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부사장 자살 파장에 ‘먼지털기식 수사’ 비판도

KAI ‘하성용 3인방’ 넘어 박근혜 정권 핵심 인사 연루 의혹

정권이 바뀐 직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조사 대상자로 지목된 인물이 자살하는 사건이 마치 정해진 시나리오처럼 반복되고 있다.

전 정권 때 입방아에 올랐던 기업이나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수사상 중요인물이 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검찰 수사가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돼 버린다는 것이다.

이번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대한 수사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근 검찰이 분식회계와 채용비리 등 혐의를 잡고 KAI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고(故 ) 김인식(65) KAI 부사장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뜻하지 않은 사건에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KAI를 필두로 한 방산업계 주변에선 검찰수사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부사장의 죽음을 놓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시중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 “자살 당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충격에 휩싸인 KAI

김 부사장은 지난 21일 오전 8시 40분께 경남 사천시내 본인이 거주하던 숙소 아파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해당 장소에 출동한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선 A4 용지 3장에 자필로 쓴 유서가 남겨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서 한 장은 긴급체포된 하성용 전 KAI 대표와 직원들에게 남긴 것으로 안다고 경찰은 전했다. 하 전 대표는 수천억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하고 일감 몰아주기 대가로 협력업체 지분을 차명 보유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조사를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하 전 대표를 소환해 조사하던 지난 20일 새벽 그를 긴급체포했다.

김 부사장은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안타깝다”며 “회사 직원분들께 누를 끼쳐서 죄송하다”고만 언급했으며, 최근 KAI에서 불거진 방산·경영 비리와 관련해선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사장은 해당 비리와 관련, 현재까지 검찰 조사를 받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유서 두 장은 가족들에게 남긴 것으로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부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회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1952년생인 김 부사장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제8전투비행단 통제기조종사, 합참의장 보좌관, 국방부 KFP사업단 주미사업실장, 항공사업단장 등을 지냈다.

김 부사장은 2006년 KAI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주재사무소장으로 민간 경력을 쌓기 시작해 이후 수출사업본부장 등을 거쳐 2015년 말부터는 해외사업본부장으로 수출사업 전반을 총괄해왔다.

이라크 FA-50 경공격기 등 수출을 성사한 인물로도 전해졌다. 김 부사장은 최근 KAI에서 불거진 방산·경영 비리와 관련, 현재까지 검찰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검찰 수사의 칼끝이 방산비리 전반을 향하고 있는 만큼 수출 업무 책임자로서 상당한 압박을 받아 온 것으로 주변에선 추측하고 있다.

검찰은 KAI에 대한 수사를 원칙대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하 전 대표를 구속 수사하겠다는 계획이다. 검찰에 따르면 하 전 사장에 대해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및 횡령),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배임수재 및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2013년 5월부터 지난 7월까지 KAI 대표이사로 재직한 하 전 대표는 KAI 경영비리 전반에 깊숙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의혹은 원가 부풀리기를 통한 대금 부당청구 및 대규모 회계분식, 채용비리 관여, 회사 상품권과 법인카드를 통한 횡령 등이다.

검찰에 따르면 하 전 대표는 국가에 납품하는 장비의 부품 원가를 부풀려 국가에서 대금을 과다 지급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특히 하 전 대표가 KF-X(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 등과 관련해 재무제표에 진행률(공정률)을 부풀려 기재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규모 회계분식을 지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 수사 원칙대로

KAI의 매출은 완성품을 납품할 때 받는 것이 아니라 작업 진행률에 따라 국가에서 지급받게 되는 방식이다. 이 지급액은 KAI가 제품을 만드는 데 소모한 부품의 금액에 일정 비율의 마진을 추가하는 이른바 '원가보상제도'에 의해 책정된다. 즉 부품이 고가일수록, 또 많은 부품을 소모할수록 KAI의 매출이 올라가는 구조다.

하 전 대표는 KAI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협력업체와 짜고 부품 가격을 부풀리고, 진행률을 부당하게 내리거나 올려 국가에서 지급받는 금액을 조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8일 이 회사 공모 구매본부장을 구속해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 하 전 대표는 KAI 신입사원 공채에서 지원자들의 입사 지원 서류 등을 조작해 부당하게 10여명을 합격시키는 과정에서 개입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검찰은 하 전 사장이 경영부문을 총괄한 이모 임원에게 특정 인물의 채용을 지시했는지,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 고위 간부 등 박근혜정부의 유력 인사들이 인사 청탁을 했는지 등을 살피고 있다.

검찰은 KAI 협력업체 T사의 실소유주가 하 전 사장이라는 정황을 포착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하 전 사장의 부탁을 받고 회사를 설립했다. 하 전 사장은 이 과정에서 6억원대 T사 지분을 차명으로 취득하고, KAI 일감을 T사에 대규모로 몰아줘 자신의 회사에는 이득을 주고 KAI에는 그 액수만큼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감사원 특별감사 결과, KAI는 하 전 대표 재임 기간 임직원 선물 용도로 52억원 어치의 상품권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가운데 17억원어치의 용처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 전 대표는 이 상품권들을 현금화해 거액을 챙기고, 법인 명의의 카드를 사적인 용도로 이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하 전 사장이 별도의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여부와 조성했을 경우 그 용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만일 하 전 대표의 범죄 혐의와 관련해 일부 내용이 인정될 경우 검찰은 하 전 대표를 추가로 조사한 뒤 관련 임직원들을 함께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KAI 수사는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다.

하 전 대표는 관련 의혹들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혐의들에 대해 대체로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KAI 수사 난항 檢 고민

검찰 수사는 김 부사장의 죽음으로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난 분위기다.

검찰은 김 부사장이 주요 수사대상자가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지난 20일 하 전 대표를 긴급체포하는 등 막바지 수사에 박차를 가하려던 시점에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해 수사팀도 위축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검찰은 김 부사장의 죽음에 대해 “이번 수사와 관련해 김 부사장을 조사하거나 소환한 사실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소환통보 및 서면자료 요청이나 수사와 관련한 전화통화도 하지 않는 등 김 부사장을 주요 수사 대상자로 보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경영비리 의혹 정점으로 결론 내린 하 전 대표의 긴급체포시한 만료에 따라 체포 후 곧바로 배임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었다. 이를 통해 하 전 대표의 신병확보를 기점으로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규명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김 부사장의 죽음은 검찰의 수사 계획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지난 7월14일 KAI 경남 사천 본사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면서 경영비리 수사를 본격화했다.

검찰은 원가 부풀리기, 분식회계, 채용비리, 비자금 조성과 같은 경영비리 의혹 규명을 위한 실무진 조사를 거쳐 지금까지 전현직 임원, 협력업체 대표 등을 대상으로 총 6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순조롭지 못했다.

검찰은 협력업체로부터 수억원대에 달하는 금품을 받은 혐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이 청구된 KAI 본부장 윤모씨, 상무급 임원 박모씨의 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또 검찰은 유력인사의 청탁을 받고 10여명의 부정채용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경영지원본부장 이모씨에 대해서는 혐의보강 등을 통해 영장을 재청구했으나 또 기각됐다.

채용비리를 하 전 대표가 직접 지시한 정황이 있어 하 전 대표의 혐의 입증에도 중요한 피의자였지만 법원은 “혐의의 다툼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KAI의 인사와 각종 살림살이를 도맡은 하 전 대표의 측근인 이 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된 것은 검찰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 본부장은 하 전 사장의 지시로 2015년 무렵부터 공채 신입사원 지원자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정상적으로는 합격하지 못했을 10여 명을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재차 청구됐지만 또 기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본부장의 신병을 확보한 상태에서 부정채용 청탁자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검찰의 계획엔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장기각에 법조계 안팎에서 검찰 수사가 핵심인 방산비리와 곁가지인 개인비리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개월 넘게 이어진 수사를 통해 영장이 발부된 대상은 2건에 불과하다. 이 중 한 건은 KAI 전·현직 임원이 아닌 협력업체 대표였다.

전 정권 적폐 들출까

검찰은 이모 경영지원본부장과 더불어 공모(56) 구매본부장, 이모(62) 국내사업본부장이 모두 ‘대우 출신’이자 ‘하성용 3인방’으로 회사 경영 전반에 걸쳐 하 전 대표의 지지 기반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울러 KAI와 협력업체 간 비정상적인 거래 흐름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하성용 3인방’을 비롯해 회사 내 실무자와 본부장급들을 광범위하게 소환하며 채용 비리 및 원가 부풀리기, 회계조작 정황을 밝혀냈다.

아울러 앞서 감사원 감사로 적발됐던 하 전 대표의 17억 원 상당의 상품권 횡령 의혹과 10억여 원의 환차익 횡령 의혹 역시 구체적인 진술과 물증을 확보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KAI 경영비리의 정점인 하 전 대표의 신병 확보를 통해 대표직 연임 로비 등 박근혜 정부와 KAI의 유착 가능성까지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권 문고리 3인방’ 일부에게 업체 지분을 상납하고, 정부 차원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하청업체 P사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이 2015년 수리온(한국형 기동헬기) 관련 회계 조작 및 KAI 경영진의 상품권 횡령·로비 의혹 등과 관련해 수사 의뢰를 한 지 2년이 지나 늑장 수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검찰의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이날 현재까지 KAI 수사는 쉽지 않다. 잇단 영장기각과 더불어 KAI 전 인사운영팀 차장 손승범(43) 씨는 공개 수배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에 대해 검찰은 “손 전 차장 신병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손 전 차장이 KAI 경영비리 수사의 본류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 전 대표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면 KAI의 단순 내부비리를 넘어 권력형 방산비리수사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애초에 KAI 수사는 권력형 방산비리에 초점을 둔 것이라는 말이 무성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수사가 본격화될수록 권력형 비리로 번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하 전 대표는 전 정권 주요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거론되는 인물 중엔 사정기관 고위관계자도 포함돼 있다. 이정현 의원도 조카가 채용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끈 바 있다.

KAI 전 임원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잇달아 기각된 것과 달리 하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큰 무리 없이 발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은 처음부터 하 전 대표에 대한 조사 및 구속을 정점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하 전 대표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 되면 채용비리와 관련 권력층 인사들이 수면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여기에 검찰은 하 전 사장이 분식회계로 마련한 비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간 정황도 살펴볼 전망이어서 말 그대로 권력형 비리로 수사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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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환기자 mus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