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산 태양궁 광장서 환영식…시진핑 주석이 처음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만남은 다섯 번째다. 3차 북미회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북중 정상 간의 만남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관심이다. 앞서 열린 네 차례의 북중회담의 공통점은 북미 간 중요한 협상을 앞뒤로 해서 열렸다 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차 회담 가능성을 열어두며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북미대화는 물론 남북대화도 막혀 있는 상황에서 북중 정상회담이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하노이 핵담판 결렬 이후 북미간의 핵 협상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대미공세를 서서히 높여가면서 핵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를 보여 왔다. 탄도미사일을 두 차례 발사하며 한반도 정세의 긴장 수위를 높였고, 3차 북미회담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기에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실제 북한은 그동안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에 앞서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려는 의도를 갖고 북중 정상회담을 해왔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1차 북미회담을 진행하기 한 달 전 중국의 다롄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고 온 바 있다. 또한 싱가포르 회담 직후 일주일 만에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또 만났다.

과거처럼 북중회담 후 북미회담 열릴까

2차 북미회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직전에도 한 달 전쯤 베이징으로 가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이 갈림길에 선 이 때에 중국의 리더를 만났다는 사실은 3차 북미회담도 코앞으로 다가온 것 아니냐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은 시진핑을 통해서 트럼프에게 의중을 전달할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김정은이 발휘할 수 없는 영향력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전에는 북미회담이 확정된 상황에서 북중회담이 진행됐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이번 북중 간의 만남이 북미회담을 촉진시킬 계기가 될지는 아직 단정하긴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것도 3차 북미회담 가능성을 높게 보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다시 미국과의 대화 분위기를 형성하며 북중회담을 통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의중이라는 것이다. 미국과의 회담에 앞서 중국을 방문했던 이유는 ‘북한 뒤엔 중국이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함이었다는 해석이다.

문 센터장은 “북한이 미국에게 연말까지 입장을 바꾸라는 압박 메시지를 보내는 상황에서 당장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아도 북한이 원하는 접근법에서 멀어지면 중국과 더욱 긴밀한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의중을 보이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 전 차관도 “작년부터 북한의 이런 의도는 깔려 있었고 미국에게 기존의 입장을 포기하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김정은이 지금 방법을 그대로 고수할 수는 없고 미국을 움직이기 위해서 중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봤다.

1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지난 20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날 시진핑 국가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중 우호를 주제로 한 집단체조를 관람했다. 연합

북중회담 중국의 반격카드?

중국으로서도 미국에게 성공적인 북미회담을 위해서는 중국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북미 핵담판을 지렛대로 반전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문 센터장은 “이 이벤트가 미중 간 반전할 만한 그런 카드가 될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시진핑이 G20 회의 직전에 방북한다는 것은 미중 무역 갈등도 염두에 두는 게 아닐까 추정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도 중국에게 있어 이번 방북 카드가 미-중 갈등에서 반전을 노릴 만큼 큰 것은 아니지만 의미있는 정치적 메시지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김 전 차관은 “트럼프가 원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게끔 해주면서 미국에게 ‘우리가 이렇게 북핵 문제를 협조하는데 무역문제로 압박하지 마라’ 이런 의도 정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미 3차 회담 조율 중”

우리 정부도 3차 북미회담 가능성을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9일 “북한과 미국이 하노이 회담을 각자 평가하고 그 결과에 기반해 새로운 협상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19 한반도국제평화포럼’에서 김 장관은 “중요한 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환경 조성”이라며 “북미가 여전히 외교적인 방법으로 협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기존의 톱다운 방식과 실무협상 방식이 함께 돼야 한다”며 “톱다운 방식의 회담을 통해 실무협상이 기술적 쟁점에 매몰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부분을 해결했었다”며 “톱다운 외교의 장점을 잘 살려 나가되, 앞으로는 구체적인 방안에서 차이를 좁히기 위한 실무회담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3차 회담 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3차 핵협상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는 국면이다. 다만 북한이 지난 하노이 회담과 다른 실질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완전하고도 구체적인 핵폐기 의지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분명해 진 상황이다.

김정은의 극진한 대우

지난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에 방문하며 제5차 북중정상회담 일정을 소화했다.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14년 만에 이뤄지는 방북이다. 중국 주석의 국빈급 방문은 1949년 북중수교 이후 처음으로 공항에서부터 시진핑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최고 영접을 받았다. 최고 의전 속에 방북 일정을 소화한 시진핑 주석은 금수산 태양궁 광장에서 북한 지도층과 평양 시민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여기서 환영식을 받은 것은 외국 정상 가운데 시진핑 주석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시내까지 이어지는 평양 시민들의 환호는 시진핑 주석의 카 퍼레이드가 이어질 동안 계속됐다.

중국 정부가 밝힌 북중정상회담 의제는 3가지다. 먼저 비핵화 협상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다. 최근 북미 간 3차 정상회담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북중정상회담이 북미대화 재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오후 곧바로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한반도 비핵화 및 북중 관계 개선을 두고 의견을 교환했다.

중국 북한 경제에 실질적 도움?

시진핑 주석의 방북 수행단엔 딩쉐샹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등이 함께 했다. 중국의 외교사령탑이 이번 방북에 총동원된 셈이다. 그만큼 시진핑 주석이 이번 방북 기간 동안 북중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자하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다.

이중에서도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이 눈에 띈다. 그는 중국 경제의 사령탑으로 통한다. 김정은 위원장도 네차례 방중 당시 중국의 경제 발전상을 둘러보며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협력과 지원을 받을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번 방북에 허리펑 주임이 함께 한 것은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 극복에 필요한 지원 방안에 논의도 진행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지난 2월 하노이 회담에서 악수하는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위원장. 연합

김정은 다자외교로 입지 넓히나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정상회담에 앞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북중러 3각 공조를 강화한 바 있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에 밀리지 않겠다는 외교적 의지를 북중·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지난 4월 진행된 북러회담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체제 보장이 필요하며, 체제 보장이 안 되면 6자회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내며 북한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해 10월엔 북중러 간 외교 차관 회담이 잇따라 열리며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방침에 대한 3각 공조를 공고화 했다. 북한이 가장 애쓰고 있는 제재 완화에 대한 공감대도 어느 정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비핵화의 협상 진전에 따라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점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렇게 북한은 다자외교의 성과로 미국을 압박해 비핵화 협상에서 주도권을 갖겠다는 심산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의 지지를 얻고, 제재 완화라는 목적도 이루기 위한 움직임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인내심 가지고 기다릴 것”

두 정상은 북미 핵협상과 한반도 정세, 북한 경제개발, 양국 관계 강화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은 정상회담과 관련해 “두 정상이 북중관계가 새로운 역사적 시발점에 있다는 점에 이해를 같이하고, 미래의 보다 나은 양국 관계를 위해 손잡고 나아가자고 합의했다”고 전했다.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지지한다”며 비핵화 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지지를 얻은 북한으로선 향후 북미협상에서 어떤 자세로 나올지도 관심사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번 회담이 동지적이며 진지하고 솔직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며 논의된 문제들에서 공통된 인식을 이룩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또한 양국 관계를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것이 두 나라의 공동의 이익에 부합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 발전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과의 전략적 의사소통을 긴밀히 하기로 했다며 북미협상에서의 펼칠 외교적 전략을 다각화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의 협상 기조를 유지할 뜻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협상 과정에서 인내심을 유지할 것이라며 북미협상 재개 가능성도 열어뒀다. 하지만 교착 상태에 빠진 핵협상에 대한 불만도 나타내며 미국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뜻도 직접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지난 1년간 긴장 완화를 위한 많은 조치를 했지만 만족할만한 미국의 응답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뿐만 아니라 북한의 안보와 경제 분야까지 적극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 “北-中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

북한과 중국이 긴밀한 밀월 관계를 과시하는 중에 미국은 지난 20일 북한을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로 지정했다. 17년 연속 최악의 등급이다. 중국도 3년 연속으로 인신매매 최악 등급으로 분류됐다. 핵협상과는 별개로 인권문제에서 지속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북한의 협상 전략 분야의 한 전문가는 “북한이 중국을 등에 업고 비핵화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 하지만 미국은 ‘내 갈길 간다’는 행보”라며 “미국이 북한의 압박에도 요동하지 않고 확고한 비핵화의 길로 갈 것”이라고 해석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