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핵 해결 한계 인식…유엔에 해결사 역할 역할 기대

북미회담 김정은 승리…보유핵 끝까지 고수하자 트럼프 양보

‘종전선언’ 가시화, 트럼프 적극 행보, 평화협정 최종 목적

평화협정에 북핵 해결 필수…미국 대신 유엔이 해결사 나설듯

지난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며 환담하는 모습.(연합)

‘세기의 담판’으로 불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미완의 회담’으로 막을 내렸다. 전 세계가 주목한 북한 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확실한 결론 없이 미봉책으로 수습한 양상을 띠고 있어서다.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인 ‘북핵’에 대해 미국이 요구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는 관철되지 않았다. 대신 두 정상 간 합의문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란 포괄적 문구로 대체됐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북미회담의 승자가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이 종래 북한이 갖고 있는 ‘보유핵’을 지킨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CVID를 명문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북핵 협상이 실패할 것을 대비해 ‘종전선언’을 준비했다. 그리고 2차 북미회담에서부터 궁극적으로 CVID식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어낸다는 방침을 세웠다.

실제 북미회담 합의문에는 ‘4ㆍ27판문점 선언 재확인’이라고 명기해 ‘종전선언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4ㆍ27 판문점 선언에 따르면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ㆍ북ㆍ미 3자 또는 남ㆍ북ㆍ미ㆍ중 4자회담을 추진한다.

본지 취재 결과 미국과 북한은 2차회담에서 ‘종전선언’을 구체화하고 이를 계기로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체제 보장’을 동시적ㆍ단계적으로 실천해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편, 미국은 최근 스스로 북핵 해결이 어렵다고 보고 한 발 빼면서 이를 제3기관에 위임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북핵 해결에 유엔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에 감춰진 ‘종전선언’의 의미와 북핵 해결의 향후 흐름을 짚어봤다.

김정은 승자 된 ‘미완의 회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싱가포르 첫 북미정상회담은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의 ‘고집’이 승리한 ‘미완의 회담’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북미회담의 최대 관심사는 북핵 문제 해결이었다. 미국은 CVID식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했고, 북한은 완전한 체제 보장이 선결이라며 맞섰다.

이러한 과정에 북미 양측이 대립하는 핵심은 북한이 종래 갖고있는 ‘보유핵’이었다. 북한이 내세운 ‘체제 보장’은 큰 틀의 명분에 가까웠고 보유핵이 관건이었다. 미국 입장 에선 보유핵을 남겨둔 CVID는 의미가 없었다.

때문에 미국은 보유핵까지 폐기해야 체제보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현재 개발중이거나 미래의 핵은 포기할 수 있으도 기존의 보유핵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미북 실무협상팀이 판문점 회담에 이어 싱가포르에서까지 회담을 지속한 것도 보유핵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당근과 채찍’의 모든 방안을 동원했지만 북한은 보유핵에 관해 일체 물러서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회담 전날 CVID 수용을 공개적으로 최후 통첩했음에도 북한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북핵에 관한 합의는 불발됐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CVID가 빠진 합의문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북핵이 핵심인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승자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이유다.

트럼프 ‘종전선언’ 카드 슬며시 꺼내

김정은 위원장의 승리로 평가받는 첫 북미정상회담은 이미 결과가 예고돼 있었다. ‘시간(12일)’이라는 마지노선이 예정된데다 북한이 핵에 관한 입장(보유핵 고수)이 완고했기 때문이다.

사실 북미정상회담은 하루 전인 11일 결론이 나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세기의 담판’을 눈앞에 두고 11일 밤 9시께 시내 관광에 나선 것이 단적인 근거다. 북한이 ‘보유핵’에 관한 입장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CVID가 빠진 합의가 불가피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도 마지막까지 CVID 관철을 시도하되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또 다른 카드’를 준비했다. 바로 ‘종전선언’이다.

트럼프 정부에 정통한 미국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의 핵심인 북핵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고 ‘종전선언’을 통해 CVID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며 “그러한 데는 성과(CVID 명문화) 없는 회담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회담 의제를 조율하기 위한 판문점 실무 협상팀의 보고와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의 면담을 통해 북한이 보유핵에 대한 확고부동한 입장을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4일 북미회담 취소를 밝힌 뒤 북한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통해 대화 제의를 해온 전례도 있어 회담 직전까지 CVID 관철을 밀어붙였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보유핵 문제가 조율되지 않아 CVID를 합의문에 담지 못할 수 보고 그 전단계 조치로 ‘종전선언’이라는 빅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북한의 김영철 부위원장을 만난 후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종전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眞意)는 종전선언을 넘어 CVID에 있지만 당장 결행이 안될 경우 전단계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12일 서명한 합의문에는 CVID뿐 아니라 종전선언도 명기되지 않았다. 반면 우회적인 표현으로 종선선언을 합의문에 반영했다. 4개항의 공동합의문 중 3항의 ‘4ㆍ27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다’는 부분이다.

이는 미국 소식통 등에 따르면 판문점선언 중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개항 가운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내용이 담긴 3항과 관련있다. 이 합의문 내용은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ㆍ북ㆍ미 3자 또는 남ㆍ북ㆍ미ㆍ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돼있다.

미국 소식통은 “1차 북미회담은 12일이라는 정해진 시간에 ?겨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합의문을 내놓지 못했지만 2차 회담에서는 달라질 것”이라며 “ 특히 ‘종전선언’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남ㆍ북ㆍ미ㆍ중 4국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현실화해 자신에 대한 국내외 관심을 환기시키고, CVID로 나아가는 행보로 세계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탄핵위기를 넘기고 11월 중간선거에도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방중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4일(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고 있다.(연합)

폼페이오 중국행이 의미하는 것

폼페이오 미 국무부장관은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후 13일 한국을 방문하고 다음날 중국으로 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 후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간 것과 다른 행보를 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14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회동해 북미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합의내용 이행을 위한 협력방안, 후속 조치 등을 논의했다. 이어 오후엔 중국으로 날아가 시진핑 주석과 만나 북미회담 내용을 전달하고 미중 간 한반도 종전-평화협정 등 냉전해체 수순을 논의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한국과 중국을 방문해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 회동한 것은 북미회담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 소식통과 관련국 정보 관계자 등에 따르면 종전선언과 CVID와 연계된 평화협정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소식통은 “싱가포르 북미회담에서 CVID가 합의문에 빠진 것을 두고 말이 많지만 트럼프 정부는 ‘완전한 비핵화’에 그런 의미가 포함된 것으로 본다”며 “그것을 실현하는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이 종전 당사국이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과 ‘종전선언’과 관련해 깊은 얘기를 나눴고, 시진핑 주석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이번 북미회담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고, 당 개편과 정책의 최우선 순위도 ‘경제’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종전선언’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남북이 4ㆍ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만큼 종전선언이 7월 27일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은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부터 만 65년 되는 날이다.

그에 따르면 7월 27일 판문점에서 종전 당사국인 북한과 중국, 미국 등 참전국을 대표한 유엔, 그리고 이해 당사국인 한국이 참여해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다.

미국 소식통은 “미국은 종전선언에 중국이 참여하는 것을 놓고 많은 대화를 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종전선언에 따른 한반도 상황 변화와 동북아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연합)

미국, 북핵 해결 유엔에 떠넘기나

6ㆍ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한 미국의 행보가 변화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미회담 이전만 해도 CVID 관철을 위해 전력하던 미국이 최근엔 한 발 빼는 듯한 모습이다. 대외적으론 CVID식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면서 한편으론 그와는 상반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의 전단계라 할 수 있는 종전선언를 매듭짓는데 적극 나서면서도 북핵에 대해서는 “검증이 핵심”이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은 싱가포르 북미회담을 전후해 ‘종전선언’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실제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북핵 해결에 대해선 ‘완전한 비핵화’ 원칙론을 반복할 뿐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비핵화’ 임무를 제3기관에 위임하려는 행보까지 보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4일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북미정상회담의 의의를 설명하면서 “(북핵 신고 내용과 완전한 폐기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이 거기서 핵심적(central)”이라고 강조했다. 완전한 북핵 폐기보다 검증에 방점을 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말한 ‘검증’은 미국 등 특정 국가가 할 수 없고 유엔과같은 국제기구만이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북미회담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의 정보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과 핵 협상을 하면서 그들의 보유핵을 포기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이 북핵을 포기시키는 대신 차선책을 찾거나 제3기관이 그 역할(CVID)을 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미국이 북핵 해결에 직접 나서기보다 유엔에 역할을 위임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보유핵을 고수하는 상황에선 유엔이 해결사가 되는 게 현실적이다.

관건은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보유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선 그들의 보유핵을 인정하되 실제론 사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재를 하면 ‘완전한 비핵화(CVID)’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북한과 30년 가량 교역을 하며 북측 내부 사정에도 정통한 장백산 해외동포사업지원단 이사장은 “북한은 보유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해외로 이전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그들의 정치적.군사적 미치는 곳에서 관리되고 북한 체제가 보장된다면 보유핵을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백산 이사장은 “DMZ 지역에 북핵을 보관하고 유엔군, 미군, 남북한이 공동관리하면 비핵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입장에서도 유엔군과 미군이 DMZ에 주둔할 경우 대북 공격 같은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되며,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체제 안전만 보장해준다면 주한미군이 주둔해도 상관 없다”고 한 것과도 상통한다.

최근 미국은 북핵 문제를 비롯한 북한과의 관계에서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더욱 주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핵을 둘러싼 국제 역학관계 변화와 한반도 정세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갈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