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 심판 책임론…’조국사태’ 금기시 논란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7보궐선거 패배로 강도 높은 쇄신을 선언했다. 그러나 쇄신 대신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에 관한 진단은 물론 심지어 관련 발언 자체를 금기시하는 이들과 ‘금기’를 깨려는 의원들 사이에서 날선 신경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쇄신 대신 불협화음과 강성 지지자들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논란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당대회까지 보름도 채 안 남긴 상황에서 민주당이 재차 ‘조국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조국 책임론 공방 속…
‘친문’ 윤호중 원내대표 선출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신임 윤호중 원내대표가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윤호중 의원과 박완주 의원이 맞붙은 민주당 원내대표 후보자 합동토론회. 중간 무렵 조 전 장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사회자 질문이 나왔다. 보궐선거 패배의 주요 원인에 조 전 장관 논란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물음이었다. 윤 후보와 박 후보는 서로 상반된 대답을 내놓았다.
윤 후보는 발언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는 “조 전 장관에 대해 국민들은 물론 우리 당 지지자들, 또 의원들 사이에서도 다른 견해가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조 전 장관 문제는 대통령 인사권에 검찰총장이 개입한 부적절한 사건이었다”면서도 “그렇다고 조 전 장관의 가족사와 일상사가 모두 정의롭고 공정했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시종 모호한 입장이었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수사는 지나쳤지만 국민의 비판도 함께 인정했다. 그는 “사법제도는 국민에 평등해야 하는데, (조 전 장관 수사는) 무너졌다”며 “우리 당이 조 전 장관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비난도 샀고 힘든 과정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조 전 장관 사태는)지난 총선에서 이미 심판이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반면 박 의원은 비교적 표현이 명확했다. 그는 “조국 사태는 우리 문재인 정부가 기치로 세웠던 공정의 측면에서 국민들에 큰 영향 준 게 사실”이라며 “비록 재판 중이긴 하나 아빠카드, 엄마카드 등 국민들이 가장 예민해 하는 부분에서 우리 정부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 의원은 조 전 장관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내에서 조 전 장관 논란에 대해 평가를 할 수 있냐 없냐를 갖고 미묘한 의견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실관계와 혁신에 대해서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조국 사태 자체를 논하는 것이 금기시 된 당의 문화는 옳지 않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원내대표에는 윤호중 의원이 16일 선출됐다. 친문(친문재인)으로 분류되는 윤 의원의 당선은 그만큼 당심이 반영됐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대표 선거까지 ‘조국 사태’ 논란 이어질 듯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민주당 안에서 조 전 장관에 관한 논쟁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대표 선거가 남은상황에서 조국 사태에 대한 입장과 공방이 민주당 쇄신의 평가를 가를 주요한 잣대 중 하나로 떠오르는 것이다. 원내대표 경선 토론회가 보여주듯, 민주당에 대한 쇄신 요구가 분출된 보궐선거 패배의 원인에서 조국 사태의 책임론 공방은 민심을 파악하는 작업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쇄신안 마련에 머리를 맞대기보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입장차로 공방을 벌이는 데 급급한 모양새다. 조국 사태와 관련, 최대한 말을 아끼려는 이들과 반드시 짚고 넘어가려는 의원들 사이에서 신경전이 거세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이 강성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당심’과 2030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민심’ 사이에서 갈등상태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쪽과 거리를 두려는 쪽이 서로 한 치도 물러섬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난 13일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민주당 권리당원 일동’이란 글이 게재됐다. 해당 글은 “초선의원들이 보궐선거 패배의 이유를 청와대와 조국 전 장관의 탓으로 돌리는 왜곡과 오류로 점철된 쓰레기 성명서를 내며 배은망덕한 행태를 보였다”는 비판이 담겼다.
이는 민주당 초선의원들을 저격한 것이다. 앞서 민주당 초선인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의원은 지난 11일 ‘조국사태를 반성한다’는 내용이 담긴 입장문을 내며 “민주당 혁신의 주체가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들 5명은 ‘조국수호’를 외치는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초선 5적’으로 규정돼 하루 수천 통의 비난 섞인 문자폭탄을 받고 있다.
조 전 장관과 관련된 논란은 민주당 안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면서 당내 불협화음을 키우는 중이다. 조응천 의원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서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문제는 보수정당의 ‘탄핵’과 같이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을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할 것”이라며 “(권리당원 성명서는)민심과 한참 괴리됐다”고 직격했다. 초선 5적으로 낙인찍힌 후배 의원들을 방어해준 셈이다.
중진의원들도 거들고 나섰다. 5선 변재일·이상민·안민석, 4선 노웅래·안규백·정성호 의원 등 당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중진 6명은 지난 15일 입장문을 통해 ‘권리당원 일동’ 명의의 성명서를 지목해 “이는 전체 권라당원 명의를 사칭하여 당헌·당규 및 실정법에도 저촉될 수 있는 행위로서 상응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정 골수 지지자들을 향해 중진의원들이 입장문을 내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당내 과도한 편가르기 행위가 심각하다는 상황을 대변해주는 사례이다.
이처럼 조 전 장관을 중심에 두고 갈등이 불거지는 민주당 내 불협화음은 적어도 오는 5월 2일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도 이어질 전망이다. 당대표에 도전하는 송영길·우원식·홍영표 의원 중 조국 사태에 직접적인 반성의 목소리를 낸 이들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특히 홍 의원은 지난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문자폭탄도 민심의 소리”라면서 강성 지지자들의 행동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당내 일각에선 쇄신에 앞서 분열이 우려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중지란이 심해지면 차기 대선에서 보궐선거 때보다 더한 심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는 쇄신 이전에 당의 분열 가능성부터 걱정해야 할 노릇”이라며 “결국 웃고 있는 쪽은 국민의힘 등 야당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