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관련 기관장은 소수…가담 정도는 높아

최순실 국정농단 직·간접 연루 기관장 4명…코이카·한국문화재재단 등

구 여권 성향 전·현직 공공기관장은 8명…청와대 출신·정치인 비중 높아

임기 유지 가능성은 낮아…기보 김규옥 이사장, 유임 청신호

국가 정책의 뼈대를 세우는 곳은 청와대이고 뼈대에 살을 붙여 세부사항을 수립하는 것은 ‘18부 4처 17청’이다. 이를 현장에서 실무 집행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역할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장 인선이 늦어지면서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과 문재인 정부가 불안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2017년 9월 기준 330개 공공기관장 중 임기만료나 사의를 표명해 공석인 곳은 50여 곳, 올해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는 곳은 42곳 정도다. 약 100곳에 달하는 공공기관 인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공공기관장 인선에 대해 대선 캠프 출신 등 정치인은 배제하지 않되 전문성은 담보돼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업무 관련성이나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 인선을 피하라는 의중으로 읽힌다.

문재인 정부는 전문성이 있고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더라도 함께 가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줄곧 해왔다. 반대로 국정철학과 맞지 않는 기관장은 물갈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다.

국정철학 검증은 국정감사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국감이 현 정부와 맞지 않는 인사들을 걸러낼 필터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감 이후 부적합 인사로 평가받은 공공기관장들은 임기에 상관없이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한 여당 관계자는 “정부가 인위적인 교체는 없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국감에서 부정 평가를 받은 기관장들을 자리에 그대로 둘 수 있겠나”라며 “연말이면 문 대통령 임기 중 10%가 지나간다. 임기 상관없이 인선을 서둘러야 정책 추진에도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상황에 따라 큰 폭의 물갈이도 이뤄질 수 있음을 암시했다.

본지는 공공기관장 임기 현황 및 주요 이력을 살펴보는 다섯 번째 시리즈로 9개의 부(고용부, 중기부, 외교부, 환경부, 여가부, 행안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3개의 처(인사처, 보훈처, 식약처), 9개의 청(경찰청, 소방청, 산림청, 농진청, 특허청, 기상청, 관세청, 방사청, 문화재청) 등의 총 79곳의 공공기관장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직·간접 연루 기관장 4명

이번 호에서 다룬 공공기관장 가운데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기관장은 총 4명이다.

지난 4월 사퇴한 중소기업벤처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김인식 전 이사장은 최순실 씨에 의해 임명된 것으로 드러났다. 박영수 특검팀 수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최 씨의 요청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은 코트라 출신 김 전 이사장을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김 전 이사장과 함께 임명된 인물은 유재경 전 주 미얀마대사다. 특검은 최 씨가 공적 예산을 투입하는 ‘미얀마 K타운 프로젝트’ 사업을 매개로 경제적 이익을 얻기로 계획하고 박 대통령에게 두 사람의 임명을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은 현재 신임 이사장을 뽑고 있다. 이미 지난 9월 이사장 공모를 진행했으며, KOICA 임원추천위원회는 10월 11일 서류심사 합격자를 발표, 13일 면접심사 및 이사장 후보를 확정해 17일 외교부 장관에게 최종 추천할 계획이다.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은 미르재단과 특혜 계약을 하며 논란을 빚었다. 당시 서도식 이사장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가 밝혀지던 지난해 11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했다. 현재 이사장직무대리가 재단을 이끌고 있다.

작년 9월 국정감사에서는 한국문화재재단과 미르재단의 업무협약을 둘러싼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전통문화체험관 '한국의집' 관리 위탁 계약이 2016년 12월에 끝나지만 문화재청의 승인없이 미르재단과 5년짜리 업무협약을 프랑스 요리학교인 ‘에콜 페랑디’와 맺은 것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조승래 의원은 계약이 국유재산법 시행령 제22조 2항 ‘관리수탁자가 다른 사람에게 위탁 재산을 사용·수익하게 할 경우 관리위탁 기간 내에서 하여야 한다’는 규정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청와대에서 연락을 받은 것 아니냐”고 서 전 이사장에게 질문했지만 “청와대의 요청을 받은 것은 없다”면서 “당시 미르재단이 프랑스 요리학교인 '에콜 페랑디'와 MOA 협약(업무협약)을 맺은 것을 확인하고 우리도 업무 협약을 진행한 것”이라고 답했다.

2016년 11월 4일 한국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에콜 페랑디 관계자들은 ‘한국의집’ 내 취선관을 방문한 뒤 분교 유치 조건 중 하나인 실습 레스토랑 설립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것을 이유로 설립 불가 의견을 미르재단에 보낸 바 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에콜 페랑디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는 최순실 씨와 차은택 감독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중소기업벤처부 산하 한국벤처투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연루됐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 임원 교체 방안을 논의했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벤처투자가 펀드 운용사들을 실질적으로 선정하고 관리하는 기관이지만, (좌)편향적 투자 관행에 대한 개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상황”이니 ‘민간단체보조금 TF’가 “한국벤처투자의 임원진을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로 대폭 교체할 것을 건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김 전 비서관은 문체부가 ‘건전애국영화’를 지원하기 위해 추가 예산 50억 원을 확보했다고도 밝혔다. 건전애국영화 지원 사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가족영화 제작지원 사업이었다. 문체부가 확보한 예산을 영진위에게 지원하고 이 지원금은 한국벤처투자가 운영하는 영화·문화 계정의 모태펀드의 투자금이 된 것이다. 투자자를 찾지 못한 ‘우파’ 영화들에게는 한줄기 빛이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시절 청와대 입맛대로 한국벤처투자 임원을 교체해 모태펀드의 투자처를 고르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MB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배우 문성근은 모태펀드의 의도적 활용을 놓고 “영화계에선 일부 정부 기금이 들어간 모태펀드를 정부 쪽에서 판단해서 투자를 통해 간섭을 했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불이익을 줬다”며 이를 실천한 사람들을 반드시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4년 10월 임기를 시작한 한국벤처투자 조강래 대표이사는 오는 22일 임기를 마친다.

구 여권 성향 전·현직 공공기관장은 8명

문재인 정부와 상반되는 정치 성향을 갖고 있는 기관장은 환경부 산하 한국상하수도협회 권영진 협회장,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술보증기금 김규옥 이사장, 법무부 산하 대한법률구조공단 이헌 이사장,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신은경 이사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민무숙 원장,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장정은 이사장 등 8명이다.

현재 대구광역시정을 이끌고 있는 권영진 시장은 환경부 산하 한국상하수도협회 협회장을 맡고 있다. 권 시장은 여의도 연구원 부원장, 2012년 새누리당 서민정책특별위원회 기획단장,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노원구을/새누리당)을 지냈다. 한국상하수도협회장은 정부에서 임명하는 것이 아닌 이사회가 선출, 총회의 승인을 통해 기관장이 뽑힌다.

한국상하수도협회 관계자는 “한국상하수도협회는 수도법상 수도사업자인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정부부처 및 유관 공공기관들이 의무 회원으로 가입한다. 여기에 민간기업, 개인 등 자율적으로 가입하게 돼 있다”며 “협회 회원들 가운데 협회장이 선출되며 지난 2015년 8월 권영진 대구시장이 협회장으로 뽑혔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상하수도협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지난 1월 기술보증기금 수장에 오른 김규옥 이사장은 기재부 관료 출신으로 2014년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 부산광역시 경제부시장을 역임한 이력을 갖고 있다. 탄핵 정국이었던 지난 1월에 임명된 터라 알박기, 낙하산 논란이 제기됐다. 하지만 김 이사장 스스로 “낙하산으로 기보에 오게 됐다”며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융 공공기관 안팎에서는 기재부 재직 시절 기보 업무를 다뤘던 경험 등 전문성을 겸비한 김 이사장이 빠르게 조직을 장악했다는 평가다.

김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사업형 공기업으로 전환 추진 등 향후 계획에 대해 밝히며 열정을 보이고 있다. 임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점,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점 등을 고려해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법무부 산하 대한법률구조공단 이헌 이사장의 임기는 임명 당시부터 ‘보은인사’라는 비판을 들었다. 이 이사장은 2015년 8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지만 6개월만인 이듬해 2월 “특조위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며 사퇴한 바 있다. 진실규명보다 내부를 비판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조사를 방해하는 행태를 보였다. 2015년 11월에는 ‘청와대 조사 시 여당 추천 위원이 집단 사퇴’의 내용이 담긴 이른바 ‘해양수산부 문건’에 이름을 올렸고 ‘대통령 7시간’을 조사하기로 결정되자 이 이사장을 제외한 위원들은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SNS를 통해서도 자주 표현했다. 그는 “이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대통령 직책수행의 불성실 등은 헌법과 법률 위반 등의 탄핵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가 있다”면서 “이와 같이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이 세월호 침몰이나 희생자 사망과 관련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이를 탄핵소추안에 포함하는 것은 매우 부적법한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 7월 양대노총이 선정한 적폐기관장 1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의 기관장은 KBS 아나운서 출신 신은경 이사장이다. 신 이사장은 지난 2016년 3월에 임명됐다. 그는 자유선진당 대변인을 지낸 뒤 2012년 당적을 새누리당으로 바꿔 서울 중구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같은 지역구 예비후보에 나선 나경원 당시 전 의원이 남편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논란으로 중도 낙마하자 신 이사장은 단독 후보가 됐다. 하지만 차일피일 공천이 미뤄지고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실상 공천자로 결정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에 신 이사장은 공천 신청을 철회하며 총선에 불출마했다.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 주철기 전 이사장은 지난달 돌연 중도 사퇴했다. 임기 시작 1년 2개월만이었다. 주 전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초대 외교안보수석으로 2013년 12월부터는 국가안보실 2차장을 지냈다.

여가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민무숙 원장은 박근혜 정부 대통령비서실 고용복지수석실 여성가족비서관을 지냈다. 지난해 1월부터 임기를 유지 중이다.

여가부 산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의 수장은 국회의원 출신 장정은 이사장이다. 장 이사장은 새누리당 부대변인을 거쳐 제19대 국회의원(비례)을 지냈다. 장 이사장은 지난 2월에 임명됐다.

공정위 산하 한국소비자원 한견표 전 원장은 지난 8월 사퇴했다. 한 전 원장은 법무법인 여명 대표변호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 등을 지낸 후 2015년 10월 한국소비자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2012년 당시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에서 클린정치위원을 맡은 이력 때문에 친박계 인사로 평가되며 낙하산 논란이 있었다.

허인회 기자, 김소현 인턴기자 @hankooki.com



김소현 인턴기자 underd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