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본권력 부도덕한 밀착”… 뇌물제공·자금횡령·범죄수익 은닉 사건

특검, 장충기 문자메시지·청와대 지원사격에 ‘일부 승리’, 2심 향방은

법원, 삼성 측 피고인 전원에 유죄 선고

뇌물공여·국외재산도피·자금횡령 등에 유죄 적용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출연, ‘朴-崔 사적이익 추구위한 법인’ 인정

이재용, 징역 5년형 선고… 최지성·장충기도 징역형 선고로 구치소로

법원 “이재용, 승마지원·崔 존재 미리 알고 있었을 것” 판단

이재용 측 경영권 승계 대가로 朴-崔에 뇌물공여… “명백한 유죄”

삼성 측 “강요로 인한 지원” 주장, 받아들이지 않았던 재판부

법조계 의견 분분… “정황상증거·전문증거를 유력한 증거로 보다니…” 지적

2차 독대, “지시는 했는데 보고받지 않았다(?)”… 이재용의 국회 위증 근거로

특검, 장충기 문자-청와대 캐비닛 문건 통한 ‘언론플레이 승리’

향후 삼성그룹 이미지에도 상당한 타격 우려

“3라운드는 없다”… 삼성이 항소심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이유는

세기의 재판 1심이 이재용 부회장 측의 패배로 끝났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법원이 ‘세기의 재판’에서 이재용(49·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에 유죄를 선고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던 나머지 네 명의 삼성 전직 임원들에게도 징역형 및 집행유예가 선고되며, 이 사건 재판의 피고인들에게 전원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의 구형량보다 턱없이 낮은 형량을 선고했지만, 특검 측이 결심공판에서 강조했던 재산국외도피와 이 사건 핵심 혐의인 뇌물공여 부분에 대해서 혐의를 인정했다. 특히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작업 인식에 따라 뇌물을 요구했고, 이 부회장도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를 바라고 삼성 전직 임원들과 공모해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제공했다고 판단한 만큼,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번 판결은 국정농단 사태와 연루된 다른 재판, 특히 뇌물 혐의와 연결선 상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재판부의 이번 선고로 여론은 박영수 특검의 표현대로 ‘고질적·전형적 정경유착’에 엄벌을 놓은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여러 정황상증거를 재판부가 판결에 큰 비중을 둔 ‘이례적 판례’라고 지적하며, 향후 정치권과 법조계에 설왕설래가 발생할 여지도 남겨 뒀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번 1심 공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특검과 삼성 양측이 100% 항소할 것으로 예측했던 만큼, 겨우 1라운드가 끝났을 뿐 항소에서 뒤집을 가능성도 낮지 않고 향후 파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목소리도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법원의 이번 판결로 다른 전직 임원들과 함께 구치소로 돌아가야 하는 이재용 부회장 측이 패배한 ‘진짜 원인’을 두고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뇌물공여 등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공소사실에 대한 특검과 삼성 측의 쟁점 사항 그리고 피고인 측에 주어진 혐의에 따라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혐의는 총 다섯 가지로 뇌물공여와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우선 이 사건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부정한 청탁의 구성에 부분에 대해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 자리에서의 명시적 청탁 부분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삼성 측의 최순실씨 측에 대한 금품 제공의 발단이 된 2015년 7월 25일 대통령 독대 이전에 이뤄졌고, 안종범 수첩에도 관련 사항이 기재돼 있지 않았다. 이에 독대 자리에서 두 회사의 합병을 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청탁이 오고 갔다는 주장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로의 전환 관련해서도 단순히 검토 의뢰만을 한 부분을 청탁으로 볼 수 없으며, 이 부분 역시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삼성 측의 그룹 내 미래전략실을 통한 박 전 대통령 측에 묵시적 청탁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단지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등의 과정을 삼성 측 주장과는 다르게, 지배구조가 단순화되고 사실상 삼성물산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됐으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을 통해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모든 과정들을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으로 인정했다.

이어 김진동 부장판사는 이 사건 핵심 기소내용인 부정청탁 여부에 대해서도 낭독하기 시작했다.

우선 삼성 측의 최순실씨 모녀에 대한 승마지원에 대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와의 공모관계에 대해 인정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승마지원 요구 뒤 그 진행과정 및 이것이 최씨의 딸 정유라(21)씨에게도 이어질 것이란 점을 알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삼성 측의 최씨에 대한 이익 제공이 ‘은밀히’ 이뤄졌다며,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충분히 인식한 상태에서 승마지원이 이뤄진 만큼, 이것이 직무대행 대가로서 금품을 제공한 ‘묵시적 청탁’에 해당한다는 부분을 인정했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독대 이후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이 진행되는 동안 피고인 이재용에 피고인 최지성, 박상진은 대통령의 요구를 전달했고, 이재용이 이에 따른 지시를 한 점이 인정된다”라며 “피고인 이재용의 승마지원 행위 및 관여를 인정하며, 피고인 이재용은 공모 하에 기능적 행위 지배를 했다고 판단한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씨가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 승마용역회사인 코어스포츠와 삼성과의 용역계약을 뇌물제공으로 인정하면서 용역대금 및 마필대금 약 76억원 상당 부분을 유죄로 봤다.

다만 용역계약 뒤 코어스포츠 측이 사용했던 삼성 소유 차량 대금 5억원에 대해서는 뇌물공여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뇌물에 대한 삼성 측 횡령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마필 살시도와 차량 대금 송금 관련은 무죄, 나머지 64억원에 대해서는 유죄라고 설명했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특검 측이 결심공판에서 강조했던 재산국외도피에 대해서도 유죄로 인정했다. 코어스포츠가 실체가 전혀 없는 페이퍼컴퍼니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했지만, 삼성 측이 자본거래 신고를 하지 않은 채 탈법적 수단으로 용역대금을 최씨 측에 송금한 부분은 재산국외도피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특히 재판부는 삼성과 최씨 간 ‘말 세탁’ 부분을 허위계약으로 정의하면서 범죄수익 처분 부분에 해당하며 이 역시 유죄라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동계스포츠영제센터 부분에 대해서도 ‘공익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지원’이라면서, 이 역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앞두고 진행된 뇌물제공 부분으로서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 국회에서의 위증죄 부분 역시 유죄로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최씨 측에 대한 승마지원 사실을 보고받지 못 했다고 증언했지만, 안종범 수첩에 명시된 부분과 이후 작성된 대통령 말씀자료 등을 통해 이 부회장이 자금출연을 보고받고 최씨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자금출연 부분에 대해서는 해당 재단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법인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아무리 박 전 대통령이 삼성 측에 문화와 산업융합 그리고 스포츠 발전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취지로 해당 재단에 대한 자금출연을 요청한 것을 직무집행으로 인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해당 재판에 이재용 부회장 측이 적극적으로 자금을 출연하려 했다는 점을 부정하며 해당 재단 자금지원은 무죄로 봤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번 사건은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던 삼성 임원들이 대통령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하고 자금 횡령, 국외에 재산을 도피하고 범죄수익을 은닉한 사건”이라며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밝혔다.

이어 “뇌물 공여 과정에서 자금을 횡령하기도 하고, 승마지원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왜곡된 방법 사용했다”라며 “피고인 이재용은 삼성의 사실상 총수로 다른 피고인들에게 승마지원 등을 지시하고 이 사건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며 국회에서도 허위 증언을 하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이와 같이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주문을 낭독한 뒤 선고를 내렸다.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 최지성(66)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에게 징역 4년, 장충기(63)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징역 4년 그리고 박상진(64) 전 삼성전자 사장(전 대한승마협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마지막으로 황성수(55) 전 삼성전자 전무(전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전 삼성 미전실장, 장충기 전 삼성 미전실 차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사진=연합)
재판장의 형량이 발표되자마자 방청석을 일제히 술렁였고, 최지성 전 실장과 장충기 전 사장은 법정 구속됐고,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는 굳은 표정으로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서있었다.

‘피해자’ 아닌, ‘공범’으로… 삼성의 뇌물죄 인정한 재판부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 등에 판결한 형량은 특검 측의 구형량보다는 낮은 수준이었다. 앞서 지난 7일 열린 이 사건 재판의 결심 공판에서 특검 측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12년 그리고 최지성 전 실장과 장충기 전 차장, 박상진 전 사장에게 각각 징역 10년, 황성수 전 전무에게는 징역 7년을 구형한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 유죄 판결의 핵심 이유로 뇌물공여 부분 등을 인정하며, 특검 측 주요 기소내용에 힘을 실어줬다.

앞서 특검은 삼성 측의 최순실씨 모녀에 대한 승마지원을 ‘단순 뇌물죄’ 그리고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은 ‘제3자 뇌물죄’로 기소했다.

단순 뇌물죄의 경우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해 대가성 금품을 받을 경우 혐의가 성립된다. 그런데 제3자 뇌물공여죄의 경우 대가성외에도 ‘부정한 청탁’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특검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 측에 뇌물을 요구하고 최씨는 이를 받는 관계로, 삼성 측이 제공한 금품 총 298억여원(약속액 433억여원)의 직접 수수자는 최씨지만, 사실상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하고 옷값 등을 대신 지불하는 등 두 사람이 뇌물수수 공동정범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어 이재용 부회장 측이 최씨에게 뇌물을 건네는 대신, 자신의 삼성그룹 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합병 찬성 등에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청탁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후 실제로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과 삼성 바이오로직스 상장 등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현안들을 청와대의 도움을 통해 성사시키며, 이를 이 사건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판단하는 부정한 청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삼성 측은 경영권 승계 등의 대가를 전혀 바라지 않고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측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원한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단순히 ‘후환이 두려워서’ 거액의 지원에 나섰다는 주장도 이미 판례상 뇌물공여죄 성립에 해당할 수 있는 사항이었다.

무엇보다 최씨 측에 대한 승마지원이 이뤄지기 전, 최지성 전 실장과 장충기 전 사장 그리고 박상진 전 사장 등은 최씨의 존재와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및 영향력 등을 어느 정도 인지한 채 지원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법원은 삼성 측이 '공모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금품을 제공했다는 부분을 무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연합)
때문에 설령 박 전 대통령 측의 강요가 있었을 지라도 향후 파장을 막기 위해 거액의 자금을 제공한 것은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반대급부를 기대하며 건넨 뇌물로밖에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물론 재판부의 판결을 두고 법조계와 여론에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보통 뇌물공여 혐의 사건이 확증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두 사람만의 ‘밀실’에서 오고 간 이야기가 뇌물공여의 발단으로, 정황상증거나 합리적 추정이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의 사례로 남아 향후 기존 판례에서 증거 효력이 크게 인정되지 않았던 전문증거와 정황상증거의 적용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재용은 몰랐다(?)”… 설득력 떨어졌던 삼성 측 주장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유죄를 인정한 만큼, 삼성의 최씨 측에 대한 지원도 이 부회장이 인지한 상태에서 이뤄졌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때문에 모든 지원에 있어 “이재용은 몰랐다. 내가 다 알아서 했다”라는 최지성 전 실장의 주장도 정황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사실 삼성 측의 최씨 모녀에 대한 승마지원 부분은 ‘지시를 한 사람이 지시에 대한 결과를 보고를 받지 못한 꼴’로 삼성 측 주장에 설득력이 결여된 것이 사실이었다.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15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간의 소위 ‘2차 독대’ 때, 이재용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올림픽 승마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심한 질책을 받았다.

이에 이재용 부회장은 오후 4시 30분 삼성 서초사옥에서 최지성 전 실장과 장충기 전 사장 그리고 박상진 전 사장과 긴급회의를 열었다.

박상진 전 사장의 이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 당시 긴급회의에서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승마협회 부회장과 총무이사를 각각 맡고 있던 삼성전자 이영국 상무와 권오택 부장이 문제가 많아 교체를 지시했다고 말하면서, 박 전 사장에게 “왜 대통령에게 야단을 맞게 하느냐, 승마지원 좀 잘 해달라”라고 강하게 질책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상진 전 사장은 곧바로 이영국 상무의 승마협회 부회장을 황성수 전 전무에게 넘기면서 교체가 완료됐다.

동시에 장충기 전 사장은 안종범(58·구속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연락해 올림픽 승마지원 방법에 대해 문의했고,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김종(56·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김종찬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를 통해 알아보면 된다는 지시를 받고 이를 장충기 전 사장 및 박상진 전 사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상진 전 사장은 장 전 사장의 지시대로 김종 전 차관과 김종찬 전 전무를 만나 승마협회 문제와 올림픽 승마지원에 대해 상의했고 이들로부터 “박원오라는 사람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최순실씨의 승마계 측근으로 당시 최씨 및 정씨와 함께 독일로 건너가 정씨의 승마훈련을 돕고 있었다. 그는 이후인 2015년 8월 26일 코어스포츠와 삼성전자 간 용역계약 체결 과정에서도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박 전 사장은 독일에 가서 박원오 전 전무를 접촉했고, 귀국 후인 2015년 8월 3일 삼성 서초사옥에서 관련 대책회의가 열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대책회의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상진 전 사장은 독일에서 박원오 전 전무를 만나 최순실씨의 존재, 그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 그리고 그의 영향력에 대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박상진 전 사장은 대책회의에서 참석자들에게 “대통령과 관계에 있는 최서원(최순실의 개명 후 이름)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 때문에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질책하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성수 전 전무도 법정에서 “박상진 사장으로부터 박원오 뒤에 최순실이라는 실세가 있다. 최순실이 대통령과 굉장히 가깝고 조심해야 할 인물”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장충기 전 사장도 “최순실이 (삼성에 대한) 험담을 해서 대통령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라며 “최순실의 요구를 거절하는 경우 어떤 사태가 닥칠지 모르니 최지성 실장이 전체적으로 상황을 들으시고, 최순실의 요구를 안 들어줬을 경우의 리스크와 여러 가지 비용 부담을 판단하셨다”라고 증언했다.

이어 장 전 사장은 “그때 최지성 피고인이 ‘이 요구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최서원의 요구대로 추진하라는 최종결정을 했는가”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여기서 ‘최씨의 요구’는 삼성이 박 전 대통령의 올림픽 승마지원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박원오 전 전무가 제시한 한국승마중장기로드맵에 따라 우수선수를 선발해 독일에 승마훈련을 보내고, 이중 정유라씨를 포함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측 전직 임원들은 이날 대책회의에 이재용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았고, 최씨 측에 대한 지원도 최지성 전 실장의 판단 하에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들이 크게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최씨 측에 대한 승마지원을 하자는 판단이 서기까지 박 전 대통령의 질책에 이어 이재용 부회장의 자신이 왜 질책을 맞았는지 이를 해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다시 말해,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질책 받은 사항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했지만, 그 중요한 조치 결과에 대해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정황상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이는 재판부가 이 부회장이 당시 최씨의 정체와 승마지원에 대해 인지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때문에 국회에서 위증 혐의도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6일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최씨의 존재를 인식한 시점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라며, 지난해 2월경 정도 알게 됐다고 했고 당시까지 최씨 측에 대한 지원 역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적절한 언론플레이 & 청와대의 ‘지원사격’

재판이 한창 진행되면 특검 측의 주장이 삼성 측 방어논리에 상당히 고전한 것이 사실이었다.

첫 번째 공판에서 박영수 특검이 “증거가 차고 넘친다”라며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유죄를 확신한 만큼,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 5월 증인신문이 시작된 후 특검 측의 주장이 추측과 전문증거 그리고 정황상 증거에 지나치게 머문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비장의 카드’로 주목 받았던 안종범 수첩이 ‘재전문증거’로서 재판부로부터 간접증거로 채택되며 재판의 양상이 삼성 측으로 기울어 간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안종범 전 수석도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지난 2015년 7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독대가 끝난 뒤,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이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 관련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에 특검 측은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며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증언대에 세웠고 재판의 양상을 뒤집으려 했지만, 박 전 대통령과 최씨 그리고 삼성 간 공모 관계 그리고 뇌물공여 부분에 대한 결정적 증언을 얻을 수 없었다.

심지어 정씨마저 삼성 측의 승마지원이 ‘자신만이 아닌 다른 선수들도 지원하려 했다’라는 취지의 증언을 하며 삼성 측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꼴이 됐다.

이어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의 증인 신청을 두 차례나 실패했고, 최씨를 증언대에 세웠지만 그가 뜬금없는 증언거부에 나서며 허탕을 쳤다.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유죄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특검 측은 공판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지난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압수했던 장충기 전 사장의 휴대전화 속 문자메시지 상당 부분을 재판정에서 공개했다.

사실상 특검은 '장충기 문자메시지'를 재판 승기를 잡기 위한 언론플레이용으로 적절히 활용했다. (사진=연합)
해당 문자메시지에는 다수의 언론사가 장 전 사장에 광고협찬을 요구하거나 취업 청탁을 하는 내용과 함께, 삼성 측의 포털 뉴스 장악으로 의심되는 문자 그리고 한 대기업 대관업무 인사와 주고받은 삼성물산 합병 관련 문자 등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물론 문자메시지 대부분은 이 사건 공소사실과 큰 관련이 없는 내용이었고, 변호인 측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재판부도 “재판 마무리 단계에서 정보수집 하며 시간 보낼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제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 방청석에서 취재 중이던 수십명의 기자들은 이를 받아 적은 상태였고, 언론 보도를 통해 장 전 사장의 문자메시지가 일파만파로 퍼졌다.

이에 정치권을 비롯해 여론의 비난이 삼성 측으로 향했고, 공소사실과 관계없는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며 ‘삼성을 엄벌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동시에 청와대의 지원 사격도 특검 측에 힘을 실어줬다. 삼성 재판의 증인신문이 마무리되는 시기에 맞춰, 청와대 측은 이른바 박근혜 정부 시절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캐비닛 문건’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는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내용이 기재돼 있었고, 이는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우병우(50·불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며 파장이 일었다.

이에 특검 측은 해당 캐비닛 문건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고, 이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모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물론 이 전 행정관은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우병우 전 수석으로부터 삼성 관련 현안에 대해 파악해보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삼성 승계를 도우라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이라는 기사들이 많이 나와 승계를 위주로 삼성 현안을 파악해 보고한 것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때문에 청와대 측의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지시했다는 혐의를 입증하기에 부족했고, 재판부 역시 해당 캐비닛 문건을 안종범 수첩과 같이 간접증거로 채택했다.

모든 진실과 유무죄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명확한 실체적 증거로 법정에서 가려져야만 한다. 그러나 공소사실과 관련 없는 문자메시지가 재판정에서 공개돼 언론을 타고 퍼졌고, ‘확대 해석’의 소지가 있는 문건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삼성 측에 유죄를 내려야 한다는 여론은 이미 조성된 상태였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측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들은 최선을 다했다. 무려 50회가 넘는 이례적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매회 공판 취재에 나섰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태평양 변호사들의 철저한 반론과 관련 증거확보를 통해 특검 측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거나 심지어 공소사실마저 변경시키는 등, 이 부회장 등의 무죄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다수 나오기도 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아무리 철저한 변론이 있었을지라도 특검 측의 고난도 언론 플레이와 청와대의 지원사격은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이었다.

“3라운드는 없다”… 항소에서 승부 봐야 하는 이재용

이에 일각에서는 법원의 1심 판결이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심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정치권 다수와 촛불민심의 목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유죄와 탄핵의 정당성인 만큼, 만약 이번 이재용 부회장 측에 무죄가 나왔다면 향후 제2의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열려 국론의 재분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고 문재인 정부의 지지도마저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 측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방어논리를 갖춘 채 53회의 공판을 헤쳐 나갔을 지라도, 재판정 밖에서 만들어낸 불리한 조건과 함께 내려진 판결로 억울하겠지만 어쨌든 받아들여야 하는 결과라는 목소리다.

물론 삼성 측은 재판부의 선고 후 특검과 삼성 양측은 즉각 항소 의사를 내비친 상태다. 이미 삼성 측 관계자들은 이번 재판이 올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고, 1심 판결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겨우 ‘1라운드가 끝난 상황’이라는 의미다. 재판정 밖에서의 압박이 비교적 수그러든 상태인 항소심에서 그 동안의 증거와 대응논리만으로 1심 판결을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만약 항소심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현재 5년형에서 3년 이하로 형을 낮춘다면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고, 1심 재판과정에서의 대응논리를 보완한다면 무죄도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뒤 다시 구치소로 돌아가고 있다. 물론 항소심에서 최소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진=연합)
법조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측이 항소를 한다고 할지라도 “상고는 없다”는 태도로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내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새 대법원장으로 대표적 진보성향 법관인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지명하며, 대법원이 진보 성향 법관으로 대거 교체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를 통해 ‘대통령과 재벌도 엄벌할 수 있는’ 사법부 개혁을 외치고 있는 만큼, 이 부회장 측이 항소심에서 승부를 보지 못한다면 향후 대법원에서 다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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