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오판해 북미정상회담 공표… ‘한국 때문 위기 초래’ 인식

트럼프, “문 대통령 장담과 북한 얘기 왜 다르냐”

미국, 문재인 정부 잘못된 북핵 정보 전달 과정 따질 듯

북핵 딜레마에 빠진 트럼프 북미정상회담 취소 놓고 고민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 관저 소회의실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부에 단단히 뿔이 난 모양새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 방미 3일 전 밤 늦게 전화한 것은 ‘불편한 심기(discomfort)’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불편한 심기’ 와 관련해 “트럼프는 문 대통령에게 ‘왜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난 뒤 내게 전달해 줬던 개인적 장담(assurance)들과 북한의 공식 담화 내용은 상충되는 것이냐’고 묻고자 토요일(19일) 밤 전화를 걸었다” 고 전했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통해 전달된 북한의 비핵화 협상 의지를 굳게 믿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기로 공표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전개되자 한국의 ‘중재 외교’에 의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의 북미정상회담에 굉장한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길 기대하며 지켜볼텐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게 미국 정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공표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는데 그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두 차례나 평양에 보낸 것은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고 북미정상회담을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향후 핵개발이나 핵실험 등은 하지 않겠으나 보유핵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핵에 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은 곤경에 처할 수박에 없는 상황이다.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외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성과를 이뤄내고 탄핵 위기를 벗어나는 기회로 삼으려던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탄핵의 빌미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처지가 됐다.

트러프 행정부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판을 해 북미정상회담을 하기로 공표한 가장 큰 원인이 한국 정부의 잘못된 정보 때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미국의 정보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을 평양에 보낼 때부터 한국 정부가 전한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에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월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연합)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3월 5일 대북특별사절단대표단으로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한 뒤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정의용 실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고, 이를 철썩같이 믿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결국 정의용 실장이 전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사실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북한이 말한 ‘비핵화’는 앞으로의 핵에 대한 입장이고 기존의 보유핵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통해 그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발표한 뒤로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상태였다.

본지는 정의용 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고 돌아온 뒤 발표한 내용에 문제가 있는 지적을 한 바 있다.(2018년 4월 24일자 제2724호) 북한은 보유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데 정의용 실장이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한데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정 실장은 3월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고 전했다.

정 실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며,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본지가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북한은 비핵화(핵폐기) 의지를 밝힌 적이 없었다. 북한의 핵보유국 입장은 절대 불변으로 김정은 위원장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밝힌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란 뜻도 특사단이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김정일ㆍ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비핵화 목표’를 강조했지만 이는 ‘북한이 비핵화할 경우 미국도 핵을 폐기하라’는 뜻으로 사실상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러한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본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비핵화’에 대한 오독은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입장도 곤혹스럽게 했다. 정의용 실장의 방북 결과(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해듣고 5월 북미정상회담을 공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북한의 핵 입장을 문제삼아 회담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얻을 게 없고 비난이 따를 경우 회담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북미회담이 무산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난이 쏟아질 수 있어 취소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정보관계자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강하게 불만을 토로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나아가 북한의 핵 입장에 대해 미국에 잘못된 정보를 전한 당사자에 대한 책임추궁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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