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부터 꺼내든 美 바이든 행정부…북한 인권 특사 임명 시 남북관계 경색 심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취임 한 달을 맞으며 북한 정책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이든 정부는 북한 관련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가 외면했던 북한 인권을 강조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민주주의에 이어 인권 문제에 돌아온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미국이 돌아왔다”는 상징적인 선언을 했다. 이는 단순히 미국이 고립주의에서 다자주의로 복귀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민주주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을 공산주의라고 몰아붙였지만,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체성을 자극하려는 의도였을 뿐이다. 바이든 정부의 태도는 더욱 확실하다. 민주주의의 동맹을 강조하면서 대중 연대에 나선 데 이어 중국을 압박할 카드로 인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에 대해 황색 신호등을 켰다면 바이든 정부는 적색 신호등을 켜고 더 큰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유엔(UN)인권이사회 복귀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유엔인권이사회를 탈퇴한 지 3년 만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유엔인권이사회 복귀를 발표한 성명을 통해 “미국의 유엔 인권이사회 탈퇴는 미국 리더십의 공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지난해 인권탄압 의혹을 받는 중국과 러시아를 이사국으로 선출했다. 미국은 인권 탄압국이 인권이사회를 차지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상황은 북미 관계에도 중요한 대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주력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인권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탈북자인 지성호 현 국민의힘 의원을 자신의 연두교서 발표에 초대하기도 했지만, 탈북자들이 중심이 된 북한 인권에 관한 관심 촉구를 외면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유엔인권이사회는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어떤 식이든 미국도 북한 인권에 대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평이 나온다. 미국은 당장 정식 이사회 멤버가 아니라 투표권이 없는 옵서버 자격에 머물겠지만, 연내 정식 이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블링컨 장관이 유엔인권이사회 복귀 성명에서 “미국이 다시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을 중시하는 외교 정책으로 돌아왔다”라고 언급한 것도 인권을 향후 외교 전략에서 배제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간주해야 한다.

미국은 포괄적인 대북정책 검토에는 북한 인권 문제도 포함할 것이며 곧 정책이 마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美, 북한의 약점 ‘인권’ 찌를까

유엔인권이사회는 22일(현지시간)부터 3월 23일까지 진행되는 제46차 정기 이사회 기간 중 북한 인권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이사회에서는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북한 인권 보고서를 제출하고 북한 인권 결의도 상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인권 문제를 주도해온 유럽연합(EU)은 이번 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 내 인권단체도 북한 인권에 대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북한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최근 바이든 행정부에 북한 인권특사 임명을 촉구했다.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은 북한 인권특사를 신설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2017년 1월 이후 미국의 북한 인권특사는 공석이다.

외교가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인권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국무부는 북한 인권특사를 임명할지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또 “대북 정책 검토의 일환으로 북한의 지독한 인권 유린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블링컨 장관을 비롯한 바이든 행정부 고위직 다수가 북한 인권에 비판적이었던 오바마 행정부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미 국가정보국장실(O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시드니 사일러 북한 담당관은 조지타운대 주최 온라인 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와 인권 문제는 함께 논의될 수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북한이 인권 문제에 대해 극히 민감하게 반응해왔다는 점에서 미국이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면 북미 관계가 시작부터 험난해질 수 있다.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도발에 나서지 않고 있지만, 인권 압박이 가해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한미 당국이 북한이 도발할 징후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이란이 미국에 핵합의 복귀를 압박하면서 기존 핵합의 조건을 부인하는 대미 압박 전략에 나선 것도 북한의 향후 행보를 보여주는 예일 수 있다. 북한 인권 특사 임명 시 韓 동참해야 할 수도

미국이 북한의 인권에 대한 공세에 나서면 우리 정부의 셈법도 복잡해질 수 있다. 한국은 2019년부터 유엔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한 행보지만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 이를 외면하기도 부담스럽다. 미국은 북한 문제에 있어 한국과의 사전 조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 인권대사를 임명하는 순간부터 우리 정부도 미국의 인권행보에 동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외교부는 지난 4년간 북한 인권 국제협력 대사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북한 인권 국제협력 대사직은 2016년 공포된 북한인권법에 포함돼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 국제협력 대사를 임명할 경우 남북관계 역시 추가로 경색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