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역할론" vs " ‘북한의 비핵화’ 오판 책임론"
남북관계, '정치' 아닌 '경제'로 풀어야…北 '경제'에 올인, '경제통' 장관 나와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후임 비서실장에 노영민 주 중국대사를 임명하는 내용을 포함한 수석비서관급 이상 인사를 발표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연합)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퇴임이 예정되면서 그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국정 최일선에서 활동한 경험이 그를 대선주자급으로 부상케 하면서 장차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정치인 임종석’의 측면에서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인 종로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은 가운데 최근 통일부 장관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임 전 실장이 2020년 총선을 준비하기보다 통일부 장관으로 남북관계를 총괄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임 전 실장이 통일부 장관으로 남북관계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현재 남북관계가 꼬여 정체된 상태에 있고, 북미관계가 강대강 대결 구도를 띠게 된데 임 전 실장이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한계에 있고, 북한이 문재인정부에 가장 바라는 것이 ‘경제’인 만큼 ‘경제통’ 통일부 장관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남북관계는 '정치'가 아닌 '경제'로 풀어야 히며, 그래야 외부의 간섭도 덜 받고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논란의 와중에 있는 임종석 전 실장의 거취와 바람직한 통일부 장관을 짚어봤다.

문재인정부 2기 내각의 최대 관심사는 임종석 비서실장의 교체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임종석 실장 후임에 노영민(62) 주(駐)중국대사를 임명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20개월 만에 청와대 비서실 수장을 교체하면서 2기 청와대의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임종석 전 실장이 청와대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워낙 컷기에 향후 그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임 전 실장이 청와대 ‘왕실장’으로 불릴만큼 막중한 역할과 조명을 받아 대선주자급으로 부상한 만큼 그에 걸맞는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2020년 총선에 출마해 차기 대권을 준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종로에 출마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현재 종로 지역구 의원인 정세균 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 상반기 국회의장을 지내 다음번 총선에는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아 임 전 실장이 정치 1번지인 종로에서 승리할 경우 단번에 유력 대선주자로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

한편, 임 전 실장이 총선에 출마하기보다 종래 역점을 둬왔던 남북관계에서 큰 성과를 내고 대권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최근 임 전 실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남북관계를 총괄해온 상황에서 계속 대북 관련 일을 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체적으론 부총리급 위상의 통일부 장관을 맡아 남북관계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임 전 실장은 문재인정부 들어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ㆍ이행위원장을 맡아 대북 정책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임 전 실장이 통일부 장관을 맡을 경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주도해온 남북 대화를 임 전 실장이 총괄하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임 전 실장이 통일부 장관이 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 견해도 상당하다. 임 전 실장이 문재인정부에서 남북관계를 총괄하면서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등 큰 성과가 있었지만 현재 남북관계가 정체되고,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데 책임이 무겁다는 평이다.

일각에선 임 전 실장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대북팀이 북한이 전하는 메시지를 잘못 해석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해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북미관계도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예가 북한의 ‘비핵화’ 부분이다. 북한의 비핵화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표해 남북ㆍ북미 관계가 틀어지고, 해법을 찾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별사절단대표단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면담하고,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가졌다. 정의용 실장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고 밝혔다. 그리고 8일(현지시간) 정의용 실장 등은 워싱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정의용 실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고, 이를 철석같이 믿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정의용 실장이 전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주간한국>이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북한은 비핵화(핵폐기) 의지를 밝힌 적이 없었다. 북한의 핵보유국 입장(보유핵 고수)은 절대 불변으로 김정은 위원장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북한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란 ‘핵폐기’가 아니라 핵보유국이 핵을 제거할 경우 북한 핵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핵군축’의 의미다. 다시말해 종래 핵보유국이 핵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북한도 보유핵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수차례 평양에 보내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고 해결을 모색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세기의 회담이라는 6ㆍ12 싱가포르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와 관련해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북핵 게임에서 사실상 패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전달한 과정을 추적했고, 정의용 실장이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을 잘못 전달하는 데 대북관계를 총괄한 임종석 전 실장 등 대북 핵심라인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29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해 곧바로 임종석 전 실장을 만나 것도 대북관계에서 임 실장 책임론과 관련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이처럼 문재인정부의 남북관계에서 임 전 실장이 주도한 역할이 긍정적 평가 못지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부정적 측면이 알려지면서 통일부 장관으로 옮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관계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경제’인 만큼 ‘경제통’ 통일부 장관이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자력갱생’과 함께 ‘남한과의 경제협력’을 유독 강조한 것은 북한의 최대 현안인 경제난을 반영한 것이다.

북한과 30년 넘게 교역을 해온 대북 전문가 장백산 해외동포지원사업단 이사장은 "북한은 핵 문제를 포함해 중요 사항은 미국과 담판지으려 하고, 남한과는 '경제'에 대한 것만 상대하려 한다"며 "공식적으로 북한을 가장 많이 상대하는 통일부 장관의 경우 경제를 잘 아는 '경제통'이어야 남북관계를 잘 풀어가고 북한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정치'에 관한 한 우리 정부가 미국을 의식해 자주적 결단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한 북한에 가장 필요한 것이 '경제' 이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인사가 통일부 장관이 돼야 한다는 게 장 이사장의 설명이다.

장 이사장은 현재와 같은 유엔 제재가 지속되는한 이에 저촉되지 않는 '물물교환' 방식의 남북교류를 수년전부터 강조했다. 또한 남한이나 북한 모두 교류시 국내법의 저촉을 받기에 해외동포가 중심이 돼 남북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연초에 중국을 방문한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남한과의 경제 협력이 어렵다고 보고 중국으로 달려간 것이다. 북한은 고위급ㆍ군사회담 등 모든 형태의 남북대화에서 ‘경제’를 최우선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고 전해왔다. 이들 북한 전문가들의 견해에 근거하면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를 제대로 수행해가려면 북한이 ‘경제’에 전력하는 만큼 ‘정치적’ 인물보다 ‘경제통’인 통일부 장관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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