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뚜렷’ ‘한미 동조 이견’ ‘핵심 정책 주춤’ ‘지지도 하락’ 난항…
‘정책은 타이밍’ 시기 놓치면 모든 것 잃어, 모든 국정운영에 만전 기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곧 1년 6개월을 맞이한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현 정부는 “이게 나라냐”를 외치면서 적폐 청산을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로 삼았다.

과거 보수 정부의 ‘선성장 후분배’의 정책 기조와는 다른 ‘선분배 후성장’을 강조하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재인 복지 등을 제시했다.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열정과 도전은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한국 갤럽 조사 결과, 집권 2년차 2분기 문 대통령의 지지도(60%)는 비슷한 시기의 노태우(28%), 김영삼(55%), 김대중(52%), 이명박(27%), 박근혜(50%)보다 훨씬 높았다.

문재인 정부,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최근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첫째, 경기 침체의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경제의 3대 축인 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3중 침체에 빠졌다. 통계청이 지난달 31일에 발표한 ‘9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전 산업생산지수는 106.6으로 전월보다 1.3% 하락해 2013년 3월 이후 5년 반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소비도 2.2% 감소하면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내림세를 보였다. 반도체 장비를 제외한 설비 투자는 8.9% 감소했다.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경기 상황을 알려주는 지표들도 일제히 하락했다. 현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9월 ‘동행지수 순환 변동치’는 전월대비 0.3포인트 하락한 98.6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컸던 2009년 6월(98.5) 이후 최저치다. 통상 이 지표가 6개월 연속 하락하면 경기가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이 지표가 4월 이후 6개월 연속 하락했다.

향후 경기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선행 지수 순환변동치도 0.2포인트 하락한 99.2를 기록했다. 선행지수 순환 변동치는 지난 1월 100.8이었지만 수개월째 감소세다. 여하튼 지표상으로 현재와 미래 경기 모두 암울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고 성장률 전망도 낮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경기는 이미 사실상 침체”라고 진단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주식시장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한때 심리적 마지노선인 2000선이 무너졌다. 한국 증시는 10월 중 세계 주요국 증시에서 가장 낙폭이 컸다. 10월 중 외국인은 주식시장에서 4조60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미국의 금리인상 등 대외 여건이 좋지 않은 것이 경기 침체의 중요 요인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대외의존도가 큰 우리는 무역 전쟁으로 세계 경기가 내리막으로 꺾이고 있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책임을 면하긴 어렵다. 문 대통령도 이를 의식해 “나라의 어려운 일은 모두 대통령 책임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물론 모든 것이 대통령의 책임일수는 없다. 우리 경제의 왜곡된 구조와 대외 여건의 악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규제 개혁의 실종, 친노조 일변도의 정책으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든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

정부가 ‘경제가 엉망이 되고 모든 것이 깽판 나도 남북문제가 잘 풀리면 된다’는 생각을 고수하면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백약은 무효가 된다. 경제 침체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한미 동조에서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최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해서 청와대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 주목할 것은 그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기 전에 이례적으로 임종석 비서실장과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과 별도의 면담을 했다.

임 실장은 대북 문제를 총괄하는 입장에 있고,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릴 정도로 문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참모다. 비건 대표는 두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현 정부 대북 정책의 정확한 방향과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하려고 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 관계에서 속도를 조절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한미 공조를 재확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비건-임종석 면담 후 청와대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그리고 2차 북ㆍ미 회담 진행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가 오갔다”며 “임 실장은 비건 대표에게 ‘북ㆍ미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고, 비건 대표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유럽순방에서 유럽 정상들에게 대북 제제 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이런 와중에 문 대통령은 10월 23일 국무회의를 열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 비준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 비준안은 29일 관보에 게재, 공포되어 효력이 발생하게 됐다.

그런데, 이 비준안은 국회 동의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자유한국당은 위헌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 와중에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은 헌법상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헌법 60조가 규정한 국회 조약 체결권과는 무관하고, 군사합의서는 남북관계법(제21조 3항)에서 규정한 재정적 부담이 크지 않고 입법사항도 아니기 때문에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을 둘러싼 이런 소모적인 논쟁으로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주춤하고 한미간에 분명한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최근 남북 협력에서 대북 제재를 준수하는 문제를 조율하기 위한 워킹 그룹(working group 실무 협의체) 설치에 한ㆍ미 양국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11월에 출범 예정이다.

그런데 한미간에 워킹 그룹의 성격을 둘러싸고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말이 ‘조율’이지 한국 정부의 ‘남북 과속’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은행을 포함한 시중 은행에 연락해 대북 제재 준수를 요청했다. 미 국무부는 평양선언이후 한국 정부를 제치고 삼성 등 대기업에 대북 사업 현황을 묻고 전화회의를 요청했다.

미국의 이런 일련의 조치는 한국 정부에 “남북 관계에 과속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북미 고위급 회담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제제 완화 문제가 핵심이다. 미국은 ‘선비핵화 후제재 완화’ 입장인 반면, 북학은 ‘선제재완화 후비핵화’를 고수하고 있다.

급기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원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다시 찾아 자신의 경제 구상을 가로막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강하게 비난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의도된 도발적 발언은 향후 북미회담과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함께 동행한 재벌 총수들을 향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무례한 발언을 한 것도 남북 경제 협력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초조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현대 고(故) 정주영 회장처럼 화끈하게 대북 지원을 해달라는 의도로 보인다. 그만큼 북한에게도 종전선언보다 대북제재가 더 절실한 과제임을 보여준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동의와 협력 없이 남북 과속을 지속하면 한미 관계는 곤궁에 빠질 수도 있다.

정부 핵심 정책 성과 못내,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

셋째, 문재인 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한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의 기반인 최저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등이 역효과를 내고 있다.

지난 10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9월 고용동향’을 보면 3분기 기준으로 실업자 규모는 외환위기의 여진이 이어진 1999년 이후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고, 고용률 하락폭은 분기 기준으로 8년여 만에 가장 컸다.

9월 실업자는 102만4000명에 달했다. 1년 전과 비교해 9만2000명이 늘었고 13년만에 역대 최고 실업률을 기록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지만 고용참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정부는 그동안 54조원 정도의 일자리 예산을 편성했다. 내년에도 일자리 예산은 23조5000억원(5.0%)이다. 이렇게 엄청난 예산을 투여했는데 일자리가 오히려 줄었다는 것은 일자리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신뢰를 잃고 있다. 정부는 ‘투기꾼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그동안 다양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허탈함과 좌절감을 안겨주면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대책이 18번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집값은 58% 상승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담당했던 사람은 국정과제 비서관과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김수현이다. 현 정부에서는 청와대 사회 수석으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현 정부도 벌써 8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실패한 정책에 매몰된 사람이 또 다시 실패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넷째,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9ㆍ19 평양선언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급상승했지만 그 이후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리얼미터의 최근 조사(10월 29∼31일)에 따르면,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55.5%로 5주 연속 하락했다. 반면, 부정 평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40%에 육박하고 있다.

대구ㆍ경북과 보수층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수도권과 부산ㆍ울산ㆍ경남, 충청권 등 대부분의 지역과 2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지지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는 “주가 급락, 장기실업자 증가, 경기선행지수 하락 등 각종 경제지표의 악화 소식이 확산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야당의 ‘임종석 전방 시찰’ 공세와 ‘리선권 모욕 발언’ 논란 확대 역시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대통령의 지지율은 수시로 변한다. 하지만 집권 1년 6개월을 맞이하는 시점에 이렇게 대통령 부정 비율이 40%에 육박한다는 것은 흐름이 나쁘다. 대통령이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만약 심리적 마지노선인 40%대로 떨어지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같은 정부의 핵심 어젠다를 수행하기도 벅찬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출입기자단과 함께 청와대 뒤 북악산 산행을 하고 있다.(사진=연합)
모든 국정운영 중요…정부ㆍ여당 책임정치 펼쳐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시정 연설에서 ‘함께 잘살자’는 포용국가론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등 많은 국제기구와 나라에서 성장 열매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포용적 성장과 중ㆍ하위 계층의 소득 증가, 복지와 공정경제를 주장한다”며 “포용적 사회, 포용적 성장, 포용적 번영, 포용적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배제하지 않는 포용’이 우리 사회의 가치와 철학이 될 때 우리는 함께 잘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포용적 성장이 결실을 맺으려면 무엇보다 민간 부문의 투자와 대통령의 지지율이 살아나야 한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유지돼야 대통령의 말처럼 “기적같이 찾아온 평화 기회”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1982년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발표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이 주는 함의는 얼핏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뒤집어 생각하면 최초의 변화를 야기한 작은 원인을 잡아내면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4년 뉴욕시장으로 선출된 줄리아니는 이 이론을 적용해 지하철과 거리 곳곳에 그려져 있는 낙서를 지우는 운동을 전개했다. 결과적으로 시장 취임 2년 만에 중범죄가 50% 정도 줄었다.

문재인 정부가 처한 사면초가에서 벗어나려면 이 이론이 던지는 함의를 잘 음미해야 한다. 그동안 대통령 국정 운용 지지도가 높다고 “이것 하나 정도는 적당히 넘어가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서울시 교통공사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고용 세습 의혹에 대해 철저하게 진실을 밝혀져야 한다. 서울시 교통공사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과정에서 친인척 112명을 채용했다. 여당은 서울시를 무조건 감싸지 말고 야당과 함께 의혹을 푸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박용진 의원이 비록 집권당 소속이지만 사립유치원 비리를 폭로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용 세습은 분명 문 대통령이 강조한 생활 적폐다.

향후 경제가 어려워지고, 한미 관계가 꼬이면서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하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더욱 강력하게 작동될 것이다. 청와대가 정부 부처를 제치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중심 정치’를 배격하고, 집권당도 정부의 잘못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전통 주력산업인 제조업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고, 고용의 어려움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경제 전망과 관련해 “여러 해 전부터 시작된 2%대 저성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르면 이달 안에 김동연 경제 부총리를 교체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 실장도 동시에 교체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문제는 정부가 기존의 정책 기조를 유지한다고 하면서 경제 정책의 투톱을 문책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시장과 기업에 좋은 시그널을 보내려면, 혁신 성장을 담당하고 있는 김 부총리는 유임시키고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한 장 실장을 교체하는 것이 맞다. 고용과 성장이 곤두박질치는데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기존의 경제운영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하면 집권당이 나서서 이를 교정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과 핵심 경제 참모들이 여전히 경제정책 방향이 옳다고 우기면서 귀를 닫으면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 담판을 져야 한다.

단언컨대 정책은 타이밍이다. 시기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더구나 국정운영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일이란 없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국회 개헌특위 전 자문위원, 한국정치학회 전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김형준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