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기업 적폐 척결작업 ‘원칙대로’… 재계 ‘사정광풍’ 예고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밀월 기업 본격 사정…KAI 수사 강화

롯데 신 회장 정면 겨냥…면세점 관련 한화ㆍ두산 안심 못해

K-9 자주포 폭발 사고 관련 한화 방산기업 수사 대상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이후 문무일 검찰총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 총장은 그간 ‘하명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던 특별수사 총량을 줄이고 민생과 밀접한 형사부를 강화하는 데 공을 들였다.

문 총장은 어느 때보다 거센 검찰 개혁 요구를 받으면서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취임 후 특별수사 총량을 축소하고 형사부를 강화하는 방침을 정하는 등 자체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전국 41개 지청 단위 특수전담이 폐지됐고,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 규모가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또 검찰총장 직속으로 범죄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또 정부와 국회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 검ㆍ경 수사권 조정 이슈와 별개로 자체 개혁 방안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있다. 이미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여하는 검찰개혁위원회와 수사심의위원회 신설을 약속하고 그 구성을 위한 세부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이명박정부 시절 일어난 ‘대선 댓글 공작’ 사건과 관련, 압수수색을 벌이고 관계자를 소환 조사하는 등 수사를 본격화했다.

또 특검팀으로부터 박근혜정부에서 생산된 이른바 ‘캐비닛 문건’ 일체를 넘겨받는 등 국정농단 사건 추가 수사 가능성을 열어놓는 한편 정·경유착 기업수사를 대대적으로 착수할 전망이다.

전(前) 정권 ‘적폐’ 고강도 수사

이재용 재판 선고 시점과 맞물려 전 정권의 적폐를 겨냥한 검찰의 사정수사가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연이은 검찰 인사와 부서 개편 등을 통해 과거 정부 적폐청산 수사에 적합하도록 전열을 정비한 서울중앙지검은 이명박ㆍ박근혜정부 시절 벌어진 국가기관과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특수4부를 특별공판팀으로 개편해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재판 공소유지 업무를 전담하도록 할 계획이다. 대형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특수부 1개 부서 전체를 재판 대응에 투입하는 건 이례적이다.

국정농단 주요 피고인의 유죄 입증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특수4부장으로 임명된 김창진 부장검사는 특검에 파견돼 삼성그룹 뇌물공여 관련 수사를 맡았다. 애초 특별공판팀 개편을 염두에 둔 인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지난 정부가 전경련 등의 자금으로 보수ㆍ관변 단체들을 부당지원했다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수사를 기존의 형사1부에서 특수3부로 재배당한 것도 수사확대 의도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화이트 리스트’로 불리는 보수단체 불법 지원 의혹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세월호 관련 수사 개입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특검팀에서 블랙리스트 수사를 담당했던 양석조 부장검사가 특수3부장으로 발령된 데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또 검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재수사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검찰은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된 이전 정부 생산 문건에 대한 분석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들 문건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세월호ㆍ선거 등 각종 핵심 내용을 담고 있어 앞으로 재판과 수사에서 결정적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4일 “전날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지난달 청와대에서 발견된 문건 일체를 인계받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문건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국정농단 관련 재판의 공소유지와 수사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이 이번에 특검에서 넘겨받은 자료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보고서 등이 포함된 1차 이첩 자료를 제외한 나머지 문건들이다. 민정수석실 자료 300여건과 정무수석실 자료 1361건, 정책조정수석실 자료 504건이 포함돼 있다.

앞서 청와대가 문건 발견 사실을 공개하면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세월호, 선거, 보수단체 재정 지원 검토 등이 포함됐다고 밝힌 바 있어 앞으로 박 전 대통령 재판의 추가 증거로 제출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朴의 뇌물ㆍ崔의 막후 수사

정치권 일부에서는 검찰이 면세점 사업자 선정 비리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가 재수사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고 전망한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2일 감사원이 고발한 이 사건을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수사 중이다.

특수1부가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주력으로 국정농단 수사를 맡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배당은 의미심장하다. 이에 특수1부로의 배당은 ‘면세점 비리’ 의혹을 국정농단 수사의 연장선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통해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세 차례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특정 대기업에 대한 노골적이고 조직적인 특혜와 배제 정황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칼끝이 또 다시 박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해 계획에도 없던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선정 절차가 진행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앞선 지난 2015년 두 차례 심사에도 박 전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이 개입했는지를 캐는 게 이 의혹 조사의 핵심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두 차례의 이른바 ‘면세점 대전’ 기간 동안 경제수석실 등을 통해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대기업 독과점규제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이에 노골적으로 롯데를 배제 시켰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수사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개입한 정황이 또 한 다시 드러날 경우 ‘면세점 게이트’로 비화돼 국정농단 2막이 시작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탈락한 롯데와 SK가 추가 면허 발급을 통해 구제되는 과정은 이미 특검과 검찰이 진행했던 국정농단 수사의 주요 사안 중 하나였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롯데와 SK에 재단 출연금을 포함해 추가적인 뇌물을 요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잠실 월드타워점 면세점 사업권 재승인 등과 관련해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70억원을 지원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두 차례 면세점 선정에서 탈락한 롯데는 지난해 3월 신 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면담 뒤 추가 사업자로 선정됐고, 검찰은 이를 재단 추가출연금과의 대가 거래로 봤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롯데가 부당하게 면세점 사업권을 뺏겼는지를 규명하는데 검찰이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를 배제하는 과정에 박 전 대통령과 최 씨가 모종의 의사 교환을 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 타깃 가운데 핵심은 천홍욱 관세청장이 지목되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 최씨를 만난 사실을 시인하는 등 비선실세 인사 개입 의혹에도 연루돼 있다. 그는 한때 최씨의 측근이었던 고영태 씨가 비밀 면접을 봤고, 관세청장 취임 다음날 최씨를 만나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말하는 등 여러 의혹을 사고 있다.

사업자 선정에서 반사적으로 혜택을 본 한화와 두산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를 수 있어 대기업 수사로 확대될지도 관심이 쏠린다. 두 기업도 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기업유착 정권비리 척결

이와 더불어 감사원 감사 결과 2015년 1ㆍ2차 면세사업자 선정과정에서 관세청이 조직적으로 평가점수를 부당하게 산정해 특정 업체에 점수를 높게 몰아 준 것이 확인됐다.

감사원은 2015년 1차 선정에서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호텔롯데를 제치고 신규 면세점으로 선정됐고, 2차 선정에서는 롯데월드타워점이 두산에 밀려 재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했던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지난해 면세사업자 추가 선정 결정 배경을 심층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롯데그룹이 면세사업자로 추가 선정된 게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낸 대가라고 결론 내리고,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롯데 측은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의 독대 전 이미 면세사업자 입찰 공고가 결정돼, 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것과 신규 면세사업자 선정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수사를 통해 신 회장의 재판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화와 두산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 기업은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각각 25억원과 11억원을 출연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은 추가 조사를 검토 중이다. 검찰은 한화와 두산이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낸 게 면세사업자 선정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두고 최순실게이트의 한 줄기가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재계에서는 검찰 수사가 한화, 두산 등 대기업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우선 검찰은 감사원이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한 청홍욱 관세청장에 대한 수사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천 청장이 면세사업자 선정 비리에 개입한 것과 관련해 윗선의 청탁이나 압력이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게 이번 수사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특히 최근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의 뇌물 사건 재판에서 청와대가 2차 면세사업자 심사에서 롯데와 SK가 탈락하자 기획재정부에 시내 면세점 수를 늘리고 기존 특허제도를 신고등록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와 검찰 수사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수도 있다.

한화에 대해서는 이미 사정기관의 움직임이 시작된 듯 보인다. 국세청이 한화그룹의 방위산업 계열사 중 한 곳에 대해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 24일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를 방문해 ㈜한화, 한화테크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실에서 세무관련 자료를 요청 및 확보했다. 다만 정확한 세무조사 대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화그룹에는 ㈜한화와 한화테크윈,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등의 방산 계열사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방산비리 수사의 연장선상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최근 KAI(한국항공우주산업)가 방산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다.

방위산업 분야 전반으로 정부의 사정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일단 대기업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한화그룹은 이번 세무조사와 관련해 ‘통상적 조사로 알고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지난 18일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장병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와 이번 조사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세청도 자주포 국내 납품 및 수출 과정에서 탈루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KAI 역시 방산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7월 경남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 협력업체 등에 대해 세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원가부풀리기 및 비자금 조성 등 방산비리, 분식회계, 협력업체 일감 몰아주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 금융감독 원도 KAI에 대해 정밀감리에 착수한 상태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은 심층 및 기획 세무조사만을 전담하는 조직으로, 비자금, 탈세 의혹 등을 집중 조사한다. 이에 이번 조사는 통상적인 조사가 아닌 특별조사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한화테크윈은 그동안 K-9 자주포를 생산했왔다. 현재는 한화테크윈이 지난달 사업분야에 따라 물적분할하며 자회사인 한화지상방산이 K-9 자주포를 생산하고 있다. 존속법인인 한화테크윈은 항공기 엔진ㆍ엔진 부품, CCTV 사업을 맡고 있다. 이밖에 한화시스템은 레이더, 전투지휘체계 등을, 한화디펜스는 전투용 차량, 대공·유도무기 등을 생산한다.

@hankooki.com



윤지환기자 mus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