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사실과 허구 섞여… 김정일 만나는 장면, 北 전문가 “불가능한 일”

영화 속 리명운 ‘경제통’, 안희정과 인연…소식통 “현재 北 경제 관련 일 하고 있어”

실제 흑금성 발언, 영화 속 왜곡 부분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 줄 수 있어

영화 '공작' 포스터

영화 ‘공작’이 개봉 15일만에 관객 400만을 훌쩍 넘는 흥행 몰이를 하고 있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란 암호명으로 활동한 대북(對北) 공작원 박채서씨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영화에서 박씨는 국가안전기획부 요원으로 북한 핵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북한 내부로 침투해 김정일과도 만난다.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려는 ‘북풍(北風)’을 막은 영웅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영화는 박씨의 활동과 당시 사건 등 실화(實話)를 근거로 제작됐다고 강조한다. 실제 영화에서 박씨가 신분세탁을 하는 장면이나 북한 경제 일꾼 리명운을 만나고, 아자커뮤니케이션에서 광고업을 하는 부분 등은 사실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박씨를 비롯, 리명운 등을 잘 아는 지인과 대북 소식통들은 “영화는 영화다”라고 말한다. 영화와 실제가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영화=실화’로 착각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사실로 오인하는 것이다.

영화 속 실제 인물과 관계자들은 영화에서 왜곡된 부분이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 아직 북한에 현존하고 있는 점도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영화 ‘공작’의 허구와 진실을 짚어봤다.

영화 ‘공작’의 두 축 박석영과 리명운의 실체

영화 ‘공작’의 두 중심 인물은 공작원 ‘흑금성’ 으로 나오는 박석영(황정민 역)과 카운터파트너인 북한 대외경제 일꾼 리명운(이성민 역)이다.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황정민 역)

박석영, 즉 박채서씨(64)는 현실에서, 영화에서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박씨에 대해선 영화에서처럼 남북 경협과 광고 합작사업을 성사시키고, 1997년 대선에서 안기부의 북풍 공작을 막고 김대중 대통령의 단선에 기여한 인물이란 평과 그 반대로 대북 공작원인 ‘이중 스파이’이고, 남북 경협도 과장됐으며, 김정일과의 만남은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 등 ‘부풀려진 인물’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공작원 ‘흑금성’으로 활동하던 박채서씨가 처음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1998년 3월 18일 <한겨레>의 ‘대북 공작원 ‘흑금성’의 실체‘ 보도를 통해서다.

박씨에 대한 재판 기록과 지인들의 정보를 종합하면 박씨는 충북 청주고를 거쳐 육군3사관학교(14기)를 졸업하고 직업군인이 됐다. 소령 진급 후 육군대학에 들어가 3등으로 과정을 마친 박씨는 국군정보사령부에 배치돼 한미합동정보대 902정보대 A-23팀에서 일했다. A-23팀은 미국 중앙정보부(CIA)와 공조해 대북 정보를 수집한 부대다. 박씨는 1차 중령 진급에서 탈락한 후 1993년 소령으로 전역한 뒤 안기부로 소속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신분을 숨기기 위해 영화 ‘공작’에서처럼 군에 불만을 토로하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등 고도의 위장술을 폈다.

박씨가 안기부 공작원이 된 배경과 시점에 대해선 그가 1993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관계자와 접촉한 시기로 전해진다. 그리고 94년부터 영화 ‘공작’에서 카운터파트너로 등장하는 리명운을 본격 상대했다.

‘공작’에서 북한 핵심 인물로 등장하는 리명운(64)의 본명은 ‘리철’이다. 리철은 김일성종합대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졸업 당시 최고의 성적(학점)으로 졸업해 주석궁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원 및 교수로 근무하다 90년대 중반 해외자본 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을 꾀한 노동당의 필요에 의해 정무원 대외경제위 산하 합영총국 심의처장으로 옮겼다. 그가 가장 먼저 근무한 곳은 북중 접경 도시인 중국 단둥(丹東)이었다. 이후 94년 무렵 베이징으로 옮겼다.

그는 90년대 중반부터는 ‘리철운’이라는 이름을, 2000년대 중반부터는 ‘리호남’이란 가명을 주로 썼다. 박채서씨가 영화 ‘공작’에서 리명운을 만났을 때 그의 이름은 ‘리철운’, 또는 ‘리철’이었다.

리철과 단둥과 베이징에서 3년 가까이 지낸 인사에 따르면 그는 북한의 대외 경제, 남북 경협 등 주로 ‘경제’에 관한 일을 했다. 영화 ‘공작’이나 일부 언론에서 ‘대남 공작’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묘사된 것은 사실과 다르다.

더욱이 검찰이 박씨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하면서 제출한 공소장에서 리씨에 대해 대남공작기관인 ‘작전부’ 산하 ‘조선명성회사’ ‘민족경제협력연합회’ 등에서 대남 정보수집 등 공작활동을 수행해 왔다고 기술한 것은 왜곡된 측면이 강하다. 북한은 ‘경제’ 담당과 ‘대남 공작’ 영역이 구분돼 있다. 일부에서 두 영역을 겸하는 경우가 많고, 영화 속 리명운의 신분이 그러하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리철은 대남 공작 담당이 아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리씨는 현재 평양과 단둥을 오가며 북한의 대외 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리씨가 ‘경제’ 영역에 전력해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영화 '공작'에서 리명운(이성민 역)

안희정 ‘미투’ 없으면 가장 주목받을 ‘공작’ 의 北 주인공

영화 ‘공작’에서 북한 핵심 인물은 리명운이다. 그는 흑금성과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축으로, 북한의 또다른 ‘영웅’으로 묘사돼 있다.

그런 리명운(당시는 리호남 가명 씀)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006년 10월 20일 베이징에서 만났다. 당시 안 전 지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특명’으로 리호남 대외경제위 참사를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안 전 지사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미션’을 갖고 리 참사를 만났다는 설도 있었으나 청와대는 부인했다.

안 전 지사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핵실험 이후 무슨 중요한 얘기가 있는 건지 들어보러 간 것이었는데 그런 게 없었다”면서 “(정상회담이나 특사에 대한) 적극적인 제안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기업 부문 간담회에 리 참사가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것이 확인되면서 그가 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 과정에 모종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리 참사는 2000년 9월 <오마이뉴스> 김당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이 안 전 지사를 만난 때부터 추진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리 참사는 그해 10월 3일 남북 경제인 간담회에서 자신을 ‘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 리철’로 소개했다. 당시 대기업 부문 간담회에는 남측에서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을 단장으로 해서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과 이구택 포스코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7명이 대표로 참석했고, 북측은 한봉춘 내각참사를 단장으로 해서 리호남 참사 등 5명이 대표로 참석했다.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에 열린 경제인(대기업 총수) 간담회에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리호남(왼쪽에서 두번째) 무역성 참사.

안 전 충남지사는 ‘미투’ 사건에 연루되기 전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다. 하지만 ‘미투’ 사건과 함께 잠룡의 지위도 사라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일부에선 안 전 지사의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분석도 있다. 비록 ‘미투’ 관련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정치적 재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만일 안 전 지사가 ‘미투’에 연루되지 않고 대권행보가 순항했다면 차기 정부의 남북관계에서 리철 참사는 가장 주목받는 북측 인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었다.

한편, 안 전 지사가 2006년 10월 베이징에서 리 참사와 접촉한 이후 이화영 의원(현재 경기도 통일부지사)이 그해 12월과 이듬해 1월 북측과 계속 접촉했다. 이화영 통일부지사는 이해찬 의원의 최측근으로 이 의원의 대북 행보에 여러차례 동행했다.

리철 참사가 언제든 남북 경협에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박석영(박채서) 김정일 만남 사실인가

영화 ‘공작’의 하이라이트는 박석영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노동당 총비서)을 만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박석영은 두 차례 김정일을 만난다. 북한과의 광고사업 등을 논의하기 위해, 그리고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려는 북풍 공작을 막기 위한 자리에서다.

박채서씨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는지 여부는 아직 논란이 되고 있다. 박씨는 영화의 바탕이 된 김당 기자의 <공작>이란 책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 상영 후 가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을 만났다”고 밝혔다.

반면 박씨는 다른 인터뷰에선 김 위원장을 만난 것에 대해 부인하거나 애매모호한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흑금성 관련 보고서가 공개된 지 나흘 후인 1998년 3월 22일 박씨는 김당 당시 <시사저널>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정일과의 만남에 대해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 당신의 안기부 정보 보고에 따르면, 김정일 총비서를 면담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과연 만났는가.

“(빙그레 웃으며) 상상에 맡기겠다. 너무 예민한 부분이니 ‘노코멘트’한 것으로 해 달라.”

최근 박씨는 김정일과의 만남을 부인했다. 지난 8월 11일 자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박씨는 ‘김정일과 만났느냐’는 질문에 “안 만났다”며 장성택이 북한에서 만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박씨가 김 위원장을 만났다는 주장에 대해 한결같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씨 정도의 인물이 김 위원장을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리명운(리철)을 잘 알고 그 윗선과 가까이 지낸 베이징의 대북소식통은 “당시 베이징에 나온 북한 인력은 강덕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실장 겸 통일전선부 국장이 총괄하고 있었고 리철운도 그의 지시를 따랐다”며 “강덕순 정도면 몰라도 리철운이나 박채서 정도의 사람이 김정일을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박채서씨가 김정일을 만났는지 여부는 어느 때인가 북한이 진실을 밝힐 것”이라며 “그가 접촉한 북한 인사들이 아직 현존해 있는 상황에서 그의 발언이나 영화가 사실을 왜곡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왼쪽)과 리명운이 만나는 장면.

북풍(北 風) 막은 일등 공신?

영화 ‘공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장명 중 하나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권과 안기부 등이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북한을 활용하려 했다는 장면이다. 이른바 ‘북풍’ 공작이다.

영화에서 박석영은 리명운과 함께 김정일을 설득해 북풍을 막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실제 97년 대선 과정에서 ‘북풍’ 논란이 있었다. 당시 박채서씨는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과 접촉하는 인사들과 대화 내용을 안기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흑금성은 ‘북풍’이 벌어지던 와중에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정동영, 천용택 의원을 만나 안기부가 진행하던 김대중 후보 낙선을 위한 북풍 공작을 야당에 알려줬다고 전해진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북풍 사건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흑금성은 정권 교체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물론 박씨에 대해선 ‘이중스파이’ 논란 등 다른 평가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박석영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북풍 중단을 설득했다는 것은 완전한 허구다.

박종진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