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은 의외의 태도 변화… 檢의 수사협조 대가 있나

김백준, 첫 공판에서 MB에 대한 철저한 수사 요구

MB 최측근에서 시한폭탄된 金… 명분없는 태도 변화에 의문 증폭

속 보이는 檢, 구속 두 달 간 수사기록 증거신청도 하지 않아

檢의 더딘 행보&순순한 혐의 인정에 보석 석방 가능성 높아진 金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 이 기사는 2018년 3월 16일 작성, 3월 28일 송고됐습니다.

이명박(76)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끝남과 동시에, ‘40년지기’ 측근인 김백준(78·구속기소)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으로부터 날아온 연이은 비수가 이 전 대통령의 등 뒤에 꽂혔다. 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에 기름을 뿌린 셈이었다. 동시에 40년지기가 ‘확실히’ 등을 돌린 내막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이미 이 전 대통령에 등을 돌린 다른 측근들과는 다르게, 보다 오랜 인연을 맺어온 김백준 전 기획관의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에 대한 명분이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던 같은 시각, 바로 옆 법원에서 열린 김 전 기획관의 첫 재판에서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정황이 나타났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뇌물수수 방조 혐의에 관한 첫 공판에서, 김 전 기획관은 이명박(76) 전 대통령에 ‘확실히’ 등을 돌린 모습을 보여줬다.

김백준 전 기획관은 재판 마무리 전 재판장으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고, 같은 시간 서울중앙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받고 있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김 전 기획관은 미리 종이에 써온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바로 지금 이 시간에 전직 대통령(이명박 전 대통령)이 소환조사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부를 향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변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재판 일정에서 자신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관련된 사건의 전모가 국민들에게 철저히 알려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전 기획관의 변호인은 이날 재판 종료 후, 김 전 기획관의 법정발언 내용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들도 무슨 내용인지 사전에 잘 몰랐다는 취지로 “재판 직전, 직접 써오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인의 도움이나 다른 누군가의 강요가 없이, 김 전 기획관 스스로가 주어진 의혹과 혐의를 대체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 자신뿐만이 아닌 이 전 대통령 역시 빠질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김 전 기획관은 지난 1월 17일 구속기소돼 수감생활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번 사건의 혐의에 관해 전면 부인하며 검찰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김 전 기획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40년지기’이자 ‘금고지기’로 불리며 개인자산 관리 업무를 맡아왔다. 청와대 입성 이후에도 이 전 대통령의 사적인 업무까지 담당하며, 소위 ‘MB측근’ 중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 전 기획관은 구속기소된 후 180도 태도를 바꿔, 자신에게 주어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기 시작했다.

이에 검찰은 공소사실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이 사건의 주범 그리고 김 전 기획관을 방조범으로 최종 기재했다.

심지어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로 의심받는 다스(DAS)의 미국 소송비용을 삼성이 대납했다는 사실과 함께 관련 보고서를 자신이 작성했다고 폭로했다.

직후 검찰이 이 전 대통령 소유의 영포빌딩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도 했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자신에 대한 검찰 조사 과정에서 해당 자료들이 모두 조작됐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말대로 해당 자료들이 조작된 것이라면, 그 조작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이는 김 전 기획관인데,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그가 과연 어떤 목적에서 조작 행위를 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무엇보다 이미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마저 검찰 조사에서 다스의 미국 소송을 맡은 미국 법률회사 ‘에이킨검프(Akin Gump)’에 본인이 60억원을 대납했다고 진술하며, 김 전 기획관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였다.

이날 김 전 기획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해명이 있기 직전, 재차 등을 돌리며 이 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여러 측근들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에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고, 현재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의 가능성 또한 높아진 상황이다.

그런데 김 전 기획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만 의문이 남는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아무리 진실 규명에 협조하는 것이 전직 공직자의 도의적 책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난 40년 간 이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자리를 지켰던 그였다.

때문에 이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다른 측근들과는 다르게, 이런 태도 변화에 대한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부터 그와 함께하며, 김백준 전 기획관 못지않은 MB측근으로 불리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경우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과거 원세훈(67·구속기소)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국정원 특수활동비 10만달러(한화 약 1억원)를 받은 부분을 자백했다.

김 전 부속실장은 해당 자금 중 일부가 지난 2011년 이 전 대통령의 미국 순방 직전, 그의 부인 김윤옥 여사 측에 전달됐다고 진술했다.

그의 증언이 매우 구체적이며 다른 측근들 역시 국정원 특활비 부분에 대해 인정했던 만큼, 결국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서 국정원 상납금 명목으로 10만달러를 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 (사진=연합)
이런 김희중 전 부속실장에 대해, 그가 과거 MB정부 시절 저축은행 억대 금품수수 혐의로 실형을 살았고 부인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이 소위 ‘토사구팽’식 태도를 보이자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김 전 부속실장의 입장에서는 이 전 대통령에 등을 돌릴 만한 개인적 명분도 충분히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김 전 기획관의 태도 변화는 말 그대로 매우 갑작스럽고, 검찰 수사과정이 아닌 재판에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철저한 수사까지 외치는 모습은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이다.

속 보이는 檢… 수사 협조 대가는 ‘보석(保釋)’(?)

앞서 언급했듯이 김백준 전 기획관에 주어진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에서 주범은 그가 아닌,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검찰이 적시한 이 사건 공소사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지난 2008년 4월에서 5월경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성호(68) 당시 국정원장에게 국정원 특수활동비 2억원을 김 전 기획관에 교부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특수활동비는 국정원 예산 중 그 사용처를 증빙하지 않아도 되는 돈으로 국정원장에게 배정돼 있지만, 사적인 용도가 아닌 국정원 내부 활동을 위해 사용해야만 했다.

김성호 전 국정원장은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해준 것에 대한 보답 그리고 향후 국정원장직 유지 및 향후 인사 등 국정원 현안과 관련해 대통령으로부터 각종 편의를 제공받을 것을 기대하며, 이 전 대통령의 요구대로 2억원을 마련했다.

김성호 전 원장은 김주성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에게 특수활동비에서 2억원의 현금을 김백준 전 기획관(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고, 김주성 전 기조실장도 국정원 예산지출 담당관에게 이를 실행하도록 재지시했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의 ‘돈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은 김 전 기획관은 청와대 공용주차장에서 국정원 예산지출관을 만나 2억원이 담긴 캐리어를 건네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 두 번째 범죄사실은 지난 2010년 7월에서 8월경, 2억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추가로 수수한 부분이다.

이번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에게 국정원장 특수활동비 중 2억원을 김 전 기획관을 통해 교부해줄 것을 요구했다.

원세훈 전 원장 역시 국정원장직 유지 및 향후 인사, 국정원 현안과 관련해 대통령으로부터 각종 직무상 편의를 제공받을 것을 기대하며 국정원 예산지출 담당관에게 특수활동비 2억원을 김 전 기획관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김 전 기획관은 당시 총무 기획관실 경리 팀장에게 돈을 받아오라고 지시했고, 청와대 부근에서 해당 특수활동비가 1억원씩 담긴 쇼핑백이 전달돼 이 전 대통령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비밀유지가 요구되는 국정원의 대공·대테러 등 정보수집 및 사건수사 등에 사용하도록 배정된 특수활동비를 그 목적과는 무관하게 임의로 인출, 대통령의 개인적 용도로 사용해 ‘국고가 손실’됐다는 점이다.

또 국정원장이 향후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한 특혜를 바라며, 특수활동비를 건네 ‘뇌물 수수’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김백준 전 기획관은 이번 사건의 주범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공범’이 아니었다. 공범은 이 전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를 전달한 두 사람의 전직 국정원장들이었다.

김 전 기획관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국고손실과 뇌물 수수 행위를 용의하게 하거나 이를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을 뿐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국고손실은 회계직원 책임법에서 규정하는 국가 회계관계 직원이 국고에 손실을 미칠 것을 인식하고 그 직무에 관해 횡령 또는 배임 행위를 범했을 때 성립한다.

그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국고손실액이 2억원이 넘는다면,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게 된다. 단순 횡령이나 뇌물죄보다 국고손실 혐의에 대한 처벌은 비교적 엄격한 수준이다.

검찰 측은 이번 사건에서 특수활동비를 청와대 측에 전달하는 데 국정원 예산지출 담당관뿐만이 아닌, 두 명의 전직 국정원장들 자체가 사실상 재무에 관여했다고 바라보며 국고손실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 전 기획관은 당시 청와대 회계를 담당하는 총무기획관으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 회계관계 직원으로 볼 소지는 있다.

다만 그가 국고인 특수활동비에 대한 직접적 횡령 또는 배임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고, 앞서 언급했듯이 그 행위를 단지 방조한 것이기 때문에 향후 형량은 예상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김 전 기획관이 특수활동비를 유용했다거나 대통령의 지시 외에 국정원에 추가적으로 돈을 요구해 이를 받아 챙겼거나, 증거인멸 등에 가담한 사실도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김 전 기획관이 해당 특수활동비를 건네받아 이 전 대통령에 전달하며, 이 돈이 무슨 목적으로 사용될지, 즉 국정원장의 대통령에 대한 뇌물이거나 이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용도로 쓰일 것이라는 부분을 모르고 있었다면 향후 그에게 주어질 형량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만약 김 전 기획관이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거나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면, 이 형량 감소 요인들에 대한 검찰 측의 고려 및 배려는 없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얄궂게도 검찰은 현재 김 전 기획관이 보석으로 풀려날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 상태다.

실제로 검찰 측은 지난 1월 17일 김 전 기획관의 구속기소 이후, 지난 14일 이 사건 첫 공판까지 수사기록에 대한 증거신청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김 전 기획관 측 변호인들은 수사기록 및 기타 증거에 대한 열람복사조차 하지 못한 채 재판에 임했다.

검찰 측은 이번 사건에 있어 공범들에 대해 아직 수사 중에 있다는 이유로 증거신청을 부득이하게 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조사를 마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와 귀가하고 있다. (사진=연합)
물론 당시까지 주범으로 지목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완료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검찰 측 입장도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있어 이 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수사가 이미 완료된 상태였다. 또 피고인에 대한 구속기소 후 두 달이 넘은 시점까지 증거채택 및 기록물 열람복사도 이뤄지지 못한 채 공판을 시작한다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만약 김 전 기획관 등에 대한 추가 기소건이 확정된 상태라면, 수사 기일과 재판 심리 기일의 연장이 요구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아직 검찰 내부에서 상의 중으로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1심 구속 기간을 최대 6개월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김 전 기획관의 구속 만료 기간은 아직 넉넉히 남은 상태다.

그러나 검찰 측의 설득력 떨어지는 이유로 향후 이뤄질 이 사건 서증조사와 증인신문 등 재판심리 절차가 사실상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피고인 김 전 기획관이 사건의 주범 또는 공범이 아니며,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에까지 적극 협조한 상황에서, 검찰 측의 이런 ‘더딘’ 재판 준비가 향후 그에 대한 보석 석방의 여지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재판부는 검찰 측 문제로 앞으로의 재판 일정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며, 김 전 기획관에 대한 보석 석방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재차 이 전 대통령의 등 뒤에 비수를 꽂는 발언까지 할 명분을 딱히 찾아볼 수 없었던 그의 태도 뒤에, 수사 협조에 대한 검찰 측의 향후 배려가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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