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었다

북한이 공언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었다. 북한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무엇이 될지는 미국의 태도에 달렸다’고 압박했지만 극적인 도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은 군사옵션을 언급하며 북한을 강하게 압박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설정한 ‘레드라인’, 즉 ICBM 발사와 핵실험 재개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한 미군의 전략자산도 연일 한반도에서 작전을 펼쳤다. 미국은 날아다니는 인공위성으로 불리는 글로벌호크로 북한을 샅샅이 감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과 우리 국방부는 “특이한 도발 조짐은 없어 보인다”면서 “도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크리스마스 고비는 넘었지만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까지 아직 남아있는 만큼 미국과 북한의 강대강 대치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北, 크리스마스 선물 협박... 반전 노렸지만 성과 없어

북한은 적극적인 대미공세를 이어가며 추가 도발 가능성을 높여왔다. 지난 하노이 핵담판이 결렬되고 실질적인 북미 간의 대화가 끊어지면서 북한 특유의 강압적인 외교 수사가 재등장했다. 북한은 미국의 최대 연휴 기간인 크리스마스를 겨냥하며 “연말을 편하게 보내고 싶다면 새로운 셈법을 가져와야 할 것”이라고 미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올 연말을 협상 시한으로 내건 북한은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 국면을 펼치고자 했다. 하지만 미국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군사옵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되레 북한을 압박했다.

“김정은은 나의 좋은 친구”라며 친분을 과시한 트럼프 대통령도 “필요시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있다”라고 공개 발언을 하며 한반도 긴장 수위는 극적으로 높아졌다.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늙다리의 망령이 되살아났다”며 “믿음직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사실상 비핵화 협상이 결렬됐음을 알리는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협상 재개는 미국의 태도에 달렸다며 연말까지를 협상 시한으로 못박았다. 북한이 말하는 연말 시한은 미국과는 전혀 합의되지 않은 사안이다. 미국은 협상 시한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언제든 대화로 비핵화 문제를 풀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미 양국이 여전히 협상의 문은 닫지 않은 셈이다.


크리스마스 선물하지 않은 北, 속내는?

북한은 미군의 전략자산이 연일 한반도에서 작전을 펼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있을 것이란 해석이 많다. 북한과의 군사 실무협상을 담당했던 예비역 준장 출신의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김정은도 미국의 심기를 건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있다”면서 “그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체제보장과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미국을 압박해 자신들이 원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북한의 전략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실제 미국은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 위협에 반응하지 않으며 군사 작전을 공개하며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다. 북한이 원하던 결과가 아닌 상황이다. 실제 미국은 북의 주요인사를 생포하는 훈련을 대대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북한은 과거부터 ‘협상 후 도발국면’으로 한반도 긴장 수위를 한껏 끌어올린 뒤 협상 테이블에 나섰다.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한 전형적인 벼랑끝전술의 일환이 지금도 반복된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도발 후 협상 후 도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행정부 출범 초기부터 보여왔다. 북한이 협상에 나오면 대화를 적극적으로 타진했고 도발하면 핵폭격기인 ‘B2B’ 등 핵심 전략자산으로 압박했다. 문 센터장은 “김정은은 자신이 협상 시한을 연말로 못박아둔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며 “크리스마스 선물도 공언한 상태에서 아무런 액션 없이 갈 명분도 없기 때문에 연말연초를 전후로 해서 저강도 도발을 할 가능성은 남아있다”라고 전망했다.

연초까지는 ‘강대강’ 대치 이어질 듯

북한은 신년사를 앞두고 ‘새로운 길’을 천명했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자력갱생을 넘어 자력부흥, 자력자강 등의 단어를 쓰고 있다.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남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힘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북한의 자신감은 ‘핵’에서 나온다. 북한은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암묵적으로 인정받고자 한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인도-파키스탄’ 모델이다. 핵동결로 제재해제를 원하는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핵개발 초기엔 제재를 받았지만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 암묵적인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서 제재가 해제됐다. 미국은 북한의 이러한 속내를 알고 있다. 실제 매티스 미국 전 국방부장관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북한은 한미동맹에 적대 저수가 되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기조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이다.

국제정치 질서도 북한에겐 썩 유리하지 않다. 북한이 의지하는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중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남았을 때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극도로 우려한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바라는 인도-파키스탄 모델이 재현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중국과 러시아가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를 위해 유엔안보리에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며 “북한의 비핵화 노력을 촉구하는 차원의 달래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동결을 지지할만한 나라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문 센터장은 “북한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그냥 넘어갔기 때문에 연말에 극적인 도발을 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라며 “과거와 같은 벼랑끝전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