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변론’ 접근→‘사기 피해자’라는 MB… 드러나는 모순

검찰 조사로 더 명백히 밝혀진 삼성의 다스 미국 소송비 대납 의혹

檢 “MB, 삼성의 소송비 대납에 적극적 개입” 결론

에이킨검프가 무료변론 접근-삼성 대납 몰랐다는 MB… 치명적 실수는

향후 재판에서 MB가 듣게 될 질문… “‘왜 무료변론 해주나’ 안 물어 봤습니까”

110억원대 뇌물 수수와 340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 탄 차량이 23일 새벽 서울동부구치소 안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검찰의 이명박(76)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모두를 의아하게 만든 이 전 대통령의 ‘치명적 실수’가 발견됐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 중 삼성의 다스 미국 소송비 대납과 관련돼 이 전 대통령 측이 내세운 대응 논리였다. 곳곳에서 모순이 드러나면서 이 전 대통령은 향후 재판을 앞두고 이미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청구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에 적시된 범죄 혐의는 20여개다.

이중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부분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회사인 ㈜다스(DAS)의 미국 소송비 600만 달러(한화 약 70억원)를 삼성전자로부터 대납하게 한 내용이 기재돼 있다.

검찰 측은 이 부분 혐의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다스 투자금 140억원을 회수하기 위한 다스 관련 미국 소송비용을 포함해 67억 7000만원 상당의 자금을 삼성 측으로부터 지원받았다”라며 “이건희 회장을 사면해 주거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금산분리 완화 법개정을 추진하는 등 정경유착 비리행태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세간의 의혹과 일부 언론보도만으로 확인되던 삼성전자의 다스 미국 소송비 대납 관련 혐의는 검찰의 이번 수사를 통해 그 실체가 명백히 드러났다.

이 사건 혐의 부분의 구체적인 경위는 지난 2000년 3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성우 당시 다스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BBK와 3회에 걸쳐 투자일임계약을 체결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BBK는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하며 김경준(52)씨를 공동 대표로 내세워 설립한 투자자문회사다.

다스 측은 BBK와의 계약 체결 후인 2000년 4월 27일부터 2000년 12월 30일까지 총 6회 동안 투자금 명목으로 190억원을 BBK 계좌에 송금했다.

그런데 다스 측은 지난 2001년 12월 4일까지 BBK로부터 총 50억원만을 회수했고, 나머지 140억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당시 김경준씨는 이미 2001년 12월경 미국으로 되돌아간 후였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김성우 전 사장에게 ‘떼인’ 다스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2003년 5월경부터 미국에서 김경준씨 등을 상대로 투자금 반환 청구 및 재산몰수 소송을 제기하도록 했다.

또 다음해 2월경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금고지기’로 불린 김백준(78·구속기소)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게 BBK의 지주회사인 Lke뱅크를 대표해 역시 김씨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 및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하게 했다.

그런데 2007년 3월 13일 재산몰수 소송에서 다스는 패소했고, 같은 해 8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의 1심 재판부는 투자금 반환청구건에 대한 소 각하 판결을 선고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에서 퇴임한 뒤,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돼 선거 출마를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에서 도주 중이던 김경준씨는 재판에 회부돼 지난 2005년 10월경 미국 법원에서 범죄인 인도 결정을 받고 대기 중인 상태였다.

이 전 대통령은 당연히 김씨의 한국 송환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자신과 소송 중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그가 한국에 돌아와 “BBK의 실소유자는 이명박”이라고 폭로한다면,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정당 내 경선에서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김경준씨에 대한 미국 소송을 수시로 보고 받으며, 선거캠프에서 BBK 대책팀장이자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던 은진수 변호사 등을 통해 김씨의 한국 송환을 저지시키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은진수 변호사는 미국의 유명 로펌인 ‘에이킨검프(Akin Gump)’에 소속돼 있던 김석한 변호사를 알게 됐다.

은진수 변호사는 김석한 변호사를 직접 한국으로 오도록 해 김백준 전 기획관 그리고 이 전 대통령에게도 소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김 변호사와 수차례 만남을 가졌고, 그로부터 김경준씨와의 소송 및 그의 한국 송환과 관련된 다양한 법률적 조언을 얻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자로 지명됐고, 대부분의 여론 조사에서 그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같은 달 미 캘리포니아주 법원이 다스의 1심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삼성이 대납해 준 의혹과 관련, 이 전 대통령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경상북도 경주시 다스 본사 입구. (사진=연합)
이에 이 전 대통령은 큰 형인 이상은씨와 함께 김성우 전 사장에게 “그 많은 수임료를 지불하고도 왜 패소를 했는가”라며 격노했고, 김백준 전 기획관 등에게 항소심 대책을 세울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백준 전 기획관과 은진수 변호사는 2007년 9월 초순경, 기존 다스 소송을 진행하고 있던 미국 로펌인 LRK와 공동 변호인으로 에이킨검프의 김석한 변호사를 추천했다.

삼성, MB에 소송비 대납하게 된 얄궂은 운명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에이킨검프 측과 LRK가 공동으로 항소심에 나서는 안건에 대해 찬성, 2007년 10월경 김성우 전 사장은 에이킨검프의 미국인 변호사의 수임에 관한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2009년 9월경, 에이킨검프와 김경준씨 측 변호인단 사이의 합의 논의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은 “이자까지 받아내라”고 지시하는 등 다스 미국 소송을 지속적으로 챙기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에이킨검프가 다스 측과 수임계약서를 작성하던 시기, 김석한 변호사가 서울 태평로에 위치한 삼성그룹 본사를 찾아가면서 삼성전자의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된다.

김석한 변호사는 이학수(72)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부회장)과 만나 다스 소송비에 관한 제안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학수 전 부회장은 이 사건과 관련된 검찰 조사에서 당시 김 변호사가 자신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를 돕고 있고, 에이킨검프에서 이 전 대통령의 중요 인사 접촉과 법률지원 활동을 대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선거 및 법률 지원 활동의 일환으로 소요 비용을 삼성그룹이 대신 부담해 달라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이학수 전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김 변호사의 제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선거 지지율이 압도적인 1위로 차기 대통령이 유력했고, 김석한 변호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향후 그의 대통령 취임 이후 삼성그룹의 다양한 현안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연치 않게 김석한 변호사가 이학수 전 실장과 소송비 관련 면담을 마친 직후인 2007년 10월경, 지난 2004년까지 삼성그룹 기업구조조정본부 법무팀에서 근무하던 김용철씨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및 검찰 간부들에 대한 로비 의혹에 대해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이 이슈가 언론보도를 넘어 정치권의 관심사로까지 일파만파 퍼지자, 이듬해인 2008년 1월경 소위 ‘삼성 비자금 특검’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 압박이 거세졌다.

때문에 삼성그룹 차원에서는 김석한 변호사의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명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검법이 공표된 바로 다음 달인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학수 전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에 김석한 변호사의 요청에 대해 보고한 뒤 자금 지원의 승인 허락을 받았다.

이어 이 전 부회장은 당시 그룹 재무책임자였던 최도석 전 삼성카드 부회장(당시 삼성전자 경영총괄담당 사장)에게 김석한 변호사 측으로부터 요청받은 비용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급해 줄 것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학수 전 부회장과 최도석 전 부회장은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자금 지원 경위에 대해 대체적으로 일관된 진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지난 2007년 10월 삼성전자는 매월 미화 12만 5000달러(한화 약 1억 3500만원)를 에이킨검프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허위’ 컨설팅 계약을 체결, 다음 달인 11월 19일부터 컨설팅 비용에 대한 계좌 송금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지난 1월 말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이 있는 영포빌딩을 압수수색 하면서 발견한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문건에서도 적시돼 있었다.

이명박(왼쪽) 전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 회장. (사진=연합)
실제로 김백준 전 기획관이 작성한 것으로 밝혀진 해당 문건에는 ‘VIP 보고’라고 기재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과 관련된 이 전 대통령의 총 뇌물수수 액수가 67억원 이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MB가 재판정에서 듣게 될 질문… “‘왜 무료 변론 해주나’라고 안 물어 봤습니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줄곧 다스 및 BBK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만큼,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에 대해서 자신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설사 일부 관련이 있더라도 실무선에서 알아서 한 뒤 본인에게는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검찰이 영포빌딩을 압수수색 하면서 발견한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문건에 대해서도, 이 전 대통령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해당 혐의와 관련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진술 중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발견됐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2007년 김석한 변호사와 에이킨검프와 소송과 관련돼 의견을 나눴던 당시, 김 변호사 측이 ‘무료 변론’으로 도와주겠다고 접근을 해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병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 전 측근들을 통해 언론에 밝힌 내용과 다른 점은 없었다.

앞서 이 전 대통령 측은 일부 언론을 통해 당시 김석한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고 해서 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소송을 맡겼지만, 에이킨검프의 변호사가 변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석한 변호사가 삼성그룹에 찾아가 ‘자신을 팔아’ 뒤에서 돈을 챙겼고, 결과적으로 이 전 대통령 본인은 ‘사기를 당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엄밀히 말해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소송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사기를 당했다면 그 당사자는 다스 법인과 김성우 전 사장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런 진술에 대해 일부에서는 상당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검찰 측은 이 전 대통령의 이 부분 진술이 명백한 허위라는 심증을 가지며, 공소사실에 기재조차 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검찰 측은 조사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이 부분 진술과 관련해 추가 질문을 하지 않은 채 넘어갔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무료 변론이라는 설득력 떨어지는 해명을 들은 뒤 “당시 김석한 변호사에게 ‘왜 나(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무료 변론을 해주려고 하는가’라고 묻지 않았는가”라고 질문을 했어야 마땅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정말 김 변호사와 에이킨검프 측이 무료 변론을 자처했다면, 이들이 그에 따라 이 전 대통령에 기대하거나 요구했던 부분이 과연 없었겠느냐는 설명이다.

상식적으로 국내 변호사나 로펌도 아닌, 미국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와 로펌이 아직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지도 않았던 이에게 무료 변호를 해주겠다고 접근한 부분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다.

특히 당시 김석한 변호사 측이 무료 변론을 자처했고, 이 부분에 대해 이 전 대통령과 김백준 전 기획관, 김성우 전 사장이 전부 알고 있었다면 다스가 에이킨검프 측과 변호사 수임계약서를 작성해 수임료를 지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김석한 변호사와 당시 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이 부분 역시 진술과 조사 결과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사건과 연관된 다수의 당사자들이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소송과 관련돼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폭로한 상태다.

때문에 검찰과 언론 일각에서는 김석한 변호사가 삼성에 다스 소송비 대납을 요구한 것도 개인적 일탈이나 사기 행위가 아닌, 사실상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동의, 나아가 적극적 지시까지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김백준 전 기획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 3월에서 4월경, 이 전 대통령이 김석한 변호사로부터 “에이킨검프 소송비용에 일정 금액을 추가해 줄 테니, 그 돈을 이명박 대통령을 도와주는데 써라”는 취지로 이학수 전 부회장이 언급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이 ‘밝게 미소를 지으며’ 에이킨검프를 통해 삼성그룹으로부터 불법자금을 ‘계속’ 제공받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다스의 소송비를 누군가가 대납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검찰은 향후 재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무료변론의 목적을 왜 물어보지 않았냐는 질문을 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연합)
이 전 대통령과 다스 측은 김경준씨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로펌 LRK에 310만달러(한화 약 33억 2000만원) 이상의 거액을 지급한 상태였다.

심지어 1심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다스에서 소송비로 인해 자금 상태가 크게 악화된 상태였고, 향후 항소심에서도 더 큰 액수의 소송비가 예상됐던 것이 사실이었다.

마침 김석한 변호사를 통해 삼성 측으로부터 소송비 대납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고, 검찰은 이 자금으로 향후 다스의 항소심 소송비는 물론, 이 전 대통령이 에이킨검프와 김석한 변호사로부터 제공 받는 각종 용역에 대한 비용까지 충당할 목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결국 무료 변론이라는 대응 논리를 방패로 꺼내든 이 전 대통령이 향후 재판 과정에서 그 방패로 스스로의 발등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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