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비자금, 정치권 지원자금 수사 최소 4개 기업 정조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 오너 일가 특혜 기업 수사 1번

2018년 새해 검찰 등 사정기관의 행보에 재계가 촉각을 곤두고 있다. 최근 검찰은 롯데 총수일가에 대한 재판에서 고배를 마시고 “무리한 먼지 털기식 수사로 변죽만 울렸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에 새해에는 체면을 구긴 검찰이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기업수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롯데가(家) 비리 혐의에 대해 검찰은 결심공판 당시 그 어떤 기업범죄 사건보다 강도 높은 구형의견을 내놨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무죄”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상동)는 지난 12월 22일 롯데 총수일가 등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위반 등 혐의 선고공판에서 그룹 창업자이자 총수인 신격호(95) 총괄회장에게 징역 4년, 벌금 35억원을 선고했다.

신 총괄회장의 셋째인 신동빈(62) 롯데그룹 회장은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둘째 신동주(63) 광윤사 대표 겸 SDJ 코퍼레이션 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내려진 채정병(66) 롯데카드 대표이사 외에 그룹 고위관계자인 황각규(62) 경영혁신실 사장, 소진세(67)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강현구(57) 롯데홈쇼핑 전 대표에게도 모두 무죄가 내려졌다.

그러면서 법원은 신 총괄회장이 고령이고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구속하지 않았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신 총괄회장에게 징역 10년, 벌금 3000억원을 구형했다. 반면 법원은 징역 기간은 절반 이상, 벌금액은 100분의 1 수준으로 깎였다.

징역 10년, 벌금 1000억원이 구형된 신 회장의 경우 더 심했다. 또 아예 무죄가 나온 신 대표에 대해 검찰은 징역 5년에 벌금 125억원을 구형했다. 신 총괄회장의 사실혼 관계 부인인 서미경(58)씨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지만 검찰 구형은 신 이사장과 함께 징역 7년, 벌금은 각각 1200억원, 2200억원이었다.

이같은 결과는 법원이 롯데 총수일가 비리 관련 혐의 대부분을 무죄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정기관 전방위 조사

검찰, 국세청, 공정위 등 사정기관은 2018년 전 정권 정경유착 기업을 중심으로 사정활동을 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재계와 정가에 돌고 있다.

또 전 정권 때 대통령과 독대를 했거나 특혜를 통해 사업이 급성장한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이라는 말도 무성히 들린다. 오너가 직접적으로 특혜를 입었거나 회사가 여러 사업을 통해 특혜를 누렸을 경우 이 부분도 철저히 조사한다는 게 사정당국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검찰 등 여러 사정기관의 타깃이 되고 있는 기업은 최소 4곳이다. 기업의 수상한 자금 수사와 오너일가의 비리 부분 그리고 정부 도움으로 인한 회사의 매출 급등 등이 적용된 기업이다.

특히 삼성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전방위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삼성은 ‘적폐청산’과 ‘재벌개혁’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복수의 정부 기관으로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의 뇌물죄 재판 외에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자택 공사 비리(경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번복(공정거래위원회)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추가 징수(국세청) △복합금융그룹 통합감독(금융위원회) 등의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1심 선고 공판 외에도 대법원이 이낙영 전 SPP그룹 회장의 배임죄 혐의에 대해 경영상의 판단이라는 이유로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해 삼성 측은 이 부회장 재판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재판에서 검찰이 고배를 마실 경우 삼성에 대한 비난여론과 더불어 검찰의 추가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어서다.

재계가 걱정하는 사정기관은 검찰뿐만 아니다.

공정위가 대기업 편법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꼽히는 공익재단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한 점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익법인 운영 실태에 대한 1단계 조사에 착수했다고 지난 12월 20일 밝혔다. 핵심 조사 대상은 자산 5조 원 이상의 대기업(공시대상 기업집단) 57곳에 소속된 공익재단이다. 일부 대기업이 공익재단을 오너 일가 지배력 확보에 이용한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정경유착 기업도 위기감

공정위는 먼저 57개 대기업에 모든 비영리법인의 목록을 제출하라고 했다. 이 비영리법인들이 오너 일가와 관련된 법인인지, 상속ㆍ증여세법상 공익법인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세법상 공익법인은 계열사 주식을 5% 이내로 보유하면서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는 법인을 뜻한다. 당국은 주식 5%까지는 기부로 보고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문제는 일부 공익법인이 세금만 감면받고 실제로는 이 법인을 그룹 경영권 승계 또는 지배에 이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대기업 계열사가 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하며 상속ㆍ증여세를 면제받고, 공익법인은 다시 계열사의 의결권을 행사해 총수 일가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공익법인의 지배구조, 자금 출연 현황, 주식소유 비중 등을 제출받기로 했다. 이렇게 받은 자료를 토대로 내년 1월부터 2단계 조사에 들어간다. 공익법인이 설립 목적과 다르게 지배력 확대에 이용됐는지 들여다볼 계획이다.

정경유착 의혹을 사고 있는 기업들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조사하고 한국e스포츠협회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기업들로부터 뇌물성 후원금을 내도록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사건과 관련해 롯데ㆍGS홈쇼핑 이어 KT도 후원금 내역 등을 임의 제출 받으며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지난 12월 28일 수사관을 KT로 보내 후원금 납부 내역과 관계자 휴대 전화 등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넘겨받았다.

검찰은 전 전 수석이 롯데홈쇼핑 등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전 전 수석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이자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유관 기업인 롯데ㆍGS홈쇼핑 등에 사실상 뇌물인 후원금을 걷었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KT도 당시 한국e스포츠협회에 후원금을 낸 정황을 파악하고 관련 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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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환기자 mus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