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선당(先黨)’확고… ‘남북경협’ 관건
김정은 신년사 ‘경제’ 중점…문재인 정부, 5ㆍ24 조치 풀지 주목

김정은(앞줄 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주기를 맞아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부장 등과 함께 참배했다고 노동신문이 17일 보도했다.(연합)
북한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공개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7주기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이다. 이를 보도한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전문부서 부장 등 당 주요 간부들과 함께 나섰다. 그러나 군 총정치국장과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 등 주요 군 간부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 시대에 당이 최고 권력이란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고, 북한에서 ‘선당(先黨)’ 정치가 확고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북한에서 군의 위상은 김정일 시대에 비할 바가 못되고, 군 병력을 줄이면서 이들을 ‘경제일꾼’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7주기 행사 장면은 북한에서 노동당이 최고 중심이고, 앞으로 ‘경제’에 당력을 집중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북한 매체가 17일 보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7주기 참배 행사는 이전 행사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전문부서 부장 등 당 주요 간부들이 대거 참석한 반면, 군 주요 간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2016년 5주기 당시 군부의 주요 지휘관들이 군복 차림으로 대거 참배한 것이나 지난해 ‘화성-15형’ 미사일 발사실험에 성공하고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직후였던 6주기 때 김 위원장이 모종의 ‘결단’을 암시하는 듯 홀로 참배한 것과도 대조된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분위기를 의식해 군부 지휘관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러한 분석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김정은 체제는 김정일 시대 ‘선군(先軍)’ 대신 ‘선당(先黨)’으로 핵심 주축이 바뀌었고, 핵ㆍ경제 병진 정책에서 나아가 ‘핵 무력 완성’과 ‘경제’에 전력하면서 군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6년 5월 당 대회에서 ‘핵ㆍ경제 병진’ 노선을 천명한 이래 미사일과 핵 개발에 나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고, 지난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집권 초기 내세웠던 ‘핵ㆍ경제 병진노선’을 과감히 접고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대내에 밝혔다.

<주간한국>은 지난 3월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소식통을 통해 북한이 핵 대신 경제에 올인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또한 북한이 핵ㆍ미사일에 상당한 진전을 이룬만큼 재래식 병력을 ‘경제일꾼’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내용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본지는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군축’이 핵심’이라는 제하의 기사(4월 23일자, 제2724호)에서 ‘군축을 통한 감군(減軍)’과 ‘경제협력(經協)’이 최대 의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은 휴전선 접경지역 군 부대를 축소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자유 왕래를 위한 비무장화 추진 등 군축과 감군을 위한 회담을 이어갔고 행동으로 옮겼다. 또한 남북 간 고위급회담, 장성급회담 등 수차례 회담에서 ‘경협’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지난 5월, 북한이 우리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상에 북한 군수경제를 담당하는 노광철 제2경제위원회 위원장을 임명한 것은 군 재편을 통해 재래식 병력을 경제 분야로 전환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경제일꾼’으로 전환된 병력은 북한내 경제 현장에 투입되거나 중국 동북 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으로 나가 돈벌이를 하기도 한다.

북한은 유엔 제재가 풀리지 않고, 최대 지원국인 중국이 미국과 관세 전쟁을 하고 국제사회의 압력에 따라 이전과 같은 도움을 못 주면서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해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기’ 때와 같은 다수의 아사자가 발생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7주기 행사 때 노동당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고 군 주요 인사들이 보이지 않은 것은 북한이 처한 현실(경제난)을 직접 반영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 좌우에 선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수용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겸 당 부위원장이다. 최룡해 부위원장은 북한에서 ‘넘버2’로 불리는 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노동당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리수용 부위원장은 북한 외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는 북한이 여전히 노동당 중심 체제이고, 외교를 통해 현안을 해결해 가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경제’에 관한 한 제1 상대로 남한을 꼽는다.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중국ㆍ러시아조차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남한을 최적임 상대로 보는 것이다.

실제 남북교류를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인 5ㆍ24 조치만 해제돼도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경협을 할 수 있다. 더욱이 굶주림에 처한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인도주의적 경협은 가능하다.

관건은 현 정부의 결단이다. 문재인 정부는 5ㆍ24 조치를 해제할 수 있는 몇 차례 기회가 있는데도 여론과 미국을 의식해 결행하지 못했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새해 국가정책 수립에 전력하고 있고,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새해 신년사도 ‘경제’에 방점을 둘 것이라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남북관계에 새 전기를 마련하려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움직임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