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 의도, 日 정치 위기 돌파용 + 韓에 외교 불만 표출

지난달 20일 우리 해군 광개토대왕함은 동해상에서 조난당한 북한 민간 선박을 구조하고 있었다. 그때 일본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 갑판 상공 150미터 까지 근접 비행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 해군은 피아식별과 상황 인지를 위해 추적레이더(STIR)를 가동했다. 보통 전투함에 전투기가 500미터 정도로만 접근해도 상당히 위협적인 비행으로 간주된다. 일본 측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광개토대왕함이 추적레이더가 아닌 화기관제레이더, 즉 사격을 할 수 있는 사격통제레이더를 가동했다는 것이다. 일본 주장대로라면 우리 해군이 일본 초계기 격추를 위한 미사일 발사 직전까지 갔다는 소리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 우리에게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우리 군은 ‘사실무근’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1월 7일 지면 기사)

일본은 당시 사건의 영상을 선공개하며 공세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을 입증할만한 증거로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는 지적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오히려 자충수가 됐다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해군의 인도적 구조 작업 중에 위협적인 초저도 근접 비행을 했다는 점, 일본이 주장하는 화기관제레이더가 포착됐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는 점, 일본 조종사의 태연한 반응 등이 그것이다. 우리 군은 일본의 영상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하는 영상 제작을 거의 마친 것(지난 4일 기준)으로 알려졌다.

영상 속에서 일본은 자위대 초계기에 우리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조준한 화기관제레이더가 탐지됐다고 설명한다. 영상 속에는 붉은색 자막이 깜빡이며 지대공 미사일이 조준됐다는 일본 조종사의 교신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우리 군은 광학 카메라가 초계기의 움직임을 탐지한 것일 뿐 사격 레이더를 조준하지 않았다고 일관된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영상 속 화기관제레이더 탐지 메시지도 일본 측에서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일축하며 객관적 증거로서 불충분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 20일 동해상에서 발생한 우리 해군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P-1 초계기의 레이더 겨냥 논란과 관련해 P-1 초계기가 촬영한 동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지난달 28일 공개했다. (연합)

우리 국방부는 일본이 공개한 영상에 우리 군의 반박 내용을 담은 한글 자막을 입혀 일본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할 예정이다. 다만 광개토대왕함에서 찍은 일본 초계기 모습은 없다며 일본이 공개한 영상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한다는 입장이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동해상의 ‘중간수역’이다. 그런데 인도적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 해군에게 초저도 접근 비행을 먼저 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문성묵 예비역 준장은 “일본이 자신들의 내부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움직임으로 보인다”며 “(민감한 군사행동과 상황에 대해) 직접 나서 동영상을 공개하고 트집을 잡는 것을 보면 일본 내부의 여론을 결속하고 반한감정을 유도하려는 의도도 보인다”고 말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도 “우리도 과거 국내문제가 있을 때 소위 ‘일본때리기’를 해서 지지율을 높인적이 있다”며 “아베가 일종의 약소국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약소국 외교란 주변국과 연관된 갈등을 일으켜 내부결속을 다지고 보상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외교 전략이다. 과거 일본은 내치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 한반도 문제를 끌어들였다. 실제 납북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루면서 국내 지지율을 제고하는 효과를 봤다. 다만 현재 비핵화문제에 일본이 끼어들 틈이 없고 마땅한 ‘북한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동해상의 ‘중간수역’에서 갈등을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현재 일본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영향력이 대폭 축소된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다만 이번 일로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예비역 준장은 “북핵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직접협상자고 한국이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일본이 개입할 수 있는 6자회담 채널도 가동될 기미가 없다” 며 “어떤 형태로든 일본은 북핵문제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겠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초계기 레이더 사건을 통해 주목을 끌기 위한 해석은 섣부르다는 판단이다.

조 위원도 “이런 문제를 벌인다고 해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징용공 판결이나 위안부 문제 등 한국의 대일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현재 한반도 문제는 미국이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대화로 끌고 가려는 형국이다. 일본이 들어올 틈이 없다. 아베 정권은 박근혜 정부와의 위안부합의를 대단한 외교 업적으로 간주했는데 문재인 정부에선 이 합의를 사실상 원점으로 돌렸다. 조 위원은 “아베가 국내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며 “우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보복성 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사격통제레이더 주파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밀유출의 우려 때문이라지만 기술적인 조치를 통해 주파수만 공개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일본은 양국이 비공개회의를 통해 사건을 일단락 시키려 했지만 일방적인 영상공개로 갈등을 부추겼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 고이즈미 내각 당시 총리비서관 출신인 오노 지로 전 의원도 한국측 상황이 이해된다는 반응을 내놨다. 그는 “북한 선박에 대해 작전행동 중인 한국 군함에 이유 없이 접근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며 경솔하다”고 말했다. 영상 공개가 오히려 자충수가 되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초계기 레이더 총공세에 수세적으로 몰리며 해명하고 있다. 조 위원은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이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조심스레 대응하다가 일본의 의도적 행동에 당한 것 같다”며 일본의 의도를 처음에 정확히 파악해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비핵화를 둘러싼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은 한미일 공조를 중요하게 여긴다. 한일관계가 삐걱거리면 대북압박과 비핵화공조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가 틀어지면 한미관계도 불편해질 수 있다. 문 예비역 준장은 북한이 이런 점을 노린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한일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원한다”며 “반일감정을 자극해서 한일관계를 떼어놓고 한미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안보협력에 균열이 오기를 바라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사건이다. 이에 문 예비역 준장은 “이번 일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일본과의 소통을 통해 원만하게 푸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번 일처럼 한일관계에 마찰음이 생기는 것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전략적 이익 측면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동북아 동맹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는 주한미군보다 훨씬 많은 주일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항공모함기지와 유엔사후방기지도 있다. 우리는 ‘한미연합사’라는 실질적이고도 독보적인 연합사 체제를 작동하고 있다. 문 예비역 준장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일관계에서 특히 안보협력을 깰만큼 우려할만한 상황이 된다면 양국 갈등에 적극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이 우리 해군의 북한 선박 구조 과정에서 발생한 레이더 가동 문제로 엇갈린 주장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이 일본의 일방적인 초계기 동영상 공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연합)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비핵화’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조선반도의 비핵화와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강조하며 현재의 교착국면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미국의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비핵화 합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다시 강대강의 대결구도로 흘러갈 가능성도 남아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의 도발적 행위에 대해 미국의 의도적인 눈감아주기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착상태에 있는 비핵화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또 다른 대북 전략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얼마 전까지 스텔스기를 이용해 북한의 영공은 물론 평양까지 접근해 정보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최근 남북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한미연합훈련이 대폭 축소되거나 연기됐고,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기존의 정보 탐색전을 펼치기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 실제 워싱턴에서는 확실한 비핵화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군사적 합의조치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일본 초계기의 초저도 위협비행을 통해 북한 상공 쪽에서의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여 대북압박을 지속한다는 속내다. 일본을 통한 일종의 경고조치다. 반면 이와 무관하게 일본의 단순한 군사 정보전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 위원은 “일본에서 우리 광개토대왕함의 전력을 확인하기 위해 접근 비행을 한 것일 수도 있다”며 “헬기 탑재가 가능한 광개토대왕함의 실제 전력은 어떻게 운용되는지 알아본 것인데, 이것이 일본의 정치적 의도로 잘 활용됐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초계기가 우리 해군의 함정에 위협비행을 했다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먼저 대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진 이유에 대해 조 위원은 “우리 정부는 초기에 일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일본이 영상을 공개하며 공세수위를 높일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한일 간의 외교적 군사적 마찰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비공개 실무자 회담도 추진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본의 공세에 몰려 뒤늦게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이번 일이 일본의 상대적 쇠퇴를 반영한 일이라는 분석도 있다. 조 위원은 “여전히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고 민주화 국가인데 이런 조작에 가까운 사건을 벌이는 것은 지극히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내치의 반전을 위해 주변국을 괴롭히는 약소국 외교는 우리가 과거 하던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조 위원은 “한국이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5000만 인구)에 7번째로 가입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일본의 80% 수준에 도달하면서 일본의 초조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과거 효과를 봤던 우리의‘일본때리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과거에 비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는“과거에 비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줄어든 영향력은 물론, 징용공문제나 위안부 문제와 같은 한국의 적극적 공세에 대한 불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본 내부에서도 영상 내용의 모순이 지적됐음에도 아베가 끝까지 정치적 쟁점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일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일본이 그것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