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 주기’ 경연장 된 청문회…구체적 대안 논의는 뒷전

산업재해 청문회에 출석한 기업 대표들. (사진 연합)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 22일 산업재해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대표적 3개 업종의 대표들을 증인으로 채택해 사상 첫 ‘산업재해 청문회’를 열었다. 건설업 분야에서는 현대건설·GS건설·포스코건설, 택배업은 쿠팡·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 제조업은 포스코·현대중공업·LG디스플레이 등 3개 분야, 9개 기업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번 청문회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5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포스코의 잇단 산재 사망사고를 강하게 비판한 후 열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더욱 끌었다. 환노위는 초유의 산재 청문회를 통해 산재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기업 차원 예방책을 점검한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날 청문회는 구체적 대안 마련은커녕 여야 의원들의 보여주기식 윽박과 호통만 난무한 여느 청문회와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증인으로 참석한 기업 대표들도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식으로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데만 급급했다. 이 대표의 포스코를 향한 으름장은 ‘망신주기’ 질책성 산재 청문회로 막을 내린 셈이다.

청문회 개최 취지에는 공감대 형성

이번 산재 청문회에는 최근 2년 간 건설·택배·제조업 분야에서 산업재해가 자주 발생한 기업들의 대표를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 청문회에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박화진 차관도 참석했다.

환노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산재를 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도 책임을 통감하라는 취지에서 고용부 장,차관도 참석토록 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은 청문회의 증인대에 올라선 기업 대표들에 맞춰져 있었다.

이번 청문회는 환노위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이 상임위원회 업무보고에 기업 대표들을 불러 산재 관련 내용을 듣자고 제안했고 민주당이 이 제안을 수용해 열리게 됐다. 환노위에 따르면 해당 기업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산재 승인 건수가 최근 5년 간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기에 일단 청문회 개최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포스코는 지난 5년 간 노동자 42명이 숨지고 제철소 오염물질이 무단 방출됐음에도 지난 10년 동안 관련 이사회를 한 번도 열지 않는 등 무책임한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게다가 설 연휴 직전인 지난달 8일에 포항제철소 원료부두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직원이 기계에 몸이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최근에도 산재 사고가 반복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향한 송곳 질문이 예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청문회가 열리기 전 최 회장은 허리 지병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를 놓고 정치권, 노동계 등에서 강한 비난 여론이 일자 최 회장은 결국 청문회에 출석키로 결정하는 등 청문회 시작 전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구태 난무하는 맹탕 산재 청문회

이번 산재 청문회는 시작 전부터 ‘정치쇼’를 우려하는 여론이 많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청문회가 시작되자 의원들은 기업 대표들을 고압적으로 대하며 호통을 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기업 대표들은 “개선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하면서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데만 급급했다.

청문회를 지켜본 여론은 싸늘했다. 국회의원들이 황당한 질문을 하고 호통을 치니 기업 대표들도 당황해서 영혼 없는 사과로 일관하는 모습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대책은 없이 구태만 난무하는 전형적인 ‘맹탕’ 청문회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최 회장을 향해 느닷없이 신사참배 의혹을 제기했다. 노 의원은 일본의 한 종교시설을 방문한 최 회장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꺼내들면서 “신사참배 간 것을 인정하라”고 윽박질렀다. 최 회장이 “절에 간 것”이라고 해명해도 노 의원은 거듭 따지고 물었다. 산재와는 상관없는 때아닌 신사참배 의혹제기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특히 가짜뉴스를 근절하기 위한 미디어언론상생TF단장을 맡고 있는 노 의원이 가짜뉴스로 증인을 공격하는 이중성이 더 비난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다른 의원들도 산업재해라는 본질보다는 기업인 망신 주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은 “최 회장은 포스코에서 근로자들을 지옥으로 데리고 가는 저승사자 역할을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임종성 민주당 의원도 “포스코 근로자 안전에 있어 최대 리스크는 최 증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진 사퇴할 생각이 없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기업 대표의 명예나 인권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의원들의 관심이 정작 ‘산재 문제 개선’이 아니라 지지층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사이다 발언’에만 치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증인으로 참석한 기업 대표들의 안일한 인식도 도마 위에 오르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가 산재 사고의 대책을 묻는 박덕흠 무소속 의원의 질의에 “산재가 현장의 불안전한 상태와 작업자의 행동에 의해 잘 일어난다”며 “불안전한 상태는 투자해서 바꿀 수 있지만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은 상당히 어렵다”고 답했다.

청문회가 끝나자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중대재해 발생의 원인을 노동자의 부주의로 돌리는 발언에 분노가 치민다”며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완성이 필요한 이유가 증명됐을 정도로 일부 경영 책임자의 발언은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표를 의식해 기업인을 상대로 호통치고 망신을 주는 데 집중했다”며 “해당 의원의 지지층에게는 사이다 발언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과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의원들이 아까운 질의 시간을 저런 식으로 낭비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계가 최 회장을 집중 추궁한 것도 최근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최 회장의 연임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