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1년 앞둔 21대 국회...법안 살펴보니
부실, 자기 표절, 포퓰리즘…수준 떨어지는 의원발 법안들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직무 관련 정보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민주화 이후 13대 국회부터 의원 발의 법안 가결률은 정부 제출 법안을 넘기지 못했다. 가결률은 50%를 넘긴 적도 없다. 의원 발의 법안 건수는 급증하는 데 비해 가결률이 턱없이 부진하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은 '국가미래전략 Insight' 제4호에서 “지나치게 많은 법안 발의는 법안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법안 반영률과 가결률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와 법안 내용의 충실성이 반비례한다는 지적이다.

21대 국회도 역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법안 발의 내용이 부실한 편이다. 법안을 발의했다가 서둘러 철회하는가 하면, 수많은 자기 표절 법안을 양산해 내 법안 건수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 여론의 움직임에 따라 생색내기용 법안도 발의됐으며 그 중에는 포퓰리즘 법안도 포함돼 있었다. 기업 처벌 및 규제 법안이 신설ㆍ 강화되는 등 과잉 입법 지적도 제기됐다.

‘일단 내고 보자’ 발의 후 철회…자기 표절 법안도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의원 스스로 법안을 철회한 경우는 지난 4월말 기준으로 101개에 달했다. 특히 가장 많은 법안을 철회한 의원(대표발의)은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임오경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임 의원은 지난해 12월 1일 무려 9건의 법안들을 동시에 제출했지만 6일 만에 모두 철회해 버렸다.

법안을 발의한지 하루 만에 철회해버린 의원들도 있었다. 지난 1월 28일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바로 다음날 해당 법안을 철회했다. 소병훈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11월 11일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뒤 하루 만에 철회했다. 앞서 배진교 정의당 의원 역시 지난해 11월 2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뒤 다음날 철회해버렸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법안에 대한 여론이 안 좋거나 오류가 있으면 법안을 철회하고 다시 발의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는 19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법안을 철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19대 국회에서 172건, 20대 국회에서 215건의 의원 철회 법안이 나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의원입법과 정부입법의 차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부 제출 법안은 국회에 오기 전부터 촘촘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반영되고 단순 오류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조금씩 바꾸며 또 다른 법안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주민 민주당 의원 등의 이른바 ‘전월세 무한 연장법’ 법안이다. 박 의원을 비롯한 22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해 6월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주택 파손이나 임대료 체납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세입자가 2년마다 재계약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이 법안이 2016년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을 자기표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6월 14일 페이스북에 "연구라고는 1도 안하고 똑같이 베끼고 바보들 이름만 바뀌었다"면서 "성실하게 법안 연구도 안하고 날라리처럼 언론플레이만 한다"고 비판했다.

임오경 의원의 경우 철회한 법안들을 보면 사회복지사, 화장품제조업, 영양사 등 직업군만 바꾼 채 법안 설명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이외에도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업종만 변경해 유사한 법안들(수산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 농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 산림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하는 경우도 있었다.

황당한 법안도 부지기수….’빛 탕감법’ 등
포퓰리즘으로 생색내기에 나선 의원도 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이른바 ‘은행빛 탕감법’을 발의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해당 법안은 재난 상황 발생 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은행에서 빌린 돈의 원금까지 감면해주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부가 감면을 명령했을 때 은행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은행에 대한 새로운 규제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무리한 법안을 내놓기도 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대표발의한 ‘검찰청법ㆍ법원조직법 개정안’은 현직 검사나 법관이 공직선거 후보자로 출마하려면 1년 전까지 사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법은 공무원이 공직선거 후보자로 입후보할 경우 90일 전까지 사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비교할 때 검사나 판사라는 이유로 사실상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위헌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낳았다. 다분히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한 정치적 보복법안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법안발의 과정에서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낳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1대 국회의 6대 상임위원회에 제출된 법안을 전수 조사한 결과, 기업(인)에 대한 처벌을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법안이 117개 발의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설은 38개 법률 78개 조항, 강화는 26개 법률 39개 조항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도 팔을 걷어 붙였다. 지난해 9월 21일 대한상의는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신중하게 검토해 달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21대 국회에 제출했다. 대한상의는 "우리는 지금 저성장 고착화와 재도약의 기로에 서 있다"며 "미래 먹거리인 자율주행, 비대면 서비스 등 신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낡은 법과 제도정비에 국회가 힘써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규제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정부는 국민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며 “지금까지의 관행에 비합리성이 개입하는 등 집권여당은 규제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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