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대북정첵 주도에 미국 제동 움직임 … '난관' 극복 따라 잠룡 위상 달라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0월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만나 환담하고 있다.(연합)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달 29일 방한하자 곧바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났다. 청와대의 외교 안보 책임자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제치고 임종석 실장을 최우선으로 접촉했다. 더구나 비건 대표와 임 실장의 만남은 미국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트럼프 정부의 특사격인 비건 대표는 방한 전 임 대표와의 단독 면담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비건-임종석’ 회동 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2차 북미정상회담 진행 사안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선 전혀 다른 얘기가 나오고 있다. 비건 대표가 트럼프 정부를 대신해 임 실장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기 위해 방한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고’의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지만 임 실장 주도로 북한과 관련해 행한 ‘무리수’ 내지 ‘위험한 행보’라는 식의 메시지를 전했다. 임 실장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과 만난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회자되고 있다. 칼둔 행정청장의 방한에 대해 청와대는 한ㆍUAE 간 현안을 논의하고 무함마드 UAE 왕세제의 방한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국제사회와 중동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다른 내막’을 전했다. 즉,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모종의 일’이라는 것이다. 비건 대표와 칼둔 청장의 방한 시기를 놓고도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비건 대표가 임 실장을 면담한 뒤 곧바로 칼둔 청장이 방한한 것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비건 대표와 칼둔 청장의 상대가 모두 임 실장이라는 점에서 국제 정보 관계자들은 ‘관련성’에 무게를 둔다. 임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국정운영에 전반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특히 현 정부가 전력하고 있는 남북관계는 임 실장이 전권을 갖고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임 실장이 ‘왕실장’으로 불리는 데는 청와대에서의 영향력과 함께 대북 관계를 총괄하는 것도 큰 배경이 되고 있다고 본다. 아울러 임 실장이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교류 활성화 등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다면 차기 대선주자로 우뚝 설 수 있다는 분석도 상당하다. 반면, 미국이 현재처럼 북한을 압박하고 남북관계에 제동을 걸어 한반도에 난기류가 형성되면 임 실장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만일 임 실장이 대북 관계에서 무리하게 일을 추진했거나 한다면 ‘대망론’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남북관계를 통한 비상과 추락의 경계에서 대북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임 실장의 모습과 그를 둘러싼 국내외 역학관계를 짚어봤다.

美 특사 비건, 임종석을 찾은 ‘진짜 이유’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났다.

비건 대표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제치고 임종석 실장을 곧바로 면담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청와대의 외교 안보 책임자는 정의용 실장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건 대표가 처음부터 임 실장을 작정하고 만난 것이다. 청와대는 “임종석 실장을 면담하게 해 달라는 미국 측 요청에 따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비건 대표는 왜 정의용 실장이 아닌 임 실장을 먼저 만난 것일까. 청와대는 두 사람의 면담이 끝난 직후 “오늘 면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2차 북미정상회담 진행 사안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갔다”고 말했다.

임종석 실장은 “(제2차) 북미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달라”라고 당부했고, 비건 대표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발표대로라면 ‘비건-임종석’ 회동은 한ㆍ미 간에 일반적이고 예상 가능한 사안을 두고 만난 셈이다. 하지만 그런 일로 트럼프 정부의 특사격인 비건 대표가 굳이 임 실장을 먼저 만났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임 실장이 대북관계를 총괄하기 때문에 비건 대표가 면담했다면 그럴듯하다.

미국 정보 관계자들과 한반도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비건 대표가 임 실장을 만난 것은 비핵화를 포함해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보다는 일종의 ‘경고’를 하려고 방한한 것으로 모아진다.

그 ‘경고’의 실체에 대해선 견해가 갈리고 함구를 해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북한과 관련된 것은 분명했다. 덧붙이면 임 실장이 대북관계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면서 ‘무리수’를 뒀거나 ‘경고성 행보’를 취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관계자들은 비건 대표가 임 실장 면담 때 갖고 온 서류에 대해 “증거 자료가 아니겠냐”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들 관계자중 일부는 최근 미국이 국내 은행권을 향해 제재 움직임을 보이고,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한 기업들에 대해 모종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앞서 ‘경고’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 재계에서는 미국이 이례적으로 국내 은행과 기업에 압박 움직임을 보인 것이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때문이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비건 대표의 방한과 임 실장 면담에 대해 공식적인 발표 외에는 여러 설들을 부인하고 있다. 일부에서 제기한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 관계자는 “임 실장이 대북관계에 깊이 관여하다보니 그런 소문과 오해가 생긴 것으로 본다”며 “남북관계와 같은 국제적이고 예민한 국정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관계자들이 총의를 모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오전 남북정상회담에서 마무리 발언하고 있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훈 국가정보원장, 문 대통령,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북한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연합)
미국, 왜 임 실장을 겨냥했나

미국이 임 실장을 지목하고 비건 대표가 방한해 곧바로 그를 만난 것은 임 실장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와 미국 정보 관계자들은 임 실장이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와 대북 정책을 총괄하고 있으며,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관계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의 최우선으로 남북관계를 중시하고 전력하고 있지만 실무는 임 실장이 총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 미국은 대북관계를 주도하는 임 실장을 주시해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의‘비핵화’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수렁에 빠졌고, 북한에 끌려다니다시피했다”며 “그러한 데에 임 실장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북관계를 진두지휘하는 임 실장이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을 잘못 전해 미국이 큰 오판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지난 3월 5일 대북특별사절단대표단으로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한 것을 거론했다.

미국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정의용 실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고, 이를 철썩같이 믿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정의용 실장이 전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정의용 실장은 방북 후 귀국한 다음날인 3월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고 전했다.

정 실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며,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본지가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북한은 비핵화(핵폐기) 의지를 밝힌 적이 없었다. 북한의 핵보유국 입장은 절대 불변으로 김정은 위원장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밝힌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란 뜻도 특사단이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김정일ㆍ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비핵화 목표’를 강조했지만 이는 ‘북한이 비핵화할 경우 미국도 핵을 폐기하라’는 뜻으로 사실상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을 평양에 보내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을 확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발표한 뒤로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상태였다.

세기의 회담이라는 6ㆍ12 싱가포르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와 관련해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북핵 게임에서 사실상 패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전달한 과정을 추적했고, 정의용 실장이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을 잘못 전달하는 데 임종석 실장의 책임도 상당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비핵화’ 오판 이후 트럼프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행보를 면밀하게 추적해왔다. 동시에 북한에 대한 감시 활동도 더욱 강화했다는 게 미국 정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국이 남과 북에 대한 관찰(감시)의 수위를 한껏 높인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의심할만한 행위’를 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해왔다. 그 ‘의심할만한 행위’에 대해 관계자들은 침묵했지만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문제의 소지가 있는 조치를 취했다는 포괄적인 답변을 해왔다.

미국이 우리 정부와 북한과의 교류 어느 부분을 지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트럼프 정부가불만을 가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러면서 “임 실장이 관여한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이 자신들의 잣대로 남북교류, 대북정책을 들여다보면서 무리한 주문을 하고, 심지어 방해까지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한 관계자는 “미국은 북한을 제압해 세계 경찰국가 위상을 확고히 하려 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11월 중간서거 등 정치적 계산이 있다”며 “북한은 우리와 함께가야 할 상대이고, 그곳 사람들의 어려움을 우리가 도와주는데 지나치게 간섭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왕실장’ 논란…잠룡으로서 비상과 추락 사이

정치권에서 임종석 실장은 ‘왕실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의 ‘실세’로 국정 전반에 영향력이 상당하고, 특히 북한 분야는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임 실장은 부인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인사들과 청와대 사정에 밝은 소식통 중에는 ‘왕실장’에 무게를 두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야권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할 때, 임 실장이 서훈 국정원장, 국방부장관, 통일부장관을 대동하고 DMZ 지뢰 제거 현장을 방문한 것을 두고 ‘왕실장’ 행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임 실장을 둘러싼 ‘왕실장’ 논란은 정치권에서 그의 위상을 반영한 측면이기도 하다. 실제 임 실장은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 핵심인 임 실장이 대북관계를 총괄하면서 남과 북에 긍정적 효과를 이끌어낸다면 경쟁력 있는 잠룡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임 실장이 비서실장을 하면서 대북관계를 총괄하는 것이 ‘대망론’과 관련있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대북 압박을 최고조로 높이면서 우리 정부에도 동참을 요구하고 있어대북 국정 사령탑인 임 실장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임 실장 입장에선 대북 정책 추진에 커다란 장애물을 만난 셈이다.

임 실장이 어려운 난관을 돌파해 남북관계에 획기적 전환을 마련한다면 잠룡으로 비상의 날개를 달 수 있다.

반면, 임 실장이 대내외 압박이 워낙 강해 제 역할을 못하거나, 급기야 물러나기까지 한다면 잠룡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임 실장을 둘러싼 대내외 상황은 매우 어렵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는데 불만을 나타내고 있고, 미국은 엄격한 감시체제를 총가동하고 있다. 임 실장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가느냐에 따라 잠룡의 위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