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수사관 '특수임무' 수행하다 '팽(烹) 당했나?… '진실게임' 결과에 정국 향배 달려

자유한국당 김도읍(가운데) 조사단장이 20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로비에서 청와대 특감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직무유기 관련 고발장 접수를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 김 단장, 전희경 의원.(연합)
청와대 민정수석실 소속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에 파견돼 근무하던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 후폭풍이 거세다. 김 비서관의 주장은 우윤근 대사, 여당 출신 고위 공직자, 공공기관장 등에 대한 비리 보고서를 작성하고 보고했지만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전직 총리 아들, 은행장 등 민간 동향을 보고했다고 밝히면서 청와대의 부적절한 사찰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반면 청와대는 “첩보문서를 유출하고 허위주장을 하는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김 수사관이 제기한 의혹은 진위 여부를 떠나 문재인 정부 지지율 추락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야당은 일제히 현 정부를 공격하고 나서고, 여당은 청와대를 감싸며 강력히 대응해 김 수사관 사건이 정국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관건은 김 수사관 사건의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유리한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여야의 격전이 가열될 것인데 김 수사관 사건이 그 단초를 제공한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미 야당은 국정감사, 특검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김 수사관 사건이 어떤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물론, 여야에 미칠 파급은 상이하다. 김수사관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문재인 정부는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 의혹이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을 경우 지지율 추락은 불가피하다. 반면 김 수사관의 비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허위 주장으로 밝혀질 경우 역풍은 고스란히 야당에쏠릴 수 있다. 김 수사관 사건이 정국 풍향의 ‘핵뇌관’이 되고 있다.

지난 11월 특감반 직원들의 비위 의혹이 터졌다. 지난달 29일 대검 감찰본부는 청와대 특감반 수사관 4~5명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 이 일로 김 수사관도 ‘평일 근무시간 친목 도모 골프모임 진행’, ‘골프향응을 받았다는 의혹’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골프 관련 의혹이 증폭되던 중엔 지인의 뇌물 연루 수사 상황을 경찰에 캐묻다가 적발되기 했다. 이 외에 건설업자 최모씨와의 뇌물공여 사건 수사과정에 개입했는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셀프 승진 시도가 있었는지 등도 조사 대상이다.

검찰은 “김 수사관에 대한 감찰은 이르면 다음주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골프접대 의혹과 경찰에게 지인의 사건을 문의한 사실 등을 감찰 대상인 부분에 한정해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청와대가 김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 조치한 것과는 별개의 수사팀을 만들어 본격 수사할 예정이다.

청와대 공직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조국 수석은 특감반 전원 교체라는 초강수를 뒀다. 김 수사관 문제로 특감반 최종 책임자인 조국 수석 경질론도 일었으나 문 대통령은 조 수석에게 힘을 실어주며 사건을 일단락시켰다.

‘김의 파일’ 둘러싼 진실게임

김태우 수사관은 청와대의 민간사찰 의혹과 고위 공무자의 비리를 본격적으로 폭로하고 나섰다. 김 수사관은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가 금품을 수수했다는 내용을 작성해 보고했지만 묵살됐다고 밝혔다.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의 비리 혐의도 폭로했다. 현 정부와 가까운 인사의 비위 보고로 청와대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여권 인사들의 비위 논란 보고서 작성이 청와대에서 불명예 퇴진한 결정적 이유라는 거다.

그의 감찰보고서에는 우 대사가 2009년 한 건설업자로부터 취업 청탁으로 1000만 원을 받았는데 2016년에 다시 돌려줬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 수사관의 주장에 따르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과 이인걸 특감반장은 이에 대해 보안을 잘 지키라고 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우 대사는 별 조치 없이 러시아 대사에 임명됐다. 김 수사관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은 고위공직자에 대한인사 검증을 고의로 유기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창와대 민정라인이 진실을 고의로 은폐하고 김태우 비서관에게 부당한 조치를 가한 것이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17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이 비위 연루 의혹으로 원대복귀 조처된 데 반발해 폭로를 지속하는 상황과 관련, "자신이 생산한 첩보문서를 외부에 유출하고 허위주장까지 하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법무부에 추가 징계를 요청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
반면 청와대는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17년 8월 김태우가 공직 후보 물망에 오른 인물(당시 국회사무총장, 현 주러 대사)에 대한 첩보를 올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우윤근 대사는 국회사무총장이었다. 김 대변인은 “첩보 보고를 받은 반부패 비서관은 국회사무총장이 특별감찰반에 의한 감찰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감찰을 진행하지 않았다”며 “자체 조사결과 첩보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되어 인사절차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김 수사관과 청와대의 진실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김태우 수사관은 A4용지 5장 분량의 제보를 통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은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 직무를 고의로 유기한 것”이라며 “조국 수석이 임 실장에게 보고하자 임실장이 ‘사실로 판단됐으니 대비책을 마련해야겠다’는 발언을 이인걸 특감반장에게 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관련 내용을 보고 받은 바 없다고 일축했다. 임종석 비서실장도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임 실장은 “본인의 비위를 감추기 위해 사건을 부풀리고 왜곡한다”며 “우 대사의 명예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굉장한 유감이다. 법적 조치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의 폭로를 강하게 부인하는 상황에서 지난 16일 야권은 특검과 국정조사 카드를 제시하며 압박하고 있다. 지난 19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김 수사관이 수집한 사찰 관련 리스트를 공개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최경환 의원에 대한 청와대 차원의 불법 사찰 의혹, 고건 전 국무총리의 장남 고진 씨의 비트코인 관련 사업 사찰, 코리아나 호텔 사장 배우자 자살 관련 동향, 한국금융연수원장의 과거 부적절 처신 동향, 조선일보 취재내용 등 민간영역을 불법 사찰했다는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리스트만 보면 민간인 사찰을 마구잡이로 했던 걸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민간 불법사찰 의혹을 두고 청와대의 ‘민정라인 책임론’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청와대의 문재인정부 유전자에는 민간인 사찰이 없다’는 발언에 대해 “민간인 사찰의 DNA가 없다니 어떻게 이런 오만이 있을 수 있나. 이 정부는 자신들이 하는 것은 모두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라고 보고 있다” 비판했다.

바른미래당도 사태 파악을 위해 운영위 소집을 요구하며 자유한국당과 공조하고 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즉각 국회 운영위원회를 열어 사건의 당사자인 조국 수석을 출석시켜 진위를 따져봐야 한다. 이것이 정치공세인지, 국조를 할 사안인지, 특검을 해야 할 사안인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부진할 경우 특검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청와대 특별감찰단 정권 실세 사찰 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청와대를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키로 했다. 단장인 김도읍 의원은 “총리실 문모 수사관의 경우 같은 골프 접대 의혹에도 아무런 징계나 수사의뢰 없이 국무총리실로 복귀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경수 경남지사 동문이기 때문”이라며 “같이 골프 접대를 받아도 정권 실세를 사찰한 수사관은 최고권력으로부터 보복받아야 하고 정권실세와 고교동문은 징계 없이 복귀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각종 의혹에 대해 진실로 답변해 달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권의 일련의 조치를 무차별적인 ‘정치공세’라고 반발하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김 수사관이) 자기 비위를 덮기 위해 폭로전을 하고 있다”며 “대검찰청 감찰본부에서 조사하고 있으니 그것을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김 수사관 사건의 본질이 그가 폭로한 내용이 아니라 그가 수행한 ‘특수 임무’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김 수사관은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에서도 특감반에서 수사관으로 근무한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문재인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도 같은 자리에서 계속 근무했다. 그는 대검에서도 오랫동안 정부 파트에서 일하며 청와대의 내부의 잔뼈가 굵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수사관이 보수ㆍ진보 정권을 거치는 동안에도 계속 청와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특수 임무’를 수행해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특수 임무’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으나 국가적 금융과 관계돼 있다는 소문이 있다. 김 수사관이 그러한 ‘특수 임무’를 수행하면서 공개해서는 안될 내용을 외부에 누설한 게 문제가 돼 청와대에서 쫓겨났다는 얘기가 있다.

김 수사관 사건 결과 따라 후폭풍 강도 달라질 듯

청와대는 19일 김태우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했고, 자유한국당은 20일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청와대의 민간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한 규명은 이제 검찰의 수사에 달려있다. 적폐청산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온 검찰이 현 정권의 비위 의혹에 대해서는 어떤 강도로 수사를 진행할지 주목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진실로 밝혀진다면 청와대는 안팎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정부가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된 만큼 ‘도덕성’은 정권의 가장 기본 요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김 수사관이 폭로한 비위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나도 적지 않은 내홍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를 향한 민심의 눈초리와 우려도 쉽사리 가라앉기 어렵다. 조직의 기강 해이 문제와 더불어 특별감찰반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김 수사관의 비위 정도가 심각하고, 보신용으로 허위 의혹을 제기했다면 이를 대여 공격 수단으로 활용한 야권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여권이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를 갖는데 반해 야권이 수세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수사관을 향한 검찰 수사는 구속을 겨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수사관이 자신에 대한 여권의 공세와 사정기관의 수사에 대비해 ‘파일’을 보수 언론이나 야권에 넘겼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토대로 보수 언론이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야권이 공격 강도를 높여간다면 여론이 어느 쪽으로 흐를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지지율 추락에 김 수사관 사건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여권에 불리한 상황이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김 수사관의 ‘특수한 임무’가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이 될 수 있고, 이것이 드러날경우 여야를 떠나 파장이 상상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에 봉합 수순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분명한 것은 김 수사관의 파일이 정국 풍향의 ‘핵뇌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