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여론조작사건 전 정권 전방위 수사…국면 전환 가능

자원외교-방산비리-최순실게이트 관통하는 진실 나오나

검찰이 8월 30일로 예정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법원에 변론 재개를 요구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 등에서 이른바 ‘국정원여론조작사건’ 수사가 전 정권에 대한 전방위 수사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법원이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태스크포스(TF)가 밝혀낸 원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정황이 기존 공소사실에 보태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재판이 원 전 원장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물론 국정원 수사에 단초를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4일 원 전 원장 사건 담당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에 “선고를 뒤로 미루고 변론을 더 열어 달라”고 신청했다.

중앙지검 박찬호 2차장검사는 “변론 종결 후 국정원 TF가 사이버 외곽팀 등에 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며 “기존에 극히 일부만 파악된 민간인 외곽팀의 규모·실상이 확인돼 공판에 반영할 필요가 생겼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변론이 재개되면 검찰은 곧바로 원 전 원장의 공소장 변경작업을 착수하게 된다.

검찰 전 정권 겨냥

검찰은 원 전 원장이 2012년 12월 국정원 심리전단 조종을 받는 30개 사이버 외곽팀 팀장들과 공모해 18대 대선 선거운동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추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끝난 18대 대선이 실은 정보기관 직원들의 댓글 공작으로 결과가 왜곡된 것임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특히 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 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한 것을 전후해 대통령을 지지하는 토론글 6000건을 다음 아고라에 올려 10만여명이 열람했다는 내용과 4대강 사업 비판 여론에 대한 반론을 트위터 등에 퍼뜨렸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변론 재개 신청과 동시에 검찰은 30개 사이버 외곽팀 팀장 소환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국정원의 여론조작이 이뤄진 시기에 심리전단 안보5팀 3파트장을 지낸 장모씨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최근 국정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으면서 심리전단의 활동 상황 등이 기록된 내부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에는 보수성향 파워블로거와 논객의 육성, ‘좌티즌’과 ‘북(北)바라기’ 등 용어의 확산, 보수성향 인터넷방송의 개국 등 내용이 포함됐다.

30여개에 달하는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한 팀장급 인사들이 대부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단체였던 것으로 드러나 검찰 수사는 향후 정국을 흔드는 태풍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적폐청산 TF 발표에 따르면 사이버 외곽팀으로 불리던 민간인 댓글 부대는 원 전 원장 시절 심리전단 산하에서 2009년 5월부터 18대 대선이 있던 2012년 12월까지 30개 운영됐다. 이 중에는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를 비롯해 이명박 전 대통령 지지단체인 늘푸른희망연대,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자유주의진보연합, 한국자유연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늘푸른희망연대는 2007년 대선 당시 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명박과 아줌마부대’라는 이름의 사조직에서 명칭이 바뀐 단체로, 이명박 정부 시절 행정안전부의 공익활동지원사업에 선정돼 특혜 논란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 활동에 대한 여러 첩보와 국정원 파일도 확보했다는 말이 사정기관 주변에서 돌고 있다.

중앙지검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에서 발견된 ‘캐비닛 문건’ 전부를 입수해 공소유지와 추가 수사에 활용키로 했다. 문건은 △삼성 합병 및 경영권 승계 지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집행 △보수단체의 관제데모 비용 지원 등에 지난 정부 청와대가 깊숙이 관여한 정황을 담고 있다.

현재 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가 박근혜정부의 면세점 사업자 선정 비리 의혹을,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가 보수단체 관제데모 지원 등 화이트리스트 의혹을 각각 수사 중이다. 특수4부(부장검사 김창진)는 소속 검사 전원이 박 전 대통령 공소유지에 투입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전반에 벌어진 비리행위 수사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윤석열 검사장이 이번 사건을 진두지휘하게 되면서 검찰의 칼 끝이 이 전 대통령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앞서 검찰은 지난 22일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의 ‘민간인 댓글 부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김성훈 부장검사)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공공형사부ㆍ공안2부 소속과 일선 검찰청에서 파견된 검사 등 10여 명으로 구성됐다.

김성훈 공공형사수사부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의 공소유지를 그동안 맡아왔다.

국정원 파일은 판도라상자

검찰은 과거 원 전 원장을 재판에 넘길 때 적용했던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외에 새 혐의를 찾는 데도 주력할 예정이다.

2012년에만 외곽팀에 들어간 국정원 자금이 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국가 예산을 들여 댓글부대를 운영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원 전 원장에게는 횡령 또는 배임,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검찰은 또한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받는 외곽팀장들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 영장 범죄 혐의에 공직선거법 위반도 적시했다.

검찰이 외곽팀장들에게 이 같은 혐의를 적용한 것은 이들이 지난 18대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과 공범일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향후 수사과정에서 추가 혐의가 드러나거나 관련 자료가 확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명박과 아줌마부대’ 차미숙(56) 대표 등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운영한 '사이버 외곽팀'에서 활동하며 여론조작에 가담한 정황이 의심되는 인물들을 상대로 본격 조사에 착수했다.

국정원의 민간인 동원 여론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지난 24일 “어제와 오늘 국정원이 수사의뢰한 외곽팀장 등 일부 관계자들에 대해서 소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환자 중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단체에서 활동한 차미숙 대표가 포함됐다. 그는 2007년 ‘이명박과 아줌마부대’라는 팬클럽을 결성해 대표(부대장)를 맡았고, 2009년에는 정부·지자체의 정책 모니터링을 명목으로 ‘사단법인 늘푸른희망연대’를 설립한 인물이다.

늘푸른희망연대는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의 조사에서 민간인 댓글 부대인 ‘사이버 외곽팀’으로 활동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검찰은 전날 늘푸른희망연대도 압수수색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압수수색 당일부터 핵심 의혹 대상자들을 대거 불러 조사한 것을 두고 속전속결로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 검찰은 전날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일부 단체의 회의록, 업무 수첩 등과 컴퓨터 하드디스크 자료 분석에 주력하면서 자금추적을 통해 국정원과 외곽팀장들 사이의 돈 흐름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은밀한 자금 흐름 추적

국가정보원 적폐청산TF는 극우단체 지원 관여 등 13개 적폐에 대해 재조사를 벌이고 있다. 국정원TF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극우단체를 ‘관제 시위’에 동원하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들 단체에 활동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에 대해 살피고 있다.

퇴직 경찰관 135만명(정회원), 현직 경찰관(명예회원) 등 150만명 모임인 재향경우회의 ‘관제데모’ 및 ‘극우단체 지원 의혹’이 밝혀질 경우 댓글수사가 관제대모 수사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어버이연합은 경우회가 자금지원을 했던 곳이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실에 따르면 경우회는 어버이연합에 2014년 4월부터 11월까지 39차례에 걸쳐 2500만원을 지급한 의혹이 있다. 또 2014년 12월부터 2015년 3월까지는 어버이연합, 탈북난민인권연합 등에 3차례에 걸쳐 1700만원을 지급했다.

2015년 2월 12일 당시 국정원장이던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재향경우회를 포함한 보수단체 대표들을 만나 ‘지원창구 단일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우회는 국정원 댓글사건 및 NLL 회의록 유출에 대한 촛불집회가 열리자 맞불집회도 무더기로 주최했다. 경우회는 2013년 8월부터 5개월 동안 1303회에 걸쳐 집회신고를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한민국재향경우회법’ 제5조는 “경우회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고 ‘정치활동’이라는 표현도 포괄적이고 모호해 경우회의 관제데모 및 극우단체 지원 의혹은 처벌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경우회 측은 “사실이 왜곡된 내용”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특정인에 대한 지원이나 네거티브를 위한 정치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 수사는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오프라인 심리전’을 위해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 만든 단체인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에 자금을 지원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부터 사무실 임대료와 상근자 월급 등의 명목으로 약 1년간 이 협의회 한 지회에 5000만원 안팎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온라인 여론조작과 마찬가지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자금출처라는 점은 주목을 끈다.

이 협의회는 2010년 8월 안보교육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서울사무소와 대전·부산·경남 등 11개 지회를 두고 있었고, 국정원은 다른 지회에도 비슷한 수준의 지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이 예산 지원과 안보강사 일정 등 일체를 관리한 주체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hankooki.com

<박스>

'핑크스턴 보고서' 원세훈 3대 '병적증상' 지적

지난 2014년 발간된 국제위기그룹(ICG)의 한 보고서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이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임 시절에 국정원 내부에 나타났던 문제들을 제3자인 국제 비영리기구의 관점에서 지적해낸 것이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대목은 원 전 원장 재임 기간 ‘약 10명’의 국정원 요원이 사기 저하로 자살했다는 미확인 내용까지 실렸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시선을 끈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분쟁예방 비영리조직인 ICG(International Crisis Group)는 2014년 8월 '한국 정보기관 병적증상의 위험성(Risks of Intelligence Pathologies in South Korea)'이라는 총 45쪽 분량의 보고서를 펴냈다.

미국 트로이대학의 북한 군사문제 전문가인 대니얼 핑크스턴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는 당시 국정원이 ▲정보활동 실패 ▲정보의 정치화 ▲국내 정치개입 등 3대 '병적 증상'을 앓았다고 지적했다.

ICG는 이 같은 국정원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원 전 원장이 정보 분야에 밝지 못했다는 점을 꼽았다.

보고서는 “정보 분야와 관련한 원 전 원장의 경험 부족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에게도 명백한 부분이었다”며 ‘원세훈이 능력 밖의 일을 맡았고 정보기관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는 전직 고위관료의 발언을 인용했다.

이 전직 고위관료는 심지어 ‘원세훈이 제공한 정보는 썩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다른 자료와 정보들을 찾아봤다’고까지 말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에는 “원 전 원장이 청와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고위관료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붕괴 직전이니 갑작스러운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며 “참석자들이 그 근거를 물었지만 원 전 원장은 아무것도 대지 못했다”고도 적혀 있다.

또 보고서는 다른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원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의 사기가 곤두박질쳐 약 10명의 국정원 요원이 자살을 했다고 말했다"는 것도 언급했다.

ICG는 보고서를 통해 원 전 원장 재임 중의 국정원뿐만 아니라 이후 국정원의 내부 개혁과 관련한 행보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ICG는 보고서가 나올 무렵인 2014년에 국정원이 연루됐다는 의혹과 함께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을 국정원의 대표적인 정보활동 실패 사례로 열거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을 비롯해 2012년 대선 당시 온라인 뉴스에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내용의 댓글을 다는 데 국정원이 동원된 의혹 등이다.

2013년 말 국정원 개혁 작업과 관련해서는 “2013년 12월 남재준 원장은 자체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법 개정은 필요 없고 내부 조치만 요구된다고 했다"며 "한 페이지 반짜리 문서로 요약된 개혁안에는 네 가지 포인트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한 자체 개혁안은 국회·정당·언론사 정보관(IO) 상시출입 제도 폐지, 전(全) 직원 정치개입 금지 서약 제도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때 여야는 사이버심리전 처벌을 명문화하는 등의 별도의 국정원 개혁안에도 합의했다.

개혁안을 실행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이보다 8개월이 지난 뒤에 나온 보고서는 국정원 개혁을 회의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ICG는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의 대통령과 국정원의 관리자들은 국정원의 진지한 개혁에 관심이 없다"면서 "(국정원 개혁은) 자신들의 권력이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에서 국정원이 보고한 주요 정보가 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고서는 "(대한민국) 국회는 정보 유출로 악명이 높다"면서 전직 의원의 말을 인용해 "국정원이 국회의원에게 말해주는 정보는 거의 다 새기 때문에 국정원도 (의도적으로) 누설되기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정보를 숨긴다"고 적고 있다.

결국 ICG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요약하면 정보기관의 역할과 운영에 밝지 않았던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조직을 퇴보시켰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후속 조치도 미흡했다는 결론이다.



윤지환기자 mus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