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尹 행보, 누군가 계산한 듯”…조력자 암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계 진출에 관한 ‘암시’만 했을 뿐, 정식 ‘선언’은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를 향한 정치권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 국면에서 윤 전 총장이 차기 대선주자 중 양강 구도의 한 축으로 부상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윤석열 현상’의 지속성 여부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현재는 말없이 강한 면모를 보이는 윤 전 총장이지만, 현실 정치로 들어오는 순간 지금의 신드롬이 이어질 수 있을지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것이다.
사실상 수사 경험이 전부인 그는 정치 진출을 공식 선언한 후 현안에 입을 떼는 순간 밑천이 드러날 수도 있다. 반면 새로운 관점과 언어로 참신성이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전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메시지 전달을 위한 ‘열공’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이 본격적으로 말문을 여는 시점은 어느 정도 예비 수업을 마친 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윤석열의 사람들’이 정치권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이유다.
이낙연의 경고…“쉽게 생각하지 말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사진=연합뉴스)
“그 길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쉽지 않을 것이다.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윤 전 총장의 차기대선 출마와 관련해 전한 말이다. 이 위원장은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 대선출마는)본인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이미 어떤 길에 들어선 것 같다”며 이 같이 밝혔다.
4선 국회의원, 전남도지사, 집권여당 대표,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며 현역 정치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연륜을 지닌 이 위원장의 발언은 윤 전 총장을 향한 조언인 동시에 견제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 이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의 행보를 두고 “중간중간 누군가 계산한 듯한 행보를 한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당시 이 위원장은 해당 발언의 구체적인 의미를 추가로 설명하지 않았다. 단 ‘누군가의 계산’이라는 표현에는 윤 전 총장 주변에서 누군가 정치적 행보나 발언의 수위를 코치해주는 조력자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 위원장은 또 “어제도 한 말씀을 했던데,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기획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는 앞서 윤 전 총장이 <조선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대해 “상식과 정의를 되찾는 반격의 출발점”이라고 말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캠프를 꾸린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전문가들의 메시지 관리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윤 전 총장은 그 뒤로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시장 사전투표에 나선 그는 ‘차기 대권 행보로 봐도 되나’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도 입을 닫았다. 다만 이를 두고도 해석이 여럿 나오긴 했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경우 “그 일정을 기자들에게 알린다는 것은 정치적인 행동을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경계심을 보였다. 반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우 “(윤 전 총장 사전투표는)내가 보기에 커다랗게 정치적 의미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정치적 발언을 내놓기 힘든 여건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윤 전 총장 발언이 두고두고 입길에 올랐던 만큼, 그가 공식 정계진출 선언을 하기도 전에 또 다시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검찰 내에서도 윤 전 총장에 대한 쓴 소리가 나온 상황이다. 지난달 31일 박철완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이 검찰 내부망에 윤 전 총장을 겨냥한 비판의 글을 올린 것이다. 그는 “전직 총장의 정치 활동은 법질서 수호를 위한 기관인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염원과 모순돼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정무감각 있다” 평가하지만
혹독한 검증이 관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예전부터 나는 (윤 전 총장이)대단히 정무 감각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우리나라 과거 대통령들 중 경제와 외교 등 이것저것 다 알아서 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다양하고 집요한 검증 공세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여권뿐 아니라 야권의 공통된 시각이기도 하다. 유승민 국민의힘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은 지난 1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차기대선’을 언급하며 “윤 전 총장은 강력한 경쟁자”라고 지목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이슈는 코로나 이후의 경제 문제”라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이런 점 때문에 여권 내부에서는 윤 전 총장에 대한 경계심을 다소 늦춘 목소리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지율 1위라는 것은 시시각각 변한다”며 “현 정부에서만 보더라도 이낙연, 이재명, 윤석열로 계속 바뀌었다”고 했다. 이어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시계는 더 빨리 돌아가고, TV토론회까지 가면 밑천은 금세 드러나는 법”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은 뚜렷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당장 거품이 꺼질 소지가 있다. 그가 최근 차기대선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잇단 1위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지지층 기반이 아직 확고하지 않은 편이다.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사상누각 형태의 지지세라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달 29일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같은 달 22~26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547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윤 전 총장은 34.4%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신뢰수준 95%, 오차범위 ±1.9%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등 참고)
하지만 해당 여론조사의 상세표를 보면 윤 전 총장에 대한 지지층이 견고하다고 보긴 힘들다. 먼저 윤 전 총장의 1위를 견인한 쪽은 국민의힘 지지층이다. 자신을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밝힌 응답자의 63.9%가 윤 전 총장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이념 성향에서도 본인을 보수라고 밝힌 이들의 절반 이상(52.5%)이 윤 전 총장을 선호했고, 중도(38.9%)가 뒤를 이었다.
그런데 보수진영 반대편에서 윤 전 총장에 대한 지지가 상당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지지자라고 밝힌 이들의 18.3%가 윤 전 총장을 선호한다고 했다. 이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기록한 16.6%를 앞선 데다, 모든 후보들 가운데서도 최다 수치다. 이밖에도 범진보로 분류되는 시대전환의 지지자 28.6%가 윤 전 총장을 선호한다고 밝혀 모든 후보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현상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윤 전 총장이 정치를 선언한 후 각 현안에 입장을 밝히고 비전을 제시하는 순간 느슨한 지지충은 언제든 이탈할 수 있는 한계를 갖기 때문이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진보 지지층의 윤 전 총장 지지는 현 집권세력에 대한 경고 성격이 짙다”며 “아무런 미래비전을 제시한 적 없는 윤 전 총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도 볼 수 있다”고 바라봤다.
장 소장은 이어 “윤 전 총장이 경제와 외교 및 청년 문제 등 다방면에 식견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없다면 대선을 1년 남기고 공부로 메우려 해선 안 될 것”이라며 “그럴 경우 본인의 미흡한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이 공감하고 받아들일 만한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고 부연했다.
당장 윤 전 총장을 향후 행보를 놓고 고심 중으로 알려졌다. 그의 측근으로 불리는 한 인사는 익명을 요구하며 “윤 전 총장이 다독(多讀)하고 언변이 좋다는 점은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며 “특히 경제의 경우 특수수사 당시 금융 분야는 꿰뚫었기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당한 때가 되면 차츰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