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같은 국민의힘 입당은 정치적 무덤 될 수 있어
- 슈테판 츠바이크가 말한 ‘별의 순간’은 역사를 바꾼 순간들

윤석열 전 검찰총장(사진=연합뉴스)

‘윤석열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지 두 달 반 가까이 지나고 아직까지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선 주자 윤석열의 인기는 변함없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머니투데이와 미래한국연구소가 PNR에 의뢰해 지난 8일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34.3%의 지지율로, 24.7%를 기록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9.6%포인트 차이로 앞선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림1) 대통령이 되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온 여야의 대선주자들을 단숨에 제치고 아직 정치에 대한 경험조차 없는 인물이 선두로 올라서는 이변이 여러 달 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하여 4월 하순에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 32.0%를 기록한 윤 전 총장은 23.8%를 기록한 이 지사를 8.2%포인트 차이로 앞서면서 선두를 유지했다. 같은 기관이 지난 11~12일에 전국 성인 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상양자대결 조사 결과, 여권의 이 지사와 대결해 이기는 것으로 나오는 야권 대선주자는 윤 전 총장 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은 45.7%의 지지율을 기록하여 35.5%를 기록한 이재명을 여전히 10.2%포인트 격차로 앞서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만약 여권에서 지금의 판세가 이어져 이재명이 대선 후보가 된다고 가정했을 때, 야권의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인물은 윤석열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ARS가 아닌 전화면접 방식의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오차범위 안에서 이 지사가 앞서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보아 윤석열의 선두 유지 혹은 각축의 판세는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리얼미터의 대선주자 선호도 월간 추세를 보아도 윤석열의 검찰총장 사퇴 직후부터 만들어진 초강세 현상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2)

아직 정치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언론과의 접촉도 거의 없는 개인이 선두급 대선주자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윤석열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대심리의 반영일 것이다. 특히 정권교체를 원하는 층에서 윤석열이 유승민, 안철수, 홍준표 같은 야권 주자들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정권교체의 대안으로 부상한 것은 정권교체는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 등 기존 야당에서는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존 여야 정당과 인물들에 대한 불신 위에서, 정권으로부터의 모진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견뎌냈다는 스토리가 대선주자 윤석열을 받쳐주는 힘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평생 검사였던 윤석열을 이렇게 하루 아침에 선두급 대선주자로 만들어준 것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윤석열 저격수로 앞세운 집권세력이었음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추미애가 때리면 때릴수록 윤석열의 인기는 올라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결과적으로 추미애, 그리고 그와 장단을 맞춘 더불어민주당 내 김남국, 김용민, 박주민 의원 등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대안부재로 고민했던 야당을 살려주는 X맨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검찰개혁’이라는 양의 머리를 내걸고 ‘검찰장악’이라는 개고기를 판 정권의 행태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에게 추미애와 정권 측은 박해하는 가해자, 윤석열은 그 피해자라는 인식이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윤석열한테 ‘별의 순간’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추미애였지만, 그것만으로 유력 대선주자의 위상이 지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의 내공과 실력이 없으면 결국 거품으로 평가받고 추락하게 되는 것이 역대 제3후보들의 운명이었다. 고건도, 반기문도, 그리고 안철수도, 검증의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대선정국에서 퇴장하는 운명을 맞은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의 대선 출정이 기정사실이 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관심은 ‘윤석열은 과연 대통령감’인가 라는 질문으로 모아진다. 물론 윤석열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집안을 멸문지화한 정치검사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정권의 사람들에게 충성하지 않은 정의로운 검사로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의 평가는 정반대가 될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어느 쪽이든, 대선주자 윤석열이 갖고 있는 강점과 약점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때 비로소 향후 대선정국에 대한 현실적 전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표1)

윤석열이 가진 최대의 강점은 시대의 화두가 된 공정과 정의라는 요구에 부응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가 좌천당하고,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조 전 장관 집안을 수사했다는 이유로 정권과 척을 지게 된 인물이다. 정권에게는 미운 털이 박혔지만, 그러면서도 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검사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를 지지하고 있다.

정권 실세 집안의 입시비리를 끝까지 추적해서 수사한 그의 모습은 특히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불공정을 심판하는 칼을 쥔 검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박근혜ㆍ문재인 두 정권을 거치면서 보수와 진보 정권 모두로부터 핍박을 당하면서도 굽히지 않았던 모습 또한 강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그렇다고 정치적 기본 능력이 없는 거품투성이의 인물은 아니라고 짐작되는 것이, 검찰조직 속에서 성장해 오면서 자기 사람들을 이끌고 신뢰받는 리더십을 보여왔다는 얘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능력의 부재 속에 직업적 관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고건과 반기문, 정치하기 전부터 공감을 말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공감능력 부재를 드러냈던 안철수의 경우와는 다른 내공을 예상해볼 수 있는 근거들이다. 적어도 앞서 있었던 제3 후보들처럼 아침에 꺼질 거품은 아니라는 것이 이제까지 윤석열을 알던 사람들의 대체적인 얘기이다.

그러나 정치란 것이 어디 그렇게 쉽고 단순하겠는가. 윤석열은 정치인으로서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우리는 검사 윤석열이 국회 답변에서 혹은 이런 저런 자리에서 한 얘기들을 간간이 들은 적은 있지만, 그가 정치인으로서 그것도 대선주자로서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법치와 수사를 말하는 윤석열의 모습은 자주 접했지만, 부동산 대책을 말하고 백신 대책을 말하는 그의 모습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 각 분야의 정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만, 벼락치기 공부로 국정의 실력이 어디까지 키워질 지도 지켜봐야 할 일이다. 사람에게는 공부로 채워질 부분도 있지만, 경험으로 채워야 할 부분들도 분명 있다.

또한 윤석열이 정치인으로서 사람들을 모으고 공감하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과거 안철수에게서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에게서도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취약한 정치인의 한계를 경험한 바 있는 국민들로서는, 과연 윤석열은 다를 것인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정치적 동료이든, 국민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정치인이 갖춰야할 최대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법만 알고 살았던 평생 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데 얼마나 능력을 보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대목이다.

지금 윤석열에게는 정책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고 자기 조직을 만들 준비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에 앞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방향에 대한 선택이다. 윤석열의 앞에는 국민의힘 합류와 독자세력화라는 두 가지 길이 놓여있다. 국민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그 자신도 판단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앞의 (그림1)에서 인용한 PNR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에 입당해서 출마해야 한다’는 의견이 42.2%로, ‘새로운 정치세력을 세력화하여 출마해야 한다’는 23.7%의 의견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입당 요구가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묻지마 입당’은 윤석열을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몰고갈 위험이 크다. 아직은 국민의힘을 혐오하는 중도층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국민의힘이 윤석열의 정치적 무덤이 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국민의힘이 국민에게 받고 있는 평가 갖고는 거기 들어가면 오히려 큰 손해를 보지 않게 생겼나”라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말은 매우 현실적이다.

그래서 6월 11일로 예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는 윤석열의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좌우하는 중대 고비가 될 것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나간 이후 국민의힘에서 역주행의 광경들이 이어지고 있다. 보다 강도높은 변화를 강조하는 초선 의원 그룹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과거회귀 움직임은 당 안팎 곳곳에서 나타난다.

김기현 원내대표 선출과 주호영 전 원내대표의 당대표 경선 출마로 이어지는 ‘영남당’ 논란이 있고, 황교안 전 대표는 당내 일각의 우려에도 끝내 정치를 재개하고는 “백신 구하겠다”며 미국에 다녀와서 정치권의 논란거리가 되었다. 미래통합당 시절 황 대표와 투톱으로 강경투쟁을 선도했던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지금은 천천히 계시는 게 좋지 않을까"라며 황 대표의 복귀를 우려하며 그와 분리되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자신이 대표가 되는 것 또한 국민의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적지않다. “나경원 전 의원이 당의 얼굴이 되는 것을 민주당에서는 상당히 환영할 것"이라는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의 말 역시 현실적이다.

그런가 하면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있던 홍준표 의원은 초선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제 국민의힘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며 복당 신청을 해서 새로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이 아무리 서민, 노동을 중시해도 힘없는 경비원에게 '네까짓 게' 이런 말 한마디면 선거는 끝난다”고 했던 김웅 의원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본인은 애써 무시한다.

국민의힘 안팎의 ‘올드 보이’들에 의해 촉발되는 이런 논란들은 국민의힘을 향한 중도층과 2030 세대의 비호감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김종인 비대위체재 아래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구 정치인들의 재등장은 4.7 선거 압승에 도취되어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과는 달리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는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고, 이는 중도층의 이탈을 낳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 지난 해 총선 압승에 도취되어 오만의 정치를 하다가 1년 만에 심판을 받게 된 민주당의 상황은 국민의힘에게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는 자신들의 변화 여부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당내 초선 의원들은 이러한 의미를 의식해서 이미 초선인 김웅 의원이 당대표 출마 선언을 했고, 같은 초선인 윤희숙-김은혜 의원 등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출사표를 던지고 뛰어들어 몇몇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으로 진입한 상태이다. 하지만 당원투표가 70%나 차지하는 경선룰 속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이다. 최근의 여론조사들에서는 나 전 원내대표가 선두를 달리는 결과가 나오고 있어, 중도층 민심과는 다른 길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감지된다. (그림3)

또 하나의 뇌관은 홍 의원의 복당 문제이다. 주호영, 조경태, 홍문표, 장제원 등 중진 의원들은 홍 의원의 복당을 허용해서 야권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국민의힘 지지층 내에서도 홍준표 복당을 지지하는 의견들이 많은 편이다. (그림4)

그러나 “홍 의원이 복당하면 윤석열이 오겠냐”며 반대하는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홍준표 복당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많은 편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중진 그룹과 초선 그룹 사이의 입당 차이가 워낙 큰 민감 사안이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새 지도부에게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이 위임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때라고 해서 홍준표 복당 문제가 국민적 관심의 바깥에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당 지도부가 만들어지고, 역시 과거를 상징하는 홍 의원의 복당까지 이루어질 경우 국민의힘의 앞길에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때 그런 국민의힘에 윤석열이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지, 그랬을 때 윤석열이 대선주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묻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선정국에서 윤석열의 파괴력은 보수ㆍ중도층의 기반에다가 합리적 진보층까지도 포용할 수 있을 때 극대화될 수 있다. ‘도로 자유한국당 혹은 미래통합당’이 되어버린 국민의힘은 중도층의 등을 돌리게 만들 것이고, 중도층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윤석열은 일개 보수 정치인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할 위험이 매우 크다. 물론 전당대회에서 초선 그룹이 약진하는 돌풍이 일어나 새로운 모습의 국민의힘이 가능해진다면 윤석열로서도 그들과의 연대나 통합의 길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대로의 정당에 들어가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조직과 돈이라는 현실적 이유를 들어 윤석열이 제1야당에 바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윤석열의 지지율이 더 올라가 사람들이 모이면 조직이 되는 것이고, 돈 없으면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도 옛날 얘기이다. 지금은 여의도 광장에 군중을 모아놓고 유세를 하는 시대도 아니고, 코로나 방역 때문에 어차피 대면 유세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니 조직과 돈의 중요성은 그만큼 낮아진 환경이다. 국민의 지지가 낮아지면 조직과 돈 없이 대선을 치르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반대로 국민의 지지가 높아진다면 조직과 돈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민심 보다 강한 무기는 없다. 그러니 가능만 하다면 윤석열은 국민의힘에 얹혀서 편한 길을 가려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세력 형성에 나서는 것이 자신의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오늘 한국정치는 여권내 586 세력의 기득권, 야권내 낡은 보수정치세력의 기득권에 의해 변화가 한없이 지체되고 있다. 그러한 기득권 세력들이 공생하는 정치는 진영에 따라 편싸움을 하는 극단의 정치를 지속시키고 있다. 이들을 넘어서서 합리와 이성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시대를 열기 위한 중심세력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상황이다. 윤석열이 굳이 정치를 한다면 그 길을 개척하는데 앞장서는 리더가 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권교체를 생각한다면 윤석열은 야권 표의 분열을 막기 위해 국민의힘과의 통합이나 후보 단일화 등 여러 길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시간을 갖고 확인한 이후에 야권표 결집의 방법을 찾아도 늦지는 않다. 우선은 윤석열의 정치가 어떤 것이고, 윤석열 세력은 무엇이 다른가를 국민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는 것이 순서이다. 특별한 세력기반도 없는 사람이 덜컥 국민의힘에 들어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은 현명하지도, 정당하지도 못한 길이다. 독자세력화를 가능하게 할 힘은 오직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가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공감의 정치행보를 해나간다면 지지율의 추가 상승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그것을 이루어내야 국민의힘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심이 되어 국민의힘을 비롯한 기성 정치권의 ‘헤쳐모여’로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할 힘이 생겨날 수 있다. 윤석열이 자신의 정치를 보이며 기대치를 높여나갈 때, 국민의힘 입당을 주문하는 의견들도 독자세력화에 공감하는 의견들로 흡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5) 참조

과거 대선정국에서 그런 독자세력화 방향을 일관되게 견지했던 제3후보는 사실은 없었다. 고건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개편을 통한 출마를 시도했지만 반응이 여의치 않고 지지율이 하락할 조짐을 보이자 결국 불출마 선언을 했다. 반기문도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활동을 시작했다가 숱한 구설수에 오르면서 출마를 포기했다. 관료 출신의 한계를 드러낸 두 사람 보다는, 기존 여야 정치권을 넘어서려 했던 안철수의 경우가 윤석열과 비슷한 맥락이 있었다는 점에서 복기할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안철수가 무소속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한 것은 2012년 18대 대선일로부터 정확히 3개월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당시 안철수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계속 뒤지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는 달리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절정의 시간을 맞았다. 그러나 정작 출마 선언 이후 안철수는 임팩트있는 정치행보를 별반 보이지 못했다.

지지율의 상승을 이끌 여러 쟁점들이 많았던 시기였음에도 그는 국회의원 정수 축소 같은 반(反)정치 기조의 구상들을 꺼냈다가 불필요한 논란만 키웠다. 국민과 언론의 시선이 온통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환경을 십분 살리지 못한 채 밋밋한 선거운동을 벌이다 보니, 지지율은 교착상태에 빠져 문 후보와의 격차도 점점 좁혀졌다. ‘안철수-문재인’ 단일화 협상이 결렬되면서 후보등록 직전에 결국 안철수가 사퇴했던 데는 그의 준비 부족도 주요 원인으로 들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안철수가 출마선언을 한 이후 정치적 자문을 위해 몇 차례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안철수 캠프의 대선 준비 상황이 미진한데 대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점은 윤석열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일단 출마선언을 하고 나면 국민과 언론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될 것이다. 국민의 공감을 사는 얘기들이 이어지면 더 없는 기회일 것이고,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는 얘기들로 황금의 시간을 그냥 보내다 보면 지지율은 이내 하락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이 출마할 생각을 굳혔다면 이제는 정치활동 시작부터 내놓을 메시지들과 정책 구상들을 제대로 준비해야 2012년 안철수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대선 후보가 디테일한 내용들을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가려는 방향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얘기들에 우선하여, 윤석열이 출마 선언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분명히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그것은 “나는 왜 정치를 하려는 것인가”이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게 나와서? 자신을 괴롭혔던 정권에 대한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 검찰총장직에서 쫓겨나다시피한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최근까지 검찰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불과 몇 개월 만에 정치에 뛰어드는 장면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자칫 검찰총장으로 재임 때의 많은 행동들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적 차원의 동기를 넘어서는 정치적 소명 의식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기존 정치권에 얹혀서 편하게 대통령이 되려는 꿈을 꾸는 모습으로는 그의 정치참여에 의문을 제기하는 많은 국민들을 설득하기 힘들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말했던 ‘별의 순간’은 역사를 바꾼 순간들이었다. “역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순간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역사를 결정짓는다.” (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단지 대통령이 목표라면 그 꿈은 오히려 멀어질 것이고, 우리 정치의 역사를 바꿀 의지가 있다면 꿈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최종적 선택은 국민의 몫이지만, 일차적 선택은 윤석열 자신에게 달려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test@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