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갈등에 호르무즈 ‘줄타기’

미국과 이란의 군사 갈등이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는 여전히 난제다. 이란과 오만 사이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은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꾸준하게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청해왔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으로 오는 원유 수송선의 약 70~80%가 통과하는 곳으로 정부는 파병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지난 8일 청와대는 파병 문제를 두고 “엄중한 상황 속에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상황에 대해 대처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중동 지역 정세 안정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기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에도 호르무즈 파병에 대해 “우리 국민과 선박을 보호하고 해양 안보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기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말했다. 파병 가능성을 드러낸 것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한미동맹을 고려해 호르무즈 해협 파병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이달 중 바레인에 위치한 미국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연락 장교 1명이 파견됐고 2월엔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임무 중인 청해부대 함정이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동하는 방안이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화 “미국과 입장 반드시 같을 수 없다”

반면 호르무즈 파병 신중론도 나온다. 지난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에게 미국의 파병 요청과 관련한 질의를 받았다. 강 장관은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해 “미국의 입장과 우리 입장이 정세분석에 있어서나 중동지역 나라와 양자 관계를 고려했을 때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이란과도 오랫동안 경제 관계를 맺어왔고 지금으로서는 인도지원, 교육 같은 것은 지속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미국이) 해협·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 확보를 위한 구상에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참여를 지속해왔다”며 “우리는 선박의 안전, 국민 보호 최우선 등을 고려하며 제반 상황을 검토해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요청에 대한 결론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덴만에 파병된 청해부대의 일부가 호르무즈 해협으로 파견되는 방안에 대해 강 장관은 “이미 그 지역이 아니더라도 근처에 있는 우리 자산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계속 검토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의 ‘청해부대의 파병지역을 호르무즈까지 확장하는 것이 현 파병동의안을 고려할 때 가능하냐는 질문엔 “국방부 쪽에서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식의 확장인가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며 “구체적 작전이나 업무에 따라 법률적 검토를 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강 장관은 한미 방위비 분담금과 호르무즈 파병은 별개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협의 과정에서 미국 측으로서도 호르무즈 상황 언급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파병을 약속한 것 아니냐는 질문엔 “아니”라며 “과도한 해석”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 장관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검토하고 논의했지만 확정적으로 결정되진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청해부대 31진 왕건함 파병에 앞서 해군 지휘부가 승선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함정에 오르고 있다. 연합

파병 “정해진 것은 없다”고 하지만...

국방부도 지난 7일 “이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에 대해 정해진 건 없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국민 안전과 관련된 유사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현재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을 펼치는 청해부대 강감찬함이 오는 2월 왕건함과 임무 교대를 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으로 작전 반경을 넓힐 것으로 예측됐다. 군 당국도 기존 부대의 작전 지역 변경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법률 검토를 내렸다. 하지만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없다”며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오는 1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간 회담에서 호르무즈 파병 요구를 본격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담은 비핵화 문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협상 등을 논의하는 자리지만 호르무즈 파병 문제가 주요 현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도 같은 기간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기로 하면서 미국이 한·일 양국에 호르무즈 공동 전선을 강력히 촉구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 일본은 지난달 27일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자위대 호위함 1척과 초계기를 독자적으로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260명의 파병 규모다. 한미동맹과 북핵 공조를 고려해야 하는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의 호위연합체 참여 요청을 외면하기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남북 사업 구상에 대해 미국에 협조를 부탁하면서 파병 문제를 결정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지난 참여정부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북핵 공조를 요청한 적이 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속에 대이란 부담감이 커지고 있지만 ‘호르무즈 파병’ 문제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까닭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지금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철회하기도 어렵다”며 “해리스 대사도 얘기했듯이 미국이 상당 부분 기대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갑자기 철회하겠다고 하면 한미동맹에 상당한 부담감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 방위공약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