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의제 ‘북핵’ 합의 실패…北 “보유핵은 양보 못해”

싱가포르 첫 회담에서 ‘비핵화’ 발표, 보유핵은 향후 회담에서 논의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성 김(오룬쪽)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가 이끄는 미국 측 협상팀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북측 협상팀은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북미회담 의제를 조율했으나 5일 현재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렸다.(연합)

6월 12일 개최 예정인 북미정상회담이 1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ㆍ미 실무진 간 판문점 회담이 한창이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가 이끄는 미측 협상단은 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한 북측 협상단과 4차 회담을 가졌다.

북ㆍ미 협상팀은 지난달 27일과 30일 1ㆍ2차 회담을 가진 데 이어 지난 2일에도 3차 회담을 했다.

특히 3차 회담 시점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90분간 회담을 갖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직후 열려 북ㆍ미 간 핵심 의제에 대해 조율이 이뤄졌을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북ㆍ미 실무진 간 판문점 회담은 성과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 김 대사가 지난 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동한 자리에서 “정상회담 전까지 아직 많은 일이 남아 있다”고 밝힌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다.

그동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회담, 그리고 판문점에서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가 이끄는 미측 협상팀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대표로 하는 북측 협상팀 간 회담에서도 미국이 주도적 입장에 설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북한은 뉴욕과 판문점 회담에서 미국에 끌려다니지 않고 북핵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고수했다. 즉, 향후 북핵 실험이나 개발 등을 하지 않는 ‘핵동결’은 수용할 수 있지만 종래 갖고 있는 ‘보유핵’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핵에 대한 의지는 미국과 판문점 회담에서 그대로 유지됐다.

국내외 언론들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회담 결과에 따라 판문점 실무 협상팀이 가동되는 것으로 보도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판문점 회담 결과가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회담을 좌우한 것이다. 다시말해 워싱턴과 평양의 지시를 받은 판문점 협상팀이 회담을 하고 그 결과를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에 보내 합의를 이끌어내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실제 성 김 대사 등 미측 실무 협상팀이 한국 체류 기간을 연장한 것은 북한과의 회담이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회담에도 반영됐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북한은 미국과 시각이 달랐고, 특히 기존의 보유핵에 대해선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영철 부위원장 또한 폼페이오 장관에게 평양의 결정(보유핵 고수)을 전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5월 31일(현지시간) 김영철 부위원장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72시간 동안 실질적 진전이 이뤄졌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직 많은 일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연합)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날 “아마 두 번째, 세 번째 (북미정상)회담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 간 고위급회담에서 북핵 해결에 이견이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미국은 북미정상회담에서의 실질적 성과를 위해 김영철 부위원장을 워싱턴으로 초대하고, 판문점에선 북한과 실무협상을 병행하는 등 만전을 기했지만 기대에 못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북한이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완전하고 검증하며 불가역적인 체제보장’(CVIG)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12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 회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북한 보유핵에 대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보유핵에 대해 ‘답’을 얻어내려는데 반해 북한은 다른 것은 양보해도 보유핵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폼페이오-김영철’ 회담이나 판문점에서의 북ㆍ미 실무협상은 폼페이오 장관이 2차 방북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이뤄낸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전초적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북한이 보유핵은 타협이나 양보의 대상이 아니라고 못을 박으면서 북미정상회담이 영향을 받게됐다. 설령 예정대로 정상회담이 진행되더라도 미국이 바라는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자리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두세 차례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은 비핵화에서 보다 진전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스스로 밝혔듯 향후 핵실험이나 핵개발을 더 이상 진척시키지 않을 수 있지만(핵동결), 기존의 보유핵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이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밝힌 ‘완전한 비핵화’는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들이 핵을 폐기할 때 함께 비핵화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그렇게 되기까지는 보유핵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김정은 위원장이 5월 7ㆍ8일 방중 때 거론한 ‘단계적ㆍ동시적 해법'도 같은 맥락으로 비핵화에 상응한 대가를 요구하면서도 기존 보유핵은 그대로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보유핵 고수 입장은 4일 판문점 회담에서도 변화가 없었다. 다음날 북미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한 판문점 실무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4일(현지시간) “북미정상회담은 싱가포르에서 12일 오전 9시 (한국시간 12일 오전 10시)에 열린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보 관계자에 따르면 판문점 회담에서 ‘의제’ 조율이 안된 것에 화가 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회의 시간을 오전 9시로 못박아 북한에 경고를 보냈다는 것이다.

12일 북미회담까지는 1주일 가량 남았지만 북한이 보유핵에 대한 입장은 확보동해 판문점회담이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싱가포르의 첫 북미정상회담에선 포괄적 의미의 ‘비핵화’에 합의를 한 뒤 향후 회담에서 보유핵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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