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지지율 높아지면서 안철수와 갈등 격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연초부터 꺼내들었던 ‘3자구도 필승론’ 카드가 국민의힘 당내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3자 구도 필승론은 야권 후보가 단일화를 하지 않고 여당 후보와 3자 구도로 모두 출마해 선거를 치른다 하더라도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의 이 카드는 ‘오세훈-안철수’의 단일화 협상이 난항에 빠져들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여론조사 상승세가 완연한 추세를 보이면서 열세를 보였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앞서는 결과가 잇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3자구도 필승론의 밑바탕에는 안 후보측과의 단일화 협상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주장은 상승 추세를 보이는 오 후보의 지지율을 배경으로 한다. 오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는 ‘부동산’으로 요약된다. 부동산 실책,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 공시지가 폭등 등으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민심은 싸늘해진 상태다. 오 후보는 LH 파문의 반사효과는 물론 중도층의 ‘정권 심판론’까지 등에 업고 지지율 상승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안철수 잇단 수용 의사 밝혔으나 국민의힘 ‘시큰둥’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야권 단일화 협상을 벌이고 있는 오세훈(왼쪽)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사진=연합뉴스)
지난 18일부터 이틀 간 안 후보와 오 후보는 긴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후보 등록 마감을 하루 앞둔 18일 두 후보는 단일화 협상에서 줄곧 의견 차이만 확인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단일화 룰이 단연 갈등의 핵심이었다. 안 후보는 100% 무선전화로 두 곳의 여론조사 업체가 ‘경쟁력 및 적합도’, ‘적합도 및 경쟁력’을 각각 조사해 합산하자고 제안했다. 오 후보는 여론조사에 유선전화도 포함하고, ‘경쟁력’과 ‘적합도’를 두 곳의 업체가 따로 조사해 합산하자고 제안했다.

이견이 컸지만 합의에 이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날 정오 무렵 안 후보는 “오 후보가 오늘 아침에 수정 제안한 여론조사 방식을 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오 후보는 환영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후보의 협상은 파경으로 치달았다. 양측에서 감정이 섞인 험한말들이 오갔다.

이런 상황은 다음날까지도 데자뷰처럼 반복됐다. 지난 19일 오전 안 후보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 후보 측이 제안한 안을 수용하겠다”고 전격적으로 수용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약 3시간 뒤 오 후보는 “안 후보의 수용 정도가 어디까지인지 불투명하다”고 맞섰다. 사실상의 단일화 결렬을 선언한 셈이다. 안철수의 잇단 승부수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3자 구도 필승론’ 현실화를 위한 국민의힘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당직자는 “오 후보의 지지율이 선전하는 추세를 보이자 ‘무리한 단일화보다 3자 구도로 선거를 치루자’는 의견이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15일 리얼미터가 문화일보 의뢰로 지난 13~14일 서울시민 10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간 가상대결’ 결과에 따르면, 오 후보는 3자 대결에서 지지율 35.6%로 1위를 기록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3.3%, 안 후보가 25.1%로 뒤를 이었다. 양자대결에서도 오 후보(54.5%)는 박 후보(37.4%)보다 앞섰다. 55.3%를 얻은 안 후보도 박 후보(37.8%)를 무난하게 제쳤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등 참고)

3자 구도 필승론의 배경에는 정권심판론도 깔려있다. 지난해 총선 때와는 달리 정권심판론이 통할 것이라는 분석에 기반한 것이다. 계속되는 부동산 실책에 민심은 이반하기 시작했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대표 사례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번 선거는 대선 전초전이기 때문에 정권을 평가한다는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김종인의 계획된 시나리오?…김무성 등 반발

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사진=연합뉴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안 후보를 겨냥해 “토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은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없다”고 비난해 야권 후보 단일화에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3자 구도 필승론이 단순한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의도된 시나리오라는 해석이 이때부터 불거졌다.

그러자 안 후보는 다음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오 후보 뒤에 ‘상왕’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고 맞대응에 나섰다. 여기에서 상왕은 김 위원장을 겨냥한 말이다.

급기야 국민의당은 대변인까지 나서서 ‘3자 구도’를 거론하며 우려를 표했다.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은 지난 17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김 위원장이) 최근 들어서는 3자 구도까지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하신다"며 "세간에서는 민주당에서 보낸 엑스맨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현하는 분도 계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대변인은 이어 “국민의힘측이 협상을 지연하는 모습을 겪었다”면서 "정말 3자 구도를 염두에 두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하는 분들이 생겨났다. 그 책임을 국민의당에 전가할 공산도 크다"고 날을 세웠다.

안 후보와 국민의당측의 우려에 대해 이 평론가는 “타이밍을 놓쳤다”며 “안 후보는 자신이 우세한 지위에 있을 때 단일화를 성사시켰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범야권 단일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은 국민의힘 내부와 외부에서 거세게 불었다. ‘더 좋은 세상으로 포럼(마포포럼)’ 공동대표인 김무성 전 의원과 이재오 ‘폭정종식비상시국연대’ 공동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보수야권 원로 인사들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위원장이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의 걸림돌이 돼 왔다”며 “즉각 사퇴하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이후 김 전 지사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이번 후보단일화 처음부터 진행될 때부터 지금까지 김 위원장의 언행이 후보단일화를 방해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은 사사건건 안 후보를 비난하니까 국민들은 똑같은 사람들끼리 짜증을 내는 것으로 바라본다”고도 강조했다.

노유선 기자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