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파문…여권 정계개편 촉발 신호탄 되나

드루킹 사건 일파만파…여야 극한 대립 속 김경수 출마 강행

여당 “국정원 댓글 조작과는 달라” vs 야당 “조직적 여론 조작”

친문 세력 잇따른 의혹 연루, 대표주자 사라져…여권 정계개편?

댓글 조작 사건 이른바 '드루킹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19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입장 발표 및 경남지사 출마 선언을 하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드루킹 사건’이 정국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위법 논란 등 파행으로 시작한 4월 임시국회는 ‘드루킹 사건’으로 막을 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드루킹 사건’과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특별검사제 도입을 앞세워 국회 천막농성과 장외투쟁을 지속했다. 한국당은 지난 19일에는 경찰청을 항의 방문해 “드루킹과 관련된 실체적 진실은 평창동계올림픽 댓글 조작 건에서 끝날 일이 결코 아니다. 지난해 대선 때 드루킹 일당-민주당-대선 후보가 연계된 부분에 대해 명확한 경찰 수사를 촉구한다”라며 사실상 ‘게이트’ 사건으로 몰아갔다.

바른미래당 댓글조작대응TF(태스크포스) 단장을 맡은 권은희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즉시 드루킹이 김 의원에게 보고한 기사 3190여 개의 댓글작업을 수사하라”며 “자신들의 수사한 내용에 대해 수사를 받게 되는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수사의 기본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민주당은 야당의 조건없는 국회복귀를 호소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국민투표법과 추가경정예산의 발목을 잡는 것이야말로 국기 문란이고 헌정질서 문란”이라며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고 조건없는 국회 정상화에 즉각 나서라”고 촉구했다.

같은 날 ‘드루킹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고심 끝에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며 “정쟁 중단을 위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다”라면서 “필요하다면 특검을 포함한 어떤 조사에도 당당히 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 관계자는 “김 의원의 특검 발언은 결백을 주장하는 의지나 각오의 차원에서 나온 발언일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일련의 흐름을 놓고 ‘드루킹 사건’이 여권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올 초부터 터진 정치권 이슈가 모두 친노·친문 세력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6·13 지방선거 이후 진행될 민주당 당권 경쟁을 비롯해 민주평화당과의 연대 과정에서 친문 세력이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친문 세력의 대권 주자 역시 부재한 상황이라 이들의 위축을 점치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조직적인 댓글 조작” vs “정부 비방 댓글…국정원 댓글과 달라”

‘드루킹 사건’의 시작은 지난 1월경이었다. 민주당이 지난 평창올림픽 당시 댓글조작을 위해 매크로(명령어 자동실행)를 사용한 의심 정황이 급증하자 이를 수집해 서울경찰청에 수사의뢰한 것이다. 수사 결과 보수 성향 인물이 아닌 민주당원들이 적발돼 구속됐다. 이후 주범 격인 드루킹이 김경수 의원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수백 건의 문자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드루킹과 김 의원 간의 관계에 대해서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 의원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드루킹이 먼저 자신을 찾아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나. 후에 오사카 총영사 인사 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우리가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는 등 반(半)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한국당을 비롯해 야당은 김 의원의 주장을 믿지 않고 있다. 민주당 댓글공작 진상조사단장을 맡고 있는 김영우 한국당 의원은 “드루킹 일당과 민주당은 공범”이라며 “이제 와서 드루킹 일당이 압력을 가하니 두려워서 드루킹 일당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범이지만 이제 용도 폐기하는 것 아닌가”라며 “민주당이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일 수 있다”며 배후를 의심하고 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지난 대선 기간 민주당과 문재인 캠프가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는지, 드루킹 일당의 청원에 신경쓰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나서고, 민주당은 드루킹을 고발한 사건을 취하해 달라고 국민의당에게 부탁했는지, 또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드루킹 일당의 범법 활동에 필요한 뒷돈은 누가 댄 것인지 등을 낱낱이 밝히기 위해서는 특검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나경원 의원은 최근 “국정원 댓글 사건보다 더 무서운 사건”이라고도 비판했다.

야당의 공세가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드루킹이 조직적 댓글을 달기 위해 매크로(자동화 프로그램)를 구매한 것은 지난 1월이며, 정부를 비방했다는 점 등에 비춰 여론조작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개인이 앙심을 품고 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지난 정부처럼 국가 권력기관이 군인과 경찰, 공무원 등을 동원한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향후 수사에서 드루킹이 속한 조직의 자금 출처와 관련해 민주당 혹은 대선 캠프가 연결됐을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친문 세력 잇따른 논란…친문 잠룡 전무한 상태

문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의원마저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목소리가 있다. 올 초 여당에 불리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당사자는 모두 문 대통령과 관련 있는 인사들이었다. 측근은 아니더라도 친노(親盧) 뿌리를 공유하며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시작으로 문 대통령의 지지자 그룹인 정봉주 전 의원, 금융개혁을 위한 회심의 카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에 이어 최측근 김경수 의원마저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친문 세력이 앞으로도 지속적인 공격과 견제를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전히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60%대를 유지하고 있고 지지율이 크게 폭락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며 “이에 힘입어 친문 세력들이 주도권을 쥐려 할 때 악재가 계속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묘하게도 현재 거론되고 있는 차기 대권주자들을 보면 친문이라고 볼 수 있는 인사들이 없다. 현재 여당 내 잠룡들로는 이재명, 박원순, 김부겸, 임종석, 이낙연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 모두 친노나 친문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그나마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가장 친문에 가까워졌지만 운동권 출신이다. 물론 세가 가장 강한 친문 세력이 차기 주자를 점 찍어 지지할 가능성도 있다.

지방선거 이후 치러질 당권 경쟁에서도 친문 세력은 고비를 맞이할 수 있다. 잇따른 의혹 속에서도 당권 욕심을 부린다고 비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남 출신 비문계가 당권을 잡을 경우 여권 정계 개편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지난달 열린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북콘서트에 참석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양 전 비서관이 “(6·13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을 할거냐“고 농담을 섞어 묻자 “그렇게 될 것 같다“고 답한 바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 9단’인 박 의원의 발언을 가볍게 넘기지 못할 상황으로 여권이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허인회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