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F-35 차세대 전투기 구매사업 커미션만 수천억 원대

14조원 초대형 사업 브로커 정치권 비자금 조성 가능성

MB 임기 중 가장 큰 사업임에도 내곡동 사저 FTA 이슈에 가려져

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가운데 MB 정부 때 초대형 방산비리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가 하 전 대표를 넘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방위사업 비리를 겨냥할 것이라는 말이 정설처럼 떠돌고 있다,

일단 검찰의 움직임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새다. 각종 경영비리 의혹의 정점에 있는 KAI 하성용(66) 전 대표가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가 개인비리를 넘어 연임을 위한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뻗어 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지난 23일 오전 하 전 대표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검찰이 국가 무기 조달 체계의 부실을 초래한 방산비리 의혹의 전모를 규명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꼬리 밟은 검찰 몸통 잡나

앞서 검찰은 지난 19일 하 전 대표를 소환해 조사하다 이튿날 오전 2시쯤 그를 긴급체포했다. 이날 아침 김인식 KAI 부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전해졌지만 검찰은 체포 시한(22일 오전 2시)이 임박함에 따라 하 전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어 지난 21일 KAI 경영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이용일)는 하성용 전 KAI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채용 비리, 분식회계, 개발원가 부풀리기, 협력업체 T사의 주식 차명 보유 등 하 전 대표의 혐의를 규명 중이다. 이 중 T사 주식을 차명 보유한 혐의는 하 전 대표의 개인 비리로 KAI 경영 비리의 일환인 다른 혐의와 구별된다.

이에 검찰은 T사 주식 차명 보유 혐의를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해 왔다. 검찰은 T사 대주주인 Y사의 위모씨로부터 T사의 실소유주가 하 전 대표라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하 전 대표는 이를 완강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소환 조사 중 하 전 대표가 T사 차명 지분 보유 의혹에 대한 관련자들의 진술을 듣고 당황하는 기색이었다”면서 “하 전 대표를 풀어 주면 Y사 관계자들이 진술을 바꾸도록 시도할 수 있다는 증거인멸 우려 때문에 그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2013~2017년 KAI를 이끌었던 하 전 대표를 비리의 ‘정점’으로 보고 있다. 하 전 대표는 경영 성과 포장을 위해 사업진행률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하 전 대표가 대표이사를 맡은 2013년 이후 KAI가 부풀린 분식회계 규모는 5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 성과를 바탕으로 하 전 대표는 2014∼2017년 급여가 2억 5000만원 가까이 올랐고 상여도 2억원 넘게 상승했다.

하지만 하 전 대표 측근인 KAI 임원들을 대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 강제수사를 감행하려던 검찰의 의지는 여러 차례 영장을 기각한 법원의 저지에 막혀 난관에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하 전 대표가 전격 구속결정됨에 따라 KAI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검찰은 하 전 대표에 대해 외부감사법 위반, 자본시장법 위반,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사기·배임 혐의, 업무방해, 뇌물공여, 배임수재, 범죄수익은닉, 상법 위반 혐의 등 10개 항목의 혐의를 적용했다. 하 전 대표는 분식회계를 비롯해 협력업체 지분 차명 보유, 채용비리, 횡령 등 KAI에 제기된 각종 경영비리 의혹 전반에 깊숙이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하 전 대표를 구속하는데 성공한 검찰은 최장 20일의 구속 기간 동안 하 전 대표를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검찰은 하 전 대표가 연임 과정에서 정·관계 유력 인사들에게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15년 진행된 감사원 특별감사 결과, KAI는 2013∼2014년 임직원 선물 용도로 52억원 어치 상품권을 구매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17억 원어치의 용처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정치권 등 로비에 쓰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하 전 대표를 비롯한 KAI 핵심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명절 선물 등으로 지급하겠다면서 대량 구매한 상품권 가운데 수억원 어치를 빼돌려 ‘상품권 깡’으로 현금화한 뒤 사용한 것으로 보고 용처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하 전 대표는 19일 검찰에 출석하면서 비자금이 정치권에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에 관해 “그런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KAI는 전 공군참모총장, 사천시 고위 공직자, 방송사 간부 등의 청탁을 받고 부당하게 10여명의 사원을 채용했다는 의혹에도 휩싸였다. 검찰은 채용 특혜가 하 전 대표의 연임 로비와도 관련이 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또 그가 위장 협력업체를 세운 뒤 지분을 차명 보유하고 일감을 몰아주는 등 특혜를 주는 과정에서 '제3의 인물'이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KAI 정관계 로비 확대수사

KAI수사가 하 전 대표의 구속으로 급진전되는 그림이 그려지면서 검찰 수사가 어디로 향할지 여러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이 중 MB정부 당시 추진됐던 초대형 국방사업에 사정기관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MB정부 때 최신예 차세대 전투기 F-35 라이트닝2(Lightning2)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초대형 국방비리 가능성이 조금씩 새 나왔다. 하지만 당시 불거진 내곡동 사저 의혹과 FTA 등 여러 이슈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14조 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국방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은 그 중 일부다. 무기도입 사업은 2011년 10월 MB 미국 국빈 방문 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면 3차 F-X(차세대 전투기), 대형공격헬기(아파치), F-16 성능 개량, 해상작전헬기, 고고도 무인정찰기 등 7개 사업의 총 구입자 13조 7000원대의 예산을 내년(2012년) 예산에 4100억 원 계약금만 반영시켜 계약을 완료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정치권 일부에서는 무기중계브로커 존재설이 적지 않게 나돌았다. 린다김과 조풍언에 이어 또 다른 브로커가 정권의 초대형 국방 프로젝트를 움직였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이 사업이 알려지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MB 정부가 무책임한 무기도입사업을 추진했다는 비난이 지배적이었다. 당장 MB 정권하에서는 4100억의 지출만 있지만 나머지 잔액은 차기 정권에서 대부분을 부담하도록 될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예산 반영 비율이 커지게 돼 있기 때문이다.

또 전문가들에 따르면 구매 총액은 MB 정권이 잠정적으로 14조 원을 계약하더라도 최소 1~2년이 걸리는 계약 후 사업협상과 추가 사업 진행 과정에서 20조 원까지 예산이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F-35 같은 개발 중인 신형 전투기 구매에서는 확정된 가격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사업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 때 기존에 책정됐던 14조 원이라는 예산이 얼마나 늘어나 추진됐는지 현재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당시 무기도입사업 예산 책정에 많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정해진 가격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가격책정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파치 헬기 의 경우 현재 국방부가 반영한 가격을 살펴보면 훈련체계 제공조건을 포함한 가격이 미국 내 판매가격 997억 원의 절반도 안 되는 437억 원에 책정됐다. 이에 일부에서는 신형이 아니라 중고를 개선(rebuild)한 제품 구입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동시에 국방부가 의도적인 과소책정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즉, 특정 물품 구입에 대한 구입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일부 품목을 중고로 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 물품’이란 향후 구매가격이 증가할 수도 있는 품목인 것으로 추측된다.

14조 원 MB정권 말 무리수

일각에서는 “향후 물품 구매가격이 높아질 수 있는 품목의 경우 중계 수수료가 높아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무기중계상의 이익을 보전해 주려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만약 무기중계상이 당시 사업에 활약을 했다면 이 중계상이 챙긴 중계수수료는 천문학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방산업계에서는 14조원의 무기 구매 거래가 이뤄지면 커미션만 공식적으로 1~3%에 달해 그 액수만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과거 한국 역대 정권 중에서 노무현 정권 때만 빼고 무기구매에 관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 정부도 무기구매사업과 관련해 비리 의혹에 휩싸일 확률이 높다.

권영해, 린다김, 조풍언, 김영완 등은 대표적 무기 구매 브로커로 꼽힌다. 지난 정권의 예를 살펴보면 이들 브로커가 무기구매를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커미션은 온전히 브로커의 몫이 아니다.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달하는 구매 커미션의 상당액이 브로커를 거쳐 권력자에게 흘러간 정황이 상당하다.

MB정권 당시 추진된 이 국방 사업이 초대형 국방사업 비리로 비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MB 정권이 퇴임을 앞두고 14조원의 무기구입을 서둘러 체결하고 계약금 4000억 원을 던진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시각이 만연하다. 이렇게 서두르는 배경에 천문학적인 커미션을 챙기기 위한 일종의 빅딜이 깔려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MB정부가 무기구입사업을 서두른 이유로 몇 가지가 꼽히고 있다. 우선 2012년 당시 상황을 보면 이 해 4월 총선이 끝난 후 정치판 구도가 여당에 불리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컸다. 이 때문에 14조 무기구매와 관련된 모든 것을 새 국회가 구성되는 2012년 7월전 마무리해야 한다. 총선 전 기존 국회에서 통과시켜 계약을 하려고 서두르려 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혼란한 틈에 끼워 넣기 의도

혼란한 정쟁이 한창이었던 2011년 12월 중 내년 예산안을 제대로 된 심의 없이 대충 예산 심의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촉박한 시간에 쫓겨 무더기로 통과시키는 예산 속에 14조 무기구매 계약금 4100억을 끼워 넣어 통과시킬 의도였다는 것이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봤고 실제로 그대로 진행됐다.

군 내부에서는 당시 정부가 구입하려는 무기의 협상절차 및 제원과 성능, 가격이 한국 현실에 적정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됐었다. 여기에 가격협상, 절충교역, 기술이전 등 세부사항 협의만 1~2년 걸리는 필수적인 중간협상 절차를 생략될 수도 있어 자칫 무기도입사업이 천문학적인 혈세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무엇보다 무기중계브로커의 농간에 정부가 졸속으로 초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MB정부가 구매를 추진한 F-35는 당시 미국도 양산체제가 아니라 시제품을 생산해 시험비행을 하고 있는 단계였다. 각종 결함이 노출되어 여전히 논란이 적지 않은 제품이기 때문에 구매결정을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MB 정부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구매를 추진해 현재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브로커 개입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심지어 당시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F-35는 일명 ‘깡통비행기’로 불렸다. 몸체는 완성되었지만 현대 전투기에서 두뇌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아직 몸체만 있을 뿐 지능이 없는 전투기를 놓고 무조건 계약 체결하는 것은 무모한 모험에 가깝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적지 않았다. 더구나 현재 개발된 전투기 프로그램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해외 무기수입사업을 하고 있는 한 인사는 정부의 당시 국방사업추진에 대해 “한마디로 미친 짓”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미국에서는 최신예 전투기로 꼽히는 랩터도 여러 문제가 발생해 고철덩어리로 전락한 예가 있다”며 “이런 상황에 그런 계약을 추진하는 것은 경제난을 겪고 있는 미국과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인사는 “미완성 무기를 선 계약하는 것은 브로커 개입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며 “검증된 무기의 구입은 커미션이 적지만 개발 중인 제품에 대한 선 계약을 성사시키면 커미션이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치권과 연결된 대형 브로커 또는 모종의 밀약이 존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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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환기자 mus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