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촉발된 586 책임론, 세대교체론으로 증폭… “기득권으로 매도됐다” vs “이제는 갈 때”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연합

조국 사태로 촉발된 ‘586(5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용퇴론’이 정치권을 휩쓸고 있다. 정계에서586 용퇴론은 586세대가 2030세대의 진입을 위해 공천 전에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선언하라는 주장이다. 조 전 장관 사퇴 이후 민주당은 지지층 이탈에 대한 책임공방 속에서 이철희·표창원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표창원 의원은 “공정과 정의를 주장하고 상대의 불의를 공격하던 우리가 ‘내로남불’로 비춰지는 게 가슴 아팠다”며 “젊은 세대가 느꼈을 실망감에 특히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이 사퇴하기 직전인 10월 둘째주 민주당 지지율은 35.3%로, 자유한국당과 불과 0.9%포인트 차이였다(리얼미터 기준). 하지만 조 전 장관이 자진사퇴하면서 민주당 지지율은 1주일 만에 39.8%로 반등했다. 이에 따라 586에 대한 비난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비롯해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당의 환골탈태를 주장하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강한 울림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철희 의원은 ‘586 책임론’에서 더 나아가 ‘세대교체론’에 중점을 두고 586세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하나의 세대, 그룹으로서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 이제는 갈 때”라며 “때를 알고 조금 일찍 떠나주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연합
`586 용퇴론’ 놓고 갑론을박
586세대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1960년대생으로 현재 50대인 세대를 일컫는다. 대학시절 독재 정권에 맞서 투쟁한 운동권 출신들을 가리킨다. 586세대가 정치권에 들어온 가장 큰 기회는 DJ의 젊은 피 수혈 때였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세대교체를 추진했다. 이때 정계에 진출한 인사가 송영길·이인영·우상호 의원,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다. 호남이라는 탄탄한 지역기반을 가진 김 전 대통령이었기에 과감하게 신인들을 기용할 수 있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DJ는 지역 중심의 정치적 기반이 절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장기적 시각에서 인재 영입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586세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진보세력의 주류로 부상했으며 2017년 탄핵 정국을 기회로 문재인 정권을 여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586세대의 이미지는 조국사태로 인해 치명타를 입었다. 공정하고 깨끗할 것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이미 기득권화됐다는 부정적인 모습이 노출됐다. 이미 약 20년간 정치권을 활보했으면 충분하다는 점도 586 용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이 의원은 5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386이 국회 들어온 지 얼추 20년 됐다. 그 정도면 한 세대를 보더라도 어지간히 했다”며 “도매급으로 무조건 물러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자리를 비켜줘야 새로운 분이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대다수 586세대 정치인들은 용퇴론에 반발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의 불출마 선언이 있었던 17일 이후 아직까지 또 다른 불출마 선언이나 험지 출마 선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18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586 용퇴론에) 약간 모욕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며 “우리가 무슨 자리를 놓고 정치 기득권화돼 있다고 말한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이날 “개개인의 거취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치의 가치나 노선을 어떻게 혁신할 거냐, 구조와 문화를 어떻게 바꿀 거냐에 대한 지혜를 모으는 차원에서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며 선을 그었다. 우원식 의원은 586세대가 근거 없이 기득권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기득권 집단 매도” vs ”현실감각 떨어져”
논란은 있지만 586세대가 오랜 기간 기득권을 차지해왔다는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 정치ㆍ경제적 측면에서 586세대의 여건은 현 2030에 비해 좋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기성 정치권은 3김 시대를 연장하기 위해 586세대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였다. 현 2030에 비해 정치권에 입성하기 쉬웠다는 얘기다. 강상호 국민대 교수는 “586세대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상징성과 대중성이 있었기 때문에 기성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다”며 “반면 현 2030은 세력화할 수 있는 여건이 없어 각개전투를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586세대는 정계 관계는 물론 언론,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끼쳤다. 강 교수는 “정치권의 주도 세력은 인맥을 통해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586세대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렸다는 점도 특기할 대목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3저 호황 시기에 586세대는 취업하기 쉬웠고 현재까지 기득권을 차지해 왔다”며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상을 얘기한다면 이미 받았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586세대는 성과 측면에서 유럽의 68세대와 비교되기도 한다. 프랑스 68혁명 참여자들은 여성, 환경, 인권 등 개별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한 반면 한국의 586세대는 청와대와 국회, 공공기관 고위직에 몰려 있다. 강 교수는 “68세대는 교육제도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점진적 운동을 펼쳤기 때문에 축적된 결과물이 많았다”며 “반면 586의 민주화 투쟁은 이슈 중심이 아니었고 급진적이며 단순했기 때문에 결과물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폐쇄성 역시 586 용퇴론의 한 근거다. 1980년대 독재 항거 과정에서 민주화와 비민주화를 구분 짓는 편가르기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다면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과거의 정치가 대결적 구도였다면 이제는 협치, 공조, 타협을 키워드로 한다”며 “586세대는 말로만 통합을 외치고 행태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 있다”고 비판했다. 김민전 교수는 “586세대는 내부 민주화가 안됐기 때문에 20년간 정당 내부 민주화에 기여를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당시 투쟁 중심의 운동권 세력은 여성 및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데 관심이 적었다”며 “정치권에 입성한 이후에도 정치 공학, 다시 말해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여념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명분에 집착한다는 점 역시 586세대의 특징으로 꼽힌다. 공정, 정의, 평등, 분배 등 명분에 기반한 구호는 586세대의 상징이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문제 제기 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20년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청년단체를 이끌고 있는 백경훈 씨는 ‘타다’와 택시의 갈등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백 씨는 “586은 기존 산업과 신산업간의 갈등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며 “차량 공유 시스템을 비롯한 4차산업혁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고 했다.

세대교체론의 현실성
임 전 실장의 정계 은퇴 선언이 586세대의 후속 퇴진을 불러올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반면 586세대를 대표해 임 전 실장이 물러났기 때문에 물갈이는 없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신율 교수는 “임 전 실장이 은퇴한 것은 ‘자기가 (586에 대한 비난을) 다 안고 가겠다. 내 선에서 끝내겠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강상호 교수도 “586세대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를 통해야만 세대 교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비난에도 불구하고 586세대가 현역을 고집하는 데는 강한 권력 의지가 작용한다는 평이 나온다. 다만 586세대가 버틴다 해도 내년 총선에서 2030의 공천 기회는 어느정도 마련될 전망이다. 청년층의 박탈감, 분노를 목격한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청년 공천을 늘리겠다고 공표하고 있다. 다만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20명 이상의 진입은 무리수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강 교수는 “무더기 입성은 불가하고 개별적으로 소수 그룹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자질론에 대해 백 씨는 “얼굴 마담 한두명 세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며 “외교 문제와 4차 산업혁명, 재정 건전성 등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청년층을 필두로 판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586세대는 산업화, 민주화라는 목적에 치중하다 합리성을 잃었다”며 “그 결과 여의도에 캐슬을 쌓았고 국민과는 단절됐다”고 비판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