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 설치 위해… 권력에 목매며 사법부 독립 제 발로 차 버려

법원행정처 특별조사단, ‘사법농단’ 관련 196개 문건 추가 공개

상고법원 추진하며 청와대-국회-법무부-검찰-언론 등 ‘로비’ 전략

특히 ‘열쇠’ 쥔 청와대 동향 파악해 ‘거래용 카드’ 제시하기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사법농단' 의혹 문건이 추가로 공개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사법부 블랙리스트에서 촉발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추가 문건 공개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해당 문건들에서는 당시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국회, 현직 판사, 법무부, 검찰, 언론에게까지 손을 뻗으며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세운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청와대 고위 인사에 로비성 계획을 세우고 현직 국회의원들을 회유 및 압박하는 동시에, 언론에도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무리하게 조성하려 하는 등 불법성 짙은 계획이 문건에 담겨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그렇다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독립을 해칠 우려가 있는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면서까지, 도대체 왜 상고법원 도입에 강한 의지를 보였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미공개 문건 공개

지난달 31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내용이 담긴 미공개 문건을 모두 공개했다.

이날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조사한 문건 410개 가운데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228개 문건 중 중복된 32개를 제외한 나머지 196개 문건을 비실명화해 사법부 전산망에 게재했다.

추가로 공개된 문건에는 특별조사단의 기존 발표를 통해서도 알려진 바 있는 당시 법원행정처의 ‘인권과 사법제도 연구를 위한 소모임(인사모)’과 현직 법관들의 익명 인터넷 커뮤니티인 ‘이판사판야단법석 카페’의 동향 파악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지난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이 선고한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각계의 반응 그리고 통합진보당 해산 및 소속 정당 의원들의 국회의원직 상실에 따른 비례대표 지방의원의 행정소송에 관한 보고 및 대응 문건 등도 포함돼 있다.

앞서 언급한 문건에 대한 내용들은 지난 5월 25일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에 관련된 조사보고서에도 정리돼 있었다.

주목할 부분은 이날 추가 공개 문건 대부분이 ‘상고법원 입법’과 어떻게든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지난 6월 5일 특별조사단이 공개했던 98개의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문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및 판사사찰' 의혹과 관련한 미공개 문건이 지난달 31일 공개됐다. (사진=연합)
해당 문건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국회 등을 상대로 각종 로비와 회유, 압박 등의 전략을 짰던 정황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다.

공개 문건 상당수가 ‘상고법원’과 연관돼 있어

실제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지난 2015년 7월 작성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전략’ 문건에서는 상고법원 도입의 최종 정책 결정은 BH(청와대)이자 VIP(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국회와 법무부, 검찰의 지지를 얻기 위해 청와대의 협조가 절대적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적시돼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청와대 측에 ‘협상 카드 제시’ 그리고 ‘BH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책 아이디어 제시’라는 문구를 써가며 박근혜 정부가 당면하고 있던 각종 현안에 대해 사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상고법원 입법에 대한 청와대의 반감을 없앨 수 있는 새로운 설득 방안 중 하나로 상고법원 판사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 강화 등의 해결책이 제시돼 있다.

또 이 문건에는 당시 청와대 내에서 이병기(71) 전 비서실장의 입지가 축소되는 반면, 우병우(51∙구속기소) 전 민정수석의 입지가 강화돼 그가 비서실장보다 대통령과 더 많은 독대를 하고 있다며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민정수석실과 보다 가까워져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겨 있었다.

심지어 법원행정처는 지난 2016년 2월 24일 작성한 ‘2016년 사법부 주변 환경의 현황과 전망’ 문건에서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해 ‘우병우의 청와대 → 검찰 파워의 BH 주도 여전’, ‘포스트 김기춘’, ‘王(왕)실장에 이은 王수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는 청와대를 상대로 로비성 전략을 세웠다면, 국회에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성향 분석을 통한 ‘회유’와 ‘압박’ 중심의 전략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4월 21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명의로 작성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공청회 후 의원별 대응전략’ 문건에서는 상고법원 입법안에 대한 국회 법사위 의원들의 입장을 찬성, 약한 찬성, 유보, 약한 반대 등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이 문건에서는 상고법원 입법에 대한 찬성파(派)로 분류된 의원들에게는 유보나 반대 의견으로 동요되지 않도록 단속하며, 유보 또는 반대파 의원들에게는 이들을 접촉해 설득하는 방안이 기재돼 있다.

또 법원행정처는 지난 2015년 10월 3일 정기국회 이후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대응전략으로 대(對) 여당 및 대 야당 전략을 달리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당시 여당 내 김진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 등 국회 내 검찰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상고법원 입법 추진에 대한 반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는 동시에, 야당의 경우 계파 갈등으로 상고법원 입법에 대해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에 일임하고 있는 분위기에 맞춘 전략이 관련 문건에 적시돼 있다.

법원행정처는 관련 문건에서 대 여당 정책으로 상고법원 입법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던 김진태 의원 등에 대해 직접적인 설득보다 청와대를 통한 영향력 행사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여당 내 실세들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현 무소속) 의원과 윤상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방안도 구상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을 작성 및 지시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연합)
대 야당 전략으로는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던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지속적 접촉과 유대관계를 강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당시 야당 간사였던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서는 자기 주관과 고집이 강하며 한명숙 전 총리의 유죄 판결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성급한 직접 접촉시도는 역효과’라는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면서 전병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통해 전해철 의원을 우회적으로 설득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에게는 ‘맞춤형’ 설득 전략

지난 2015년 3월 17일 작성된 ‘상고법원안 법사위 통과 전략 검토’ 문건에서는 각 지역구 의원들에 대한 적극적인 회유 전략도 제시돼 있다.

해당 문건에서는 이병석 당시 새누리당 법사위 의원을 설득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 의원이 지난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던 노후화된 대구법원 청사의 이전 추진이라는 관심사를 공략하고, 그의 지역구였던 경북 포항의 법원 내지 지역 발전을 위한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제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춘석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서는 당시 그의 지역구인 전북 익산의 시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을 공략해 고등법원 즉 항소심에서 해당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기보다는 당분간 사건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는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법원행정처는 이 문건에서 상고법원 입법에 관한 국회 법사위 통과 방안을 위한 로드맵 관련 문건을 제작하는 등 주로 국회 법사위에 대한 회유 및 압박을 통한 전략을 기획했다.

물론 2016년 1월 19일 작성한 ‘4월 총선 이후 국회 전망’의 문건에서처럼 선거나 정기국회, 국정감사 이후 각 여야 정국의 변화와 정당별 기조 변화, 특히 상고법원 입법에 대한 국회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수차례 관련 문건을 만들었다.

특별조사단이 이번에 공개한 추가 문건들은 당시 법원행정처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전략적 대상이 비단 정치권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지난 2015년 3월 23일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상고법원 추진동력 강화를 위한 내부소통 방안 검토’ 문건 등과 같이 사법부 내부에서 상고법원 입법에 대한 긍정적 여론을 형성하자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2015년 4월 13일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법무부 설득방안’ 등의 문건에서는 법무부의 상고제도 개선에 대한 입장 파악 및 법무부에 대한 설득 전략을 짠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특별조사단이 지난 5월과 6월 각각 발표한 조사보고서와 98개 문건에서는 대략적인 서술만 돼 있었지만, 법원행정처의 언론기관을 이용한 상고법원 입법에 대한 계획이 이번 추가 공개 문건에서는 특정 매체의 이름을 거론하는 등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지난 2015년 4월 25일 기획조정실과 사법정책실이 공동으로 작성한 ‘조선일보를 통한 상고법원 홍보 전략’ 문건에서는 조선일보를 통해 상고법원 입법에 대한 설문조사, 좌담회, 매체 내 논설위원의 칼럼 작성 등의 콘텐츠를 생산해 긍정적 여론을 조성해 나가자는 목표가 제시돼 있다.

그 외에도 진보매체의 보도에 대한 법원행정처 자체적인 분석 및 보고 문건과 각 언론사별 동향에 대한 문건이 여러 건 생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이번 추가 문건 공개와 관련한 공식입장을 발표하며 “법원행정처가 주요 문건들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다시는 이와 같은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인해 국민을 위한 재판에 역행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사법부 구성원 모두가 겸허한 자세로 재판을 통해 정의를 실현해 나가겠다는 약속”이라며 “법원행정처는 개시된 일련의 형사사법절차를 통해 이번 사태의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관련 법적 책임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안철상 대법원 법원행정처장. (사진=연합)
물론 안 처장은 “수사과정에서 발견되는 중대한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문건에 관해 관련자에 대한 징계절차,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을 충실히 준비해 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이며 이번 사건이 단순한 ‘폭로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사법부 블랙리스트’에서 시작해 최근 ‘청와대-대법원 재판거래’ 의혹, 그리고 ‘사법행정권 남용’ 또는 ‘사법농단’ 의혹으로까지 확대된 이번 사건이 기어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관련 문건 작성에 깊숙이 관여된 것으로 알려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윗선’을 향할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탄희 판사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이번 사법농단 사건은 지난해 2월 이탄희 수원지법 안양지원 판사가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이 난 직후, 법원행정처가 다루는 판사 동향 블랙리스트를 관리하라는 지시를 받고 법원행정처 근무를 거부한 것이 사실상의 발단이 됐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막을 내리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데 이어 검찰에 고발당하는 등 일이 커졌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6년의 임기를 전부 채운 뒤 퇴임했다.

양 전 대법원장 퇴임 후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련 소동은 한동안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원세훈(67ㆍ구속기소)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된 선거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재판에서 법원행정처가 하급심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하는 동시에 청와대에 이를 보고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시 사법부가 발칵 뒤집히기 시작했다.

당시 원세훈 전 원장은 항소심에서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 2015년 7월 대법원에서 유죄 판단의 근거로 채택된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며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며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지난 5월 25일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와 지난 6월 5일 역시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98개 문건 중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의 내용에 따르면, 당시 법원행정처는 원 전 원장에 대한 판결에 청와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청와대 법무비서관실을 통해 재판의 전망을 문의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문건이 작성된 날짜는 원 전 원장의 항소심 선고 다음날인 지난 2015년 2월 10일 작성됐고, 당시 법원행정처는 법무비서관을 통해 사법부의 입장을 청와대 내부에 잘 전달하는 한편 향후 내부 동향을 신속히 알려주기로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진=연합)
특히 해당 문건 내의 ‘향후 정무적 대응 방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 필요’라는 부분에서 ‘상고심 처리를 앞두고 있는 기간 동안 상고법원과 관련한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을 모색하는 방안 검토 가능’이라는 기재가 돼 있다.

그만큼 원 전 원장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선고가 이와 같이 대법원 및 법원행정처의 청와대에 대한 적극적인 비위 맞추기에 따른 결과였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난 2월 1일 법학교수 및 연구자 120명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및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청와대에 대한 보고’ 등의 의혹과 관련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차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며 소위 ‘양승태 대법원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박근혜 청와대가 ‘원세훈 판결’에 관심 가진 까닭은

무엇보다 당시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사건을 두고 단순히 사법부가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대법원이 원 전 원장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닌, 대법원과 청와대 양측의 ‘거래’였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그렇게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이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며 청와대 측에 성의를 보인 것이라면, 이들이 청와대로부터 얻고자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시선이 집중됐다.

이에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와 관련 문건들이 공개되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 과제였던 상고법원 입법을 두고 청와대와 거래를 하려 했다는 정황이 가장 큰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지난 2015년 4월 13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것으로 파악되는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법무부 설득방안’ 문건에는 법무부와 검찰 측에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설득 방안의 조건으로 영장제도의 변화와 이들이 추진하는 형사제도로 개선 방향을 제시하려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이들의 수사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영장제도에 있어 영장 없는 체포의 활성화라는 개선을 약속하는 동시에 보호수용제와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제도, 중요참고인 출석의무제 도입 등 형사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이었다.

정리해 보자면 대법원이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청와대에 로비성 계획을 세웠고 국회에는 각종 회유와 압박을 위한 전략을 짜는 한편, 사법부 내 현직 판사들과 각 언론매체를 대상으로도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긍정적 여론을 조성했다.

특히 사법부의 최고기관인 대법원이 법무부와 검찰에마저도 ‘굴욕적인’ 로비성 설득 방안을 강구하면서 상고법원 도입에 혈안이었던 점은 역시 이것이 현재 사법농단 사건의 출발점이라는 의혹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특별조사단도 조사보고서에서 이번 사태의 배경과 원인으로 ‘무리한 상고법원 입법화 추진’을 꼽으면서 “상고심의 개선 내지 강화라는 정책목표가 너무나 시급하고 절박한 것이라는 점에만 몰입한 나머지 원칙에 위배해 추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라며 “그 과정에서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고, 학술활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같은 법관의 기본권이 침해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정말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추가로 공개된 사법농단 문건에 따르면, 양승태(사진 오른쪽) 사법부는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에 로비성 전략을 짠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
현행 3심제 재판의 절차는 1심 지방법원과 2심(항소심) 고등법원, 그리고 3심(상고심) 대법원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만약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3심 재판을 전담하게 되고, 대법원은 공적 이익이 중대한 사건 등 일부 중요 사건만을 다루게 된다.

상고법원 도입이 논의될 당시 사법부와 정치권에서는 상고심 소송건수의 증가로 인한 대법관의 업무 과중을 줄이며, 방대한 사건으로 인해 소위 날림 재판을 하지 않도록 하자는 상고법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승태는 뭘 얻고자 상고법원에 매달렸을까

이후 2014년 9월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주도해 대법원 청사에서 공청회까지 열면서 상고법원 입법 추진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반대 여론 중에는 대법관들의 업무 과중이 정말 문제라면 대법관을 늘리는 방안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또 지난 1990년 폐지된 상고허가제, 즉 대법원이 상고심 소송 중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에 한해 기각한다는 제도를 재도입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상고심 법원이 신설된다고 할지라도 기존 대법원의 업무 과중을 상고심 법원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만큼, 근본적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특히 반대 여론 중에는 상고허가제가 폐지된 이유와도 같이 대법원이 특정 재판을 골라서 판결할 수 있고, 동시에 국민들이 평등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당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만큼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상고법원 입법 추진에서 한발 물러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그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법원행정처를 통해 뒤에서 엄청난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본지가 법조계 인사들을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상고법원이 생기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권위는 기존보다 더 강력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상고법원은 지방법원, 고등법원보다 상급심 법원으로서, 대법원장의 지휘∙감독권 아래 있는 법관들의 수가 더욱 많아진다. 특히 대법원장이 법관 임명과 전보 인사권, 각급 판사 보직권 등의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쥐고 있는 만큼, 현직 법관들이 상고법원 법관으로 승진하기 위해 소위 ‘대법원장 라인(Line)’에 자발적으로 속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양승태 대법원장 입장에서는 자신의 구미에 맞는 인사들을 상고법원에 배치하면 퇴임 후에도 사법부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던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전략’ 문건에서 제시됐듯이 상고법원 판사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강화하면서 정권의 뜻과 맞는 법관들도 더 많이 양산해낼 수 있는 셈이었다.

지방법원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상고법원 도입은 법원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어서 개헌이 필요하다”며 “개헌은 단순히 대통령이나 국회 차원에서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찬성 여론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국회뿐만 아니라 법무부와 검찰, 언론 등에 대대적으로 손을 뻗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부 법조계 관계자들은 상고법원 도입으로 대법관들의 업무 과중을 덜어주고 대법원장의 권위를 더욱 높이자는 이유만으로 당시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동시에 법무부와 검찰 측에도 굴욕적인 전략을 짜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존재할 것이며, 당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 외에도 다른 현안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민철 기자

<박스기사> 양승태 장막에 가려진 사법농단 의혹 관련자들

梁 혼자서 주도 못했을 사법농단… ‘그들’의 자발적 동조 있었나

사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6월 1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에서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재직 당시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상고법원 입법에 반대하는 법관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저는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이나 부당하게 간섭,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며 “그런 정책(상고법원 입법)에 반대를 한 사람이나 또는 어떤 일반적 재판에서 특정 성향을 나타냈던 사람이나, 저는 그런 것을 가지고 당해 법관에게 어떤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아니면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입장 발표 이후에도 법조계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된 문건 작성과 재판거래 및 부당한 인사조치 등을 지시한 정황이 상당하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설령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입장 발표 내용처럼 결백하며 법원행정처가 이번 일의 실행을 주도했을지라도, 그가 최소한 관련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동시에 과연 이번 사건을 주도한 이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소수의 법원행정처 간부들뿐이냐는 점에도 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 재판연구관들과 법원행정처 내 각 부서별 차장급 간부와 심의관들이 이번 사건에 자발적으로 동조하거나 묵인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던 현직 부장판사가 최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보상금 청구소송에 대한 상부의 압박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해당 사건은 현재 공개된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문건에 적시돼 있고, 재판거래 사건 중 하나라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부장판사는 SNS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보상금 청구 사건이 들어와 종전 사건의 판시를 인용한 의견서와 보고서를 주심 대법관에게 보고했다”며 “난데없이 수석연구관이 ‘판결 이유가 그렇게 나가면 안 된다’고 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리해 보자면 재판연구관이 대법원에 올라온 상고심 처리 사건을 검토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초안과 의견 등을 담은 보고서를 대법관에게 보고하기 전 선임인 수석연구관으로부터 제지를 당했다는 설명이다.

사실 대법원 판결에서 사건 요약과 법리적 의견 제시, 판결문 초안 작성 등의 주요 업무는 재판연구관들이 맡고 있을 정도로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그만큼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서 재판거래가 실제로 이뤄졌다면 이들 재판연구관들의 개입 역시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문제가 되고 있는 문건 속 법원행정처 각 부서의 차장급 간부나 심의관들 역시 사건에 개입했을 것으로 의심받는 핵심 인물들에 포함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건에 지시를 내리거나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그와 생각을 같이했던 재판연구관들과 법원행정처 인사들의 ‘자발적 동조’가 이번 사건을 키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전직 지방법원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을 전적으로 주도했다기보다는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나 행정처 실무자들이 대법원장의 성향이나 기조에 자발적으로 따랐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게 대법원장 라인(Line)을 유지한 채 재판연구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향후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대법관 등으로 승진하는 데 유리한 이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승태 전 원장의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에 의지가 강했던 이유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입법을 구상하고 있었던 만큼, 고등법원보다 한 단계 높은 상고법원 신설이 현실화된다면 해당 요직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심리 역시 양 전 대법원장의 기조에 자발적으로 맞추는 이유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현재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자료 확보 시도에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무더기로 기각하는 점 역시 당시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은 대법원 및 법원행정처 인사들과 현재 법원 인사들과의 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런 까닭에 향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 조사가 이뤄진다면 법원 내부의 반발 및 분열, 그리고 사법부와 법무부 간의 갈등 등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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