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이 띄운 배수진…신의 한 수? 악수?

당 대표 돼서 당 주도권 잡는다?…‘극중주의’ 천명

중도 노선 통해 지방선거 수도권 노림수 전략

개헌 지분 확보 깔려 있어…바른정당과의 연대 가능성 솔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8ㆍ27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 재개를 알렸다. 지난 5ㆍ9 대선 패배 이후 86일 만이다. 안 전 대표는 지난 3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의 미래보다 당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면서 “선당후사의 마음 하나로 출마의 깃발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조국을 구하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넌 안중근 의사의 심정으로 당을 살리고 대한민국 정치를 살리는 길로 전진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위기에 빠진 당의 구원투수로 ‘창업주’가 나섰지만 국민의당 내부 분위기는 엇갈린다. 호남의원 8명을 포함 12명의 현역 의원은 안 전 대표 기자회견에 앞서 공동성명서를 내며 “정당정치의 책임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증거 조작 사건에 대선 지도부가 연루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대선 패배의 책임이 덮어지고 정치 복귀 명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성급하고 초조한 마음에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숱한 정치인들의 전철을 안 전 대표가 밟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대 출마를 반대했다. 여기에 박지원 전 대표, 김동철 원내대표 등 당 중진들도 안 전 대표 출마를 반대하고 있다. 일부 동교동계 원로들은 탈당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친안철수계 의원들과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안 전 대표 출마를 반기고 있다. 문병호 전 최고위원은 “안 전 대표가 즐거운 마음으로 출마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담스러운 상황에도 구당(求黨)의 심정에서 나왔을 것”이라며 “결단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원외 지역위원장 109명은 “대선후보로서 안 전 대표의 지도력이 여전히 절실하게 요구받고 있다”며 “존폐 위기에 몰린 국민의당을 위해 출마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당이 술렁이고 있는 가운데 제보 조작 사건으로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밝힌 지 보름 만에, 검찰이 당 지도부는 관련없다고 발표한지 3일 만에 전대 출마를 밝힌 안 전 대표의 결정을 두고 여의도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당 대표 돼서 당 주도권 잡는다?

안 전 대표가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기 전 당권에 도전한 인사는 정동영 의원, 천정배 전 공동대표였다. 당내에서는 이들이 전면에 나설 경우 당 색채가 ‘호남당’으로 굳혀지는 점을 우려했다. 정 의원은 전북 전주를, 천 전 대표는 광주에 지역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또한 과거 민주당의 핵심세력이었다는 점에서 국민의당 창당 당시 내세웠던 ‘새정치’, ‘제3의 길’의 중도 정당 이미지가 퇴색할 것이라는 예상도 이어졌다. 본인들은 선을 그었지만 일각에서는 민주당과의 통합도 미래의 선택지 중 하나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통합까지 가지 않더라도 정 의원과 천 전 대표의 정치 성향을 감안했을 때 국민의당의 모습이 민주당과 큰 차이점을 부각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안 전 대표도 이런 상황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극중(極中)주의’라는 신조어를 얘기하며 분명한 이념과 노선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프랑스를 거론하며 “극중주의로 정권을 잡은 것이 프랑스고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파급될 것이다. 대한민국엔 지난 총선 때 국민들께서 만들어준 국민의당이 있다”며 당의 중도 노선 강화를 강조하고 나서는 모습이었다. 안 전 대표로서는 대선 패배와 제보조작 사건으로 무너진 당을 추스르기 위한 첫 걸음으로 노선 투쟁을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노선 재정비를 통해 당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게 이념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중도 노선 통해 지방선거 수도권 노림수 전략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지역구도 상 국민의당이 노릴 수 있는 지역은 지역구 23석을 차지하고 있는 호남과 중도층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수도권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전국 17개 시ㆍ도지사 광역단체장 중 국민의당이 단 한 곳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루고 있는 현실이다. 때문에 안 전 대표는 당권을 접수할 경우 ‘극중’ 노선을 기반으로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 전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외연을 넓혀서 전국정당으로 우뚝 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는 호남에 국한돼 있는 당의 기반에서 벗어나 중도층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수도권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같은 전략은 오히려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당위적인 목표에 가깝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국민의당 해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정당은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절박함’이 여기에 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가 YTN에 나와 “내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자연스럽게 안철수는 정치권에서 사라지는 것이고 승리하면 다시 한 번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창업주’로서 당과 함께 정치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뜻이다.

개헌 지분 확보 깔려 있어…바른정당과의 연대 가능성 솔솔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념’보다는 개헌 카드가 안 전 대표가 당 대표가 될 경우 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지방선거 출마 예상 후보들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민의당의 상황에서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될 개헌 의제를 안 전 대표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다면 여론이 호의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속 후보들의 선거 결과에도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다. 안 전 대표가 직접적으로 개헌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기자회견에서 5번이나 언급한 ‘제3당’이나 ‘다당제’를 보면 개헌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여당인 민주당을 포함해 바른정당, 정의당 등 거의 모든 정당은 개헌과 함께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군소정당의 열망인 중대선거구제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경우 바른정당이나 정의당과 충분히 협조할 수 있는 사안이다. 당 대표로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의 경우 ‘대여(對與)’ 전선을 구축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카드다. 현재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은 정진석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과 함께 초당적 의원 모임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의당의 일부 친안계 의원들에게도 참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이 주도하는 이 모임은 표면적으로 정책 연구를 목적으로 하지만 개헌론자인 김 의원과 정 전 대표가 의기투합하면서 향후 개헌관련 대여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개헌까지 가지 않더라도 안 전 대표는 최근 여러 인사들을 만나면서 바른정당과의 정책공조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당이 공통적으로 중도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당내 한 인사는 “정책공조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권력구조 및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서 단일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종국적으로는 연대나 통합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라고 바라보기도 했다. 이에 안 전 대표는 출마선언에서 “바른정당과의 연대는 너무 앞서나간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지만 세 확장을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도진보 성향의 호남 의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돼 구상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허인회 기자

-사진 :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당대표 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