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중도층 향배 영향 적어…야권 후보 단일화 불리, 개헌 가속

MB 수사 적폐청산 인식 높아…중도층 MB에 등 돌려

야권 후보 단일화에 걸림돌…개헌 공감대 확산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뇌물수수, 횡령ㆍ배임, 직권남용 등 20여개의 혐의를 받고 검찰에 소환돼 21시간에 가까운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

MB는 검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모른다”, “보고받지 못했다”는 취지로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가정보원 특활비 중 10만 달러(약 1억700만원)를 받은 사실 등 일부 사실관계는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회유 등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 같다.

여하튼 대통령 오욕((汚辱)의 역사를 또 다시 목격한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세계에 이런 대통령 잔혹사를 경험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MB 검찰 수사가 향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네 가지 관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정치보복 아닌 적폐청산 여론 높아

첫째, 프레임의 관점이다. MB는 검찰청에 들어가면서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서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마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런 말 속에는 이번 수사를 정치보복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 숨어있다. 여권이 줄곧 제기하는 있는 적폐청산에 대항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MB 검찰 출석과 관련해 “한풀이 정치” “보복 수사”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홍준표 대표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도 했고, 김성태 원내대표는 “9년 전 서초동 포토라인 앞에 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버랩된다”며 “한풀이 정치, 회한의 정치가 또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심은 싸늘하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3월 14일), 국민 10명중 8명(79.5%)이 MB에 대해 “법에 따라 엄정 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전직 대통령이므로 예우해야 한다”는 응답은 15.3%에 그쳤다. 자유한국당 지지층을 제외한 모든 지역, 연령, 정당 지지층, 이념성향에서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응답이 높았다.

지지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엄정 처벌 96.7% vs 대통령 예우 3.0%)과 민주평화당(93.4% vs 6.6%), 정의당(88.3% vs 5.8%)에서는 ‘엄정 처벌’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바른미래당(67.7% vs 19.3%) 지지층과 무당층(75.5% vs 13.1%)에서도 높게 나타났다.

주목할 것은 보수층에서 조차 ‘엄정 처벌’(56.8%) 응답이 ‘대통령 예우’(34.6%)보다 높게 나온 것이다. 반면, 중도층에선 ‘엄정 처벌’(81.6%) 이 압도적인 다수였다. 다만, 자유한국당 지지층에서만 ‘대통령 예우’가 50.0%로 ‘엄정 처벌’(38.0%) 보다 높았다. 이런 민심의 흐름으로 봐선 MB와 한국당이 제기하는 정치 보복 프레임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울 것 같다. MB 검찰 소환 모습은 이전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소환 때와 사뭇 달랐다.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될 당시엔 지지자들이 집결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수백 명의 사람이 자택과 중앙지검 근처에 모였다. 2009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소환 때는 경남 김해시 봉하 마을에 노사모 회원과 마을 주민 등 수백 명이 모였고, 노란 손수건과 풍선을 든 지지자들은 노 전 대통령이 탄 버스 앞에 노란 장미를 흩뿌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MB 지지자들은 검찰 소환 당일에 눈에 띄지 않았고, 자택 앞엔 취재진만 진을 쳤다. 휘날리는 태극기 대신 MB 구속을 촉구하는 현수막만 즐비했다. MB가 검찰에 소환되면 보수층이 결집할 것이라는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이유는 MB에겐 ‘박사모’ ‘노사모’처럼 정치 노선에 따라 모인 끈끈한 지지층이 없고, 지역색도 뚜렷하지 않아 보수 TK(대구ㆍ경북)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말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팬클럽인 ‘박사모’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태극기 부대’는 “친이명박계 의원들이 박 전대통령 탄핵에 동참했기 때문에 MB 지지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하튼 MB 검찰 수사가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핵심 이유는 MB 혐의 때문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의 지적처럼 “박 전 대통령의 일부 혐의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냐’ ‘국정 농단이냐’를 다툴 여지가 있지만 이 전 대통령의 혐의는 대부분 개인 범죄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친정부 중도층에 영향 거의 없어

둘째, 중도층의 향배 여부다. 경향신문ㆍ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설 민심 여론조사(2월 12∼13일)에서 ‘진보’라는 응답은 33.7%였다.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는 중도성향은 38.8%인 반면, 보수는 19.8%에 그쳤다. 진보와 중도를 합해보면 그 비율은 72.5%였다.

그런데 이 비율은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 비율(72.6%)와 거의 일치했다. 최근 중앙SUNDAY와 입소스 코리아가 실시한 여론조사(3월 5~6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45.3%가 자신을 진보 성향이라고 응답했고 29.3%는 중도로 분류했다. 이에 비해 보수는 18.2%에 그쳤다. 진보ㆍ중도의 합은 74.6%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도 (75.2%)와 거의 비슷했다.

이런 조사 결과들이 주는 함의는 작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형성된 기울어진 정치 이념 지형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보는 초강세이고 보수는 열세다. 더욱이 문 대통령 지지층의 절반 가량은 스스로를 ‘중도 성향’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이 중도층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진보세력이 도덕성 위기를 맞고 있고, 보수는 박근혜와 MB 두 전직 대통령의 동시 구속이라는 상황에 직면에 있다. 향후 관건은 과연 중도층이 위선적인 민주당과 부패한 한국당을 떠나 바른 미래당을 지지할 수 있는지 여부다.

그런데 리얼미터 3월 2주 조사 결과(3월 12∼14일)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박수현 충남지사 예비후보의 사생활 논란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전주보다 3.4%포인트 상승한 69.2%를 기록했다. 반면, 부정평가는 24.0%로 전주보다 4.2%포인트 하락했다. 리얼미터 측은 “성폭력 문제는 ‘왜곡된 권력관계에 의한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야 인사의 성폭행ㆍ성추행 여파는 줄어들고, 대북 특사단의 안보외교 성과가 서서히 확산한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하튼 정치권에 불어 닥친 호재에도 불구하고 ‘지역ㆍ계층ㆍ세대를 뛰어넘는 합리적인 미래개혁 정당’을 표방한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은 7% 안팎에 머물고 있다. 지역주의와 이념적 선명성에 크게 기대고 있는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여전히 ‘죽음의 계곡’을 헤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MB 수사는 현재까지 친정부 성향이 중도층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볼수 있다. 다만 향후 미투 운동이 청와대 핵심 인사에게 불똥이 튈 경우 상황은 급반전 할 수 있다. 한국당보다는 바른미래당이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후보 단일화 방해

셋째, 야권 후보 단일화 관점이다. 중앙SUNDAY와 입소스 코리아 조사 결과, 보수층 절반은 ‘야권 후보 단일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55%가 바른미래당 후보와 단일화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바른 미래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도 10명 중 네 명(40%)꼴로 단일화를 지지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당은 오는 6ㆍ13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자로 이석연 전 법제처장을 전략 공천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 전 처장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경실련 사무총장을 거쳐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를 지낸 바 있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때는 범보수 시민단체 추대로 출마 선언을 했다가 중도에 사퇴한적이 있다. 이 같은 경력을 통해 한국당은 박원순 현 서울시장보다 시민사회 활동에서 선배라는 점과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앞세워 ‘빅매치’를 성사시킨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홍준표 대표는 “이 전 처장이 나오면 이번 선거는 좌우의 대결이 된다”며 “색깔과 본질이 분명해 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야권 후보 단일화는 없다”면서 “안철수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나오면 3등이다. 정치적으로 자멸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 전 처장도 출마 의향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는 “합리적인 중도ㆍ보수 세력의 재건을 위해 시민사회단체에 남을지, 당에 들어갈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면서 곧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홍 대표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바른미래당이 안철수 전 대표를 후보로 내세워 서울시장 선거가 3파전으로 흐르고, 선거 막판에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면 박빙의 승부가 될 수 도 있다. 중앙SUNDAY와 입소스 코리아 조사 결과,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정안정과 개혁을 위해 집권여당이 승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답변이 44.8%에 달한 반면, ‘견제와 균형을 위해 여당과 야당이 비슷하게 표를 얻는 게 바람직하다’(36.9%)와 ‘정부와 여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야당이 승리하는 게 바람직하다’(15%)는 균형ㆍ견제론을 합치면 51.9%였다. 입소스 코리아의 이상일 본부장은 “최근 야당에 대한 정치적 선호가 매우 낮은 상황을 감안할 때, 유권자들이 견제와 균형의 필요성을 느끼는 강도는 높은 수준으로 해석되며, 이런 심리가 향후 ‘여당 독주’ 흐름을 바꾸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본부장은 “중량감 있는 야권 후보들이 일대일 대결 구도를 만들어낼 경우 균형ㆍ견제론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야권 후보 단일화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문제는 MB 검찰 수사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선거 연대가 어려울 수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는 여당과 민평당으로부터 적폐 연대 비난을 받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은 과거에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과 큰집, 작은집 관계이다. 본래 새누리당이 탄핵을 두고 잠시 분열했던 것인데, 이제 박근혜가 없는 자유한국당에 바른정당의 사람들이 합류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그런 상황인거 같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안 대표가 추진하는 합당은 누가 뭐라 해도 반민심, 반개혁, 반문재인의 적폐연대, 적폐합당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당시 시종일관 한국당과의 통합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물론 통합과 연대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MB 수사로 한국당이 적폐 세력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후보 단일화 논의는 녹록지 않을 것이다.

개혼, 제왕적 대통령제 바꿔야

넷째, 개헌의 관점이다. MB 검찰 수사는 박근혜 전대통령 구속과 맞물리면서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개헌 논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기회를 포착해 21일 자체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려고 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1987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을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개헌안에 대해 야4당은 반대하고 있다. 여당의 강력한 우군이던 정의당도 “헌법 개정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다면 국민투표 시기를 6월 이후로 연기하는 데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도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부정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장병완 민평당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정부 개헌안 발의 방침에 대해 “현실적으로 야당의 협조가 없다면 대통령의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없다. 개헌안이 부결되고 나면 정국이 급랭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권 중진들도 대통령의 ‘개헌 드라이브’가 자칫 판 자체를 깰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 개헌안 발의 예고가) 자극이 돼서 여야 간에 개헌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협치를 통해 개혁하려면 정부안 초안 정도로 압박하고 대통령 발의까지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16일 자체 개헌안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19일 또는 20일 의원총회를 통해 개헌안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보수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과 검찰 수사는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권력 남용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자유 한국당은 무조건 개헌 논의를 외면할 경우,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당은 당초 ‘10월 개헌 국민투표’를 고수해 왔으나 일부 조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권력구조, 선거구제, 권력기관, 투표 시기 등 4가지를 동시에 합의해야 하는 만큼 시기에서는 유연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과연 개헌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오역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한다. 예산권, 검찰권, 인사권을 장악한 한국 대통령은 형식적인 견제만 있을 뿐 왕처럼 권력을 행사하고 퇴임 후에는 불행한 길을 걷었다. 단언컨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불행한 대통령으로 가는 길이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실패한다.

MB 검찰 수사를 계기로 개헌이 정략적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대전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개헌 못지 않게 정치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개헌을 통해 아무리 권력 구조를 바꾸어도 대통령의 공인 인식과 도덕성이 약하면 백약이 무효다.

다산 정약용은 공직자의 기본 윤리로 공(公)과 염(廉)을 주장했다. 특히, “재물에 청렴하고 여색(女色)에 청렴하고 직위에 청렴하라”고 했다. 고(故)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 재단 이사장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자질 중에서 애민(愛民)과 수기(受己)를 유독 강조했다. 대통령 오역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을 실질적으로 분산시키는 것 못지않게 국민을 무시하고 자기 수양이 덜 된 사람은 절대로 통치자가 될 수 없도록 국민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언론도 죽은 권력보다는 살아 있는 권력을 더욱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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