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DJㆍ노무현 정권 때 자료도 공개하자고 반격

지난 18일 오후 부산 KNN에서 열린 국민의힘 부산시장 경선 후보 간 TV 토론회에 앞서 박형준 후보가 준비를 하고 있다./연합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40여일 앞두고서 여야의 시계는 12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이명박(MB) 정부 국가정보원 불법 사찰 의혹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의 진실 규명과 사죄를 촉구하고 나섰다. MB 정권 청와대에서 정무수석 등을 역임한 박 후보가 당시 국정원의 사찰에 대해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였다. 그는 지난 1월 27일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이 김승환 전북교육감을 사찰한 문건이 나왔다”며 “이 문건에는 ‘2009년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국정원에 여야 의원 전체에 대한 신상자료 관리를 요청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사실이면 이명박 정부는 정치 사찰을 자행한 것”이라고 했다.

‘정치 사찰’이란 말은 예고편이었다. MB 국정원 불법 사찰 문제는 ‘의혹’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민주당은 이를 정치 사찰이라고 표현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 원내대표가 지핀 불씨를 키우는 건 김영춘 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의 몫이었다. 김 후보는 바톤을 건네 받아 공세를 이어갔다. 그는 지난달 9일 논평을 통해 "이명박 청와대가 국회의원 사찰을 시작했다고 언론이 지적한 2009년 하반기는 공교롭게도 박 예비후보가 정무수석을 하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며 "박 예비후보는 감옥에 가 있는 이명박 대통령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이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권력을 누리던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며 박 후보를 비난했다.

보궐선거까지 남은 기간은 40여일. 때아닌 의혹에 여러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국민의힘 등 야권은 민주당이 주도한 선거 공작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까지 나온 민주당의 주장이 구체적이지 않고 두루뭉술한 탓이다. 민주당 소속의 김경협 국회 정보위원장은 지난달 2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정원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이날 그는 ‘추정’, ‘추측’, ‘정확히 파악이 안 돼 있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현안을 설명했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김 정보위원장뿐 아니라 박지원 국정원장도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못했다’, ‘개연성이 있다’ 등의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며 “선거가 임박한 때에 추측에 입각한 주장으로 상대 당의 유력한 후보를 공격하는 것은 선거용 정치 공작임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 소장은 “역대 대통령 대다수는 없애지 않고 보관한다는 뜻의 ‘존안자료’를 만들어 인사 때 활용한다”며 “사찰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존안자료는 고위공직자 후보군, 경제계, 학계, 시민단체, 언론계 등 각계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개인 신상을 기록한 인사 자료다. 이 자료 자체가 불법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정보수집 단계에서 정보기관이 법령상의 직무 범위를 벗어나 민간인 등을 대상으로 미행, 도청, 탐문 채집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면 불법에 해당한다.

불법 사찰을 둘러싼 공세의 수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강대강’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소속 정보위 위원들은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선택적 정보공개가 아닌 김대중(DJ) 정부 이후 현재까지의 사찰 정보를 일괄 동시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이 같은 대응에 대해 장 소장은 “반 정도 잘했다고 본다”며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주문했다. 그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먼저 나서서 MB 사찰 정보 공개를 청구했더라면 국민들의 의심이 줄어들었을 텐데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여야 정보위 위원들은 지난달 17일 초당적으로 MB 사찰 정보를 국정원에 요구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한편 DJ 정권 시절 국정원장의 사찰 사건은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이다. 야권이 DJ, 노무현 정권의 불법 사찰 자료도 공개하자는 주장이 뒤따르는 이유다. 23년간 불법 사찰로 국정원의 수장이 사법적인 조치를 받은 경우가 바로 DJ 정권 시절에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신건은 국정원의 대규모 불법 감청을 묵인·방관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또한 이때 국정원은 불법감청 장비 ‘R2’를 개발하는 등 불법 사찰을 이어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무려 1800여명이 불법 사찰로 피해를 입었다.

정치권은 셈법에 분주한 모양새다. 불법 사찰 의혹이 부산시장 선거판에 변수로 작용할지 예측하는 데 여념이 없다. 박 후보는 불법 사찰 의혹이 부산 시민들의 표심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달 22일 “부산 시민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치사하게’ 공작하고 뒷통수치는 것”이라며 “선거 앞두고 또 장난 치고 있다는 것이 상식을 가진 부산 시민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괜히 엄한 사람 덮어 씌우려 한다면 역풍이 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이 선거일까지 박 후보가 사찰 문건에 대해 보고 받았다는 정황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민주당의 ‘불법 사찰 의혹 카드’는 자충수가 되고 만다.

이에 대해 장 소장은 “민주당이, 부산 출신인데다 당선이 유력한 박 후보를 계속 흔들면 부산 민심에 불이 붙을 수 있다”며 “선거판에 지역 감정이 섞여 버리면 박 후보에 대한 민주당의 공격은 정치적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