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재인 정부 신뢰 의문시…“미국 추종 말고 우리 민족끼리”

대북 공격용 미국 전략자산 문제삼아…北, 문재인 정부 묵인 의심

北 “해명 있어야 대화 재개”…북의 남북ㆍ북미 관계 주도권 시각도

남북관계 난기류…文 정부 대북ㆍ대미 관계 시험대에

4ㆍ27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을 채택하면서 순항할 것 같던 남북관계가 난기류에 휩싸였다.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한데다 최근엔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삼고 탈북종업원의 송환을 요구하는 등 대남압박을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현 정부를 압박하면서 남북관계가 예전 경색국면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남북 정상이 만나 화해와 협력을 약속한지 한달도 안돼 상황이 급변하면서 남북관계는 타격을 입었고, 국민 사이엔 북한에 대한 불신이 다시 점화되는 양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 여론 확산에도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난감해하는 모양새다.

북한의 돌변은 22일 한미정상회담뿐 아니라 내달 12일 북미정상회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20일 밤 10시 반에 통화를 한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이 대남 태도를 바꾼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진짜 이유’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이 태도를 바꾼 실질적 이유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즉,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잘 해보려는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머뭇거리고 끝내는 미국을 따를 것이라는 의구심을 북한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예정된 남북 고위급회담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도 그러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의심 때문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北, 미국 전략자산 문제로 文 정부 의심?

북한이 우리 정부에 대한 태도를 바꾼 신호탄은 16일 예정된 남북 고위급회담을 당일 새벽에 일방적으로 무기한 연기한 것이다.

당시 북한은 한국과 미국 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며 고위급회담을 중지하겠다고 밝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북한은 당시 미국의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며 “조미(북미) 수뇌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북미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미국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북한은 17일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단장인 리선권 위원장을 내세워 남한만을 겨냥한 메시지를 던졌다.

리 위원장은 “미국 상전과 한 짝이 되어 역대 최대 규모의 연합공중전투 훈련을 벌려 놓고…”라고 한데 이어 “이 모든 행태가 과연 청와대나 통일부, 국정원과 국방부와 같은 남조선 당국의 직접적인 관여와 묵인비호밑에 조작되고 실행된 것이 아니란 말인가”라며 청와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들은 “북한이 ‘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고 청와대를 공격한 것은 한미연합 훈련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자산 때문”이라고 전해왔다. 북한 정부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협할 수 있는 미국 전략자산이 동원되는 데에 대해 북한은 충격을 받았고, 우리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한 것이라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실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초 방북한 우리 특사단에게 당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연기된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 문제와 관련해 “4월부터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며 “한반도 정세가 안정기로 진입하면 한미훈련이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맥스선더’ 훈련을 문제삼은 것은 미국 전략자산 때문이라는 게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이들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대북 공격용 미국 전략자산이 한국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이를 문재인 정부에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만족할만한 답을 듣지 못했고, 그것이 북한보다 미국 입장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보고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산시킨 것으로 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실제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17일 ‘지금이 북침전쟁 광기를 부려댈 때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좋게 발전하는 현 정세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지만 동족을 해치기 위한 무분별한 북침전쟁연습 소동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대화와 전쟁연습은 절대로 양립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리선권 위원장은 17일 “북남 고위급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 위원장이 밝힌 ‘엄중한 사태’에 대해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미국 전략자산이 한국으로 입항하는 것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조율한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해왔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신뢰에 의문을 가졌다는 설명이다.

미국 전략자산이 대형선박에 실려 한국에 당도하려면 한달 이상 걸린다. 따라서 미국 전략자산이 한국에 근접했다면 4ㆍ27 남북정상회담 이전은 물론, 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취임(4월 9일) 하기 전에 미국을 출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에 따르면 4ㆍ27 남북정상회담은 트럼프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어 진행됐다고 한다. 남북이 화해 국면으로 전환된 상황에서는 대북 공격용 미국 전략자산이 한국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미국 전략자산이 중단하지 않고 한국으로 향한 것은 트럼프 정부나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강행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와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 전략자산이 한국으로 향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뿐이라며, 중국이 그러한 정보를 북한에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실제 미국은 “북한이 중국을 다녀온 뒤 태도가 바뀌었다”고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시진핑과 김정은 두 사람이 만난 이후 김정은의 태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중국으로부터 미국 전략자산이 한국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그같은 사실을 확인했고, 만족할만한 답을 듣지 못하자 대남 강경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상징적 조치인 셈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남한에 가장 바란 것은 ‘민족끼리’ 잘 해보자는 것”이라며 “판문점 선언에 그런 뜻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최근 북한이 태도를 바꿔 우리 정부에 강경하게 나오는 것과 관련해 “북한은 우리 민족끼리 서로 발전하고 어려움도 헤쳐나가자는 입장인데 남한이 미국에 의존하고 눈치를 보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자존심 다 버리고 평창올림픽에 참가해 대북 지원을 요청했을 때도 남한은 미국 눈치만 보다 하지 못하자 결국 김정은이 중국으로 달려가 어려움을 해결했다”며 “이번에 북한이 태도를 바꾼 것은 남한이 주체적으로 납북관계에 나서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이자 항의적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소식통은 “북한은 중국을 통해 가장 시급한 식량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고, 더 지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한국이든, 미국이든 당당하게 대할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주체적으로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했지만 최근 북한의 역공에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북미 간 대립과 양국 정상회담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지만 ‘키(key)’는 북한 이 쥐고 있는 모양새다. 오히려 북한이 ‘한반도 운전자’로 비쳐지는 요즘의 국제 형국이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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