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초선 5적’ 규정하고 문자폭탄 공세/ 野 ‘아사리판’ 논란 속 초선들 당 대표 도전 관심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2000년대 초반 여의도를 강타한 ‘정풍운동’이 재현될 조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초선 의원들이 일제히 당의 ‘전면 쇄신’을 요구하고 나섰다. 양당의 젊은 정치인들은 이념과 계파를 초월한 혁신을 외치며 자신들이 주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4·7 재보궐 선거의 승패와 상관없이 불어닥친 신(新)정풍운동이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초선들의 ‘반란’이 성공할지 여부는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젊은 정치인들이 어떤 새바람을 일으킬지에 대한 기대감도 따르지만, 일각에서는 기득권과 강성 지지층의 저항에 막혀 미풍에 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초선 의원들의 돌파력 자체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과연 초선 의원들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여 ‘천·신·정’ 뿔뿔이 흩어져
야 ‘남·원·정’은 찻잔 속 미풍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등 20~30대 초선 의원들이 지난 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입장문을 내기 전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의 당헌·당규에 의하면 이번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은 후보 공천을 하지 않았어야 합니다…어느새 민주당은 ‘기득권 정당’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과신, 일단 시작하고 계획을 만들어 가면 된다는 안일함, 과거를 내세워 모든 비판을 차단하고 나만이 정의라고 고집하는 오만함이 민주당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야당의 논평이 아니다. 민주당 안에서 나온 자성의 목소리다. 지난 9일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이들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보여주신 국민의 질책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통렬하게 반성한다”며 “저희 초선의원들부터 달라져 민주당 혁신에 앞장서고 당 혁신의 주체가 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를 보고 20년 전 이 무렵 국회 상황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2001년 5월 현 집권여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에서는 패기로 무장한 젊은 정치인들의 행보가 상당한 여파를 낳았다. ‘천·신·정’으로 불리는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이 당의 실세로 불린 권노갑 민주당 최고위원에 2선 퇴진을 요구하면서다.
권 최고위원은 당시 보름 만에 사퇴했다. 소위 ‘보스 중심’ 정당문화에서 이 같은 모습은 일대 파장을 일으켰다. 이렇게 쇄신 가능성을 보여준 민주당은 그 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정풍운동을 이끈 이들 3인방은 나중에 뿔불이 흩어져 존재감을 상실했다. 세대교체의 대세를 거스르지 못한 채 사라져간 점이 아이러니다.
이번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행보는 신(新) 정풍운동으로 묘사된다. 특히 이들은 ‘조국수호’ 등 그동안 민주당이 강하게 견지해온 입장에도 비판의 칼을 겨눴다. 초선 의원인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의원은 지난 11일 입장문에서 “조국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 생각했다”며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분노하고 분열돼 오히려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동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세력화에도 나섰다. 민주당 초선 의원을 뜻하는 ‘더민초’라는 이름으로 연대했다. 더민초는 정례회의를 열고 쇄신안 마련에 힘쓸 계획이다. 또 전국을 돌며 청년들과 만나 새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행보에 나선다. 자신들이 혁신의 ‘주체’가 되겠다고 선언한 만큼, 친문(친문재인) 세력 등이 주도해 온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시도로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초선들의 정풍운동이 보궐선거에 승리한 국민의힘 안에서도 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일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은 입장을 내고 “우리 당이 잘해서 거둔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의 패배이자, 우리 국민의힘에 주어진 무거운 숙제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명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역주의와 계파정치 타파를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상 당내 주류세력인 영남권 의원들을 겨냥한 것이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 역시 자신들이 주체가 돼 당의 혁신을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기회를 주신 국민의 큰 뜻이 또다시 실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국민의힘을 바로 세우고 처절하게 혁신해 나가는 데 앞장서겠다”며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한계를 극복해 나가겠다”고 했다.
보수세력의 정풍운동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남·원·정’으로 불리는 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이 팔을 걷어붙였다. 이들은 이회창 전 총재와 대립각을 세우며 세대교체는 물론 강력한 개혁을 요구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한 채 목소리만 높였다는 평가를 낳았다. 찻잔 속의 미풍이었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따라서려 이번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의 쇄신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들도 기대감과 우려감이 교차하는 것도 사실이다.
마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초선 의원들의 정풍운동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주목을끌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13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국민의힘 상황을 ‘아사리판’으로 묘사하며 “초선 의원을 당대표로 내세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힘을 싣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같은 모델”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했다. 자신을 견제하는 당내 주류세력의 당권 다툼을 아사리판으로 혹평하면서 초선 의원들을 부추기는 노회한 발언이다.
당내 기득권 반발 극복이 관건
김종인 “초선 당대표” 부추겨 관심
16일 원총회 참석한 국민의힘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왼쪽)
하지만 초선 의원들의 정풍운동은 당내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강한 저항을 받아 이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특히 여당에서는 친문으로 대표되는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다. 이미 친문 지지층은 ‘조국 감싸기’를 비판한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의원을 ‘초선 5적’으로 규정한 상태다. 이들 5명의 의원들 개개인은 하루에 비판 문자메시지만 4000~5000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세력화된 조직적 응징인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은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돌파 의지에 실제 영향을 미쳤다.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초선 5적 비판을 받은 의원 중 한 명인 장 의원은 최근 일부 당원들에게 “조 전 장관께서 고초 겪으실 때 그 짐을 저희가 떠안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강성 지지층의 공격에 대한 주변 방어막이 썩 튼튼하지 않다는 점 역시 난항으로 꼽힌다. 당내 중진 의원들 중에는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 등 행위에 경고하거나, 초선 의원들을 직접 응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홍영표 의원의 경우 지난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문자폭탄도 민심”이라고 발언해 선을 긋기도 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도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우선 이들은 당권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웅 의원의 경우 이미 당 대표 출마를 여러 경로를 통해 선언한 상태다. 이밖에도 박수영·윤희숙 의원 등이 차기 당권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은혜·배현진 의원 등 대변인 출신의 여성 초선 의원들도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항간에서는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의 당권 도전도 계파활동의 일환이란 시각이 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