거로 삼으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노조 측은 “창구 폐쇄로 인해 업무가 사라진 직원들을 위한 재교육과 전환배치, 그에 따른 임금 책정기준들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코레일과 코레일네트웍스의 해명은 변명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전국 철도주차장도 무인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지난해 기준 259명에 달하는 주차사업처 인력을 160여명을 정리해고 해 올해 안까지 109명으로 대폭 감소하기로 했다. ‘철도주차장 무인화’ 계획 역시 전환 배치 등의 대안은 전혀 세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조치에 대해 노조 측은 “사측이 사업계획에 대해 전혀 근로자들과 공유하고 않고 있다. 직원들을 그저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권 바뀌자 정규직화 시도하는 코레일

글로벌경제신문과 데이터앤리서치가 지난달 19일부터 20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적극 추진’이 50.7%, ‘점진적 추진’이 44.1%로 나타났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국민여론이 상당한 찬성을 보이는 모습이다.

이 때문인지 코레일도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레일은 지난달 18일 “코레일 본사와 코레일네트웍스 등 5개 자회사에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운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에서 정규직 전환 관련 가이드라인이 나오는 대로 바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레일은 또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규직화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정규직화 계획 발표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코레일의 태도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노조 측에 따르면 관련 부서 코레일 관계자들 가운데 한 직원은 “문재인 정부의 지침은 5년 내에 비정규직 제로화하라는 거지 당장 하라는게 아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노동부에만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에 적극적이다. 내가 만나본 기재부 담당자들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랬던 코레일이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한순간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코레일의 정규직화 움직임에 대해 자회사의 한 직원은 “보여주기식 정규직 전환을 진행하기 전에 자회사 비정규직 현황에 대한 정부의 면밀한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진정성 있는 정규직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인회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