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미국서 김정은 발언 인용, 北 취약점 노출돼
트럼프 정부 대북 강경 노선 돌변…‘비핵화 게임’ 美 주도권 쥐어

제73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외교협회(CFR)에서 열린 "위대한 동맹으로 평화를(Our Greater Alliance, Making Peace (부제: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President Moon Jae-in))”행사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
미국과 북한의 북핵을 둘러싼 ‘비핵화 게임’의 판이 확 바뀌었다. 북한 핵의 ‘비핵화’를 놓고 벌이던 미국과 북한의 힘겨루기에서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6ㆍ12 첫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 미국은 채찍과 당근을 앞세워 ‘비핵화’에 전력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기존의 ‘보유핵’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로써 북핵의 ‘완전한 비핵화(CVID)’를 이뤄내 미국은 물론 국제 지도자의 위상을 확보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은 물거품이 됐고 국내외 비판에 직면했다. 6ㆍ12 정상회담 후에도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은 달라진 게 없어 탄핵 위기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을 초조하게 했다.

그런데 북한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며 국면전환에 고민하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뜻밖의 선물’이 전해졌다는 후문이다. 겉으로 당당한 모습과 달리 내부적으로 취약한 북한의 속사정이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러한 데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공개한 것도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후 트럼프 정부의 대북 핵전략이 180도 바뀌었다는 전언이다. 북한의 약점을 간파한 미국이 초강수 압박 카드를 통해 ‘비핵화 게임’을 풀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핵 문제 실무 담당자격인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전후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종래의‘협상’ 입장을 철회하고 대북 제재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양상이다.

미ㆍ북 간 북핵을 둘러싼 ‘강대강(强對强)’ 대결은 문재인 정부 들어 모처럼 훈풍이 불기 시작한 한반도 기류를 일거에 바꿔놓을 수 있다. 당연히 남북관계도 타격을 받게 된다. 미ㆍ북 간 북핵 게임의 판이 바뀌게 된 배경과 이후 전개 상황을 심층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 대북 입장 초강경으로 돌변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25일(현지시간)을 전후해 확 바뀌었다. 그 이전만 해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며 대화를 추진하던 미국이 25일 이후 정반대의 강경 노선으로 돌아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24일 오후 (현지시간) 미국 뉴욕 롯데 뉴욕팰리스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있다.(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뉴욕의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김정은 위원장을 칭찬하고,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모두에 “김 위원장은 개방적이고 훌륭하다. 그의 협상타결에 대한 큰 열정을 확인했다”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곧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지않아 김 위원장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며 “우리 둘 다 그것(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두 통의 ‘특별한 편지’를 받았다고 밝히고, 친서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역사적이다’, ‘감명깊다’.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에 따라 좀처럼 협상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북미가 ‘남북정상회담→한미정상회담→북미외교장관회담’ 등 한국 정부가 ‘중재’한 일련의 빅 외교 이벤트를 통해 북미 정상의 2차 핵 담판 임박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26일(현지시간) 오후부터 트럼프 정부 안팎에서 이상기류가 흘러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등 정부 인사들이 기존의 발언과 다른 태도를 보이고 나아가 뒤엎는 얘기까지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과 조속히 만나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시간 싸움(time game)을 하지 않겠다”며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혹은 5개월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 협상에 마감시한을 설정해 시간에 쫓기듯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지금껏 미 국무부의 공식 입장은 2021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첫 대통령 임기까지 북한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리인 격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북한 핵문제 해결에서 이제 새시대의 새벽이 밝았다”며 북핵 문제가 일대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 비핵화를 주제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장관급 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약속을 지키면 북한과 북한 국민 앞에 훨씬 밝은 미래가 놓여 있고 미국이 그 미래를 앞당기는 최선두에 설 것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의 평화와 밝은 미래를 향한 길은 오직 외교와 비핵화를 통해서만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는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은 불가피하게 점점 더 많은 고립과 압력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면서 북한에 비핵화의 길에서 이탈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북미 외교수장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9월 26일(현지시간) 유엔총회가 열리는 미국 뉴욕에서 회동했다.(연합)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수십 년 만에 처음 국제사회의 (대북)압박 작전을 주도해 중대한 외교적 돌파구를 만들었다”며 “북한의 핵ㆍ탄도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려는 과거의 외교적 시도는 실패했지만 이제 새시대의 새벽이 밝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의 최종적인 비핵화가 완전히 달성되고 완전히 검증될 때까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은 우리의 엄숙한 공동 책임이다”며 유엔의 대북 제재 이행을 촉구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

미국이 25일(현지시간)을 전후해 대북 입장이 180도 달라진 것과 관련해 트럼프 정부 안팎에서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발언을 해 미국이 대북 강경노선으로 돌아서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 미국의 정보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이 25일 미국 뉴욕 소재 미국외교협회(CFR)에서 한 초청 연설을 중요한 단서로 꼽았다. 미국이 북한을 이해하는 데 미심쩍었던 부분을 문 대통령이 언급함으로써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북한을 최대한 압박할 경우 항복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꿋꿋하게 버티는 것을 의아해했는데 겉모습과 달리 북한 내부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을 완벽하게 압박하면 결국 두 손을 들 것이고 비핵화 문제도 풀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된 셈이다.

문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국외교협회 초청 연설 후 리차드 하스 회장과 가진 일문일답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한 발언을 소개했다. 리차드 하스 회장이 “과연 김 위원장이 경제 개방 조치라든지 개혁을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묻자 문 대통령은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나눈 김 위원장의 발언을 공개했다.

“많은 세계인들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여러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을 믿지 못하겠다, 또는 속임수다, 또는 시간 끌기다라는 말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북한이 속임수를 쓰거나 시간 끌기를 해서 도대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미국이 강력하게 보복을 할 텐데 그 보복을 북한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북한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

문 대통령이 소개한 김 위원장의 발언 중 논란이 된 것은 ‘미국이 강력하게 보복을 할 텐데 그 보복을 북한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의 최대 약점인 ‘경제’를 강력하게 압박할 경우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지금껏 북한이 감춰왔고, 감추고 싶은 속사정인데 문 대통령이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의 말을 인용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최대 취약점을 드러낸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평양에서 만난 김정은 위원장의 비공개 메시지를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삼가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도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나눈 비공개 대화를 공개한 것은 외교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문 대통령 발언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남북 정상 간 대화를 공개한 것도 문제이지만, 북한에서 금기시하는 내용을 공공연하게 알린 것은 큰 실수”라고 전해왔다. 소식통은 “ ‘미국이 보복할 경우 북한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하는 내용은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라며 “두고두고 문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노동당이 중심인 나라이지, 김정은의 나라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김정은이 실제 그런 말을 했다면 북한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노동당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일로 김정은의 처지가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0일 삼지연초대소를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산책을 하며 대화하고 있다.(연합)

한반도 훈풍 사라지나…남북관계 험로 예상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외교협회에서 발언한 이후 미국의 대북 기류가 바뀐 것과 관련해 미국 정보관계자들은 대북 강경노선이 북한뿐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한반도 사정에 정통한 미국의 정보 관계자들은 “트럼프 정부 입장에선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셈”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손을 내밀기보다 초강수를 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집권 초기 대북 강경책이 옳았다고 판단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강한 압박으로 북한을 몰고 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폼페이오 장관은 27일(현지시간) 안보리 장관급 회의에서 대북 안보리 결의 2397호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경고하면서 “안보리 결의안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실현할 때까지 반드시 힘차게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비핵화’ 해법을 놓고 북한과 대화하기보다 ‘압박’이라는 강수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불기 시작한 한반도 훈풍이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미 관계가 ‘강대강’ 대결 국면으로 치달으면 남북관계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3차 정상회담을 계기로 그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남북교류, 경제협력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미국이 대북 강경노선으로 나올 경우 남북관계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미북관계의 주도권을 쥔 미국이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이 그대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반발할지 여부에 따라 미북관계, 남북관계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화해의 한반도 시대에 커다란 난제에 봉착할 수 있는 상황과 관련해 “북한을 재대로 읽을 줄 아는 참모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잖다.

한 대북 전문가는 “지난 3월 청와대 인사가 방북한 후 ‘비핵화’를 미국에 잘못 전달해큰 문제가 생긴 전례가 있다”며 “이번엔 북한이 가장 금기시하는 것을 사전에 대통령에게 숙지시키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