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연합뉴스)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세대교체 화두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정치 철학을 계승하는 쪽과 김 전 위원장의 색깔을 지우는 쪽으로 나뉘는 모양새다. 전자는 초선 위주고 후자는 중진이 대다수다. 중진그룹에서는 주호영(5선)·조경태(5선)·홍문표(4선)윤영석(3선)조해진(3선) 의원 등과 나경원(4선)·신상진(4선) 전 의원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청년 정신을 외지치는 초선 의원들도 당당하게 당권 도전에 나섰다. 원외주자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초선 중에서는 김웅·김은혜 의원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선 필승 전략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김 전 위원장 지지 세력은 전면적 쇄신을 전제로 한 ‘자강론’을 외치는 반면 중진 의원들은 국민의힘으로 외부 인사들이 들어오는 야권통합 ‘흡수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두 세력의 분열은 이렇듯 단순하지 않다.

진보의 전유물 기본소득...계승 vs 용도폐기?
국민의힘 정강정책의 강령 1조1항에는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라는 문장이 있다. 진보의 어젠다였던 기본소득을 보수정당의 정강정책에 반영한 것은 파격이었다.

당 내부에서는 “보수 정당에 어울리지 않는 좌클릭”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전 위원장은 소신대로 밀어 붙였다. 김 전 위원장이 말하는 기본소득은 ‘한국식 기본소득’이었다. 그는 지난해 6월 '사회안전망 4.0과 기본소득제' 정책토론회에서 “약자 보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사회 안전망"이라며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식 기본소득제도를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수 진영의 반론은 멈추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기본소득제가 실용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에 가깝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6월 김영우 의원은 CBS 라디오‘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소득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는 땀을 흘린 대가"라며 "그렇기 때문에 부에 상관없이 전 국민에게 국가가 월급을 주는 이런 일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난지원금을 지속시키는 것과 비슷한, 그런 식의 기본소득제에 대해서 반대"라고 밝혔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기본소득제의 본질은 사회주의 배급제도를 실시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면서 "아무런 실익이 없는 기본소득제 논쟁보다 서민복지의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당권 도전에 나선 초선의 김웅 의원이 ‘청년 기본소득’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한 김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을 찾아가 정치적 훈수를 받기도 했다. 김 의원은 지난 20일 SNS를 통해 20대 청년들에게 매달 50만원씩 청년 기본소득을 주는 방안을 거론했다. 그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없으면 정기적인 소득이라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을 제외하면 기본소득 논의를 기피하거나 외면하던 당 내 기류를 감안할 때 김 의원의 주장은 국민의힘의 쇄신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선 전 쇄신 방향 놓고 新-舊세력 생존 게임
대선을 앞두고 범야권이 함께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야권통합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당내 경선을우선시하는 김 전 위원장과는 상반된 입장이다. 지난 4·7 재보궐선거 때 김 전 위원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포함한 통합 경선을 강하게 반대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달 퇴임 기자회견에서도 자강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지난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보았듯 정당이 스스로 방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부 세력에 의존한다든지 그것에 더해 당을 뒤흔들 생각을 한다든지, 정권을 되찾아 올 수권 의지는 보이지 않고 당권에만 욕심 보이는 사람들이 아직 국민의힘 내부에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욕심과 갈등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언제든 재현될 가능성이 보인다"며 "대의보다 소의, 책임보다 변명, 자강보다 외풍, 내실보다 명분에 충실한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당부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일 KBS 일요진단에서도 자강론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수권정당이 되려면 국민의힘 내부에서, 국민의힘 능력으로 대통령을 당선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 20일 당권 도전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야권 통합론을 시사했다. 범야권을 모두 포괄하는 통합형 경선을 치러 대선 후보를 뽑겠다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은 “(대선 승리를 위해) 모든 후보를 받아들이고 제련하여 더 단단한 후보, 튼튼한 후보, 배출하겠다”며 “우리 당 밖에 계신 여러 후보와 세력을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면 내년 대선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주호영 전 원내대표도 지난 19일 안 대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등을 당 밖의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하면서 통합론을 주창했다. 그는 “(외부 인사들이) 당 경선에 참여하도록 문을 활짝 열고, 모든 후보가 참여하는 경선을 치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합당과 영입을 주도할 것”이라며 “당내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과반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선출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초선 의원 중 두 번째로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김은혜 의원은 대선 후보를 ‘완전개방경선(오픈프라이머리’ 방식으로 선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완전개방경선은 국민적 붐업을 통해 우리 당 후보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당 프레임을 깰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고 했다.

자강론과 야권통합론은 차이가 크다. 자강론은 윤 전 총장 등 외부 인사들이 들어올만한 당을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 혁신과 쇄신에 방점을 둔 것이다.

초선 의원을 중심으로 국민의힘이 영남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도로한국당’이 될 것이라는 외침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색이 강한 중진 후보가 당권을 잡을 경우 국민들의 비호감은 물론 외연 확장이 가로막힌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에 초선, 청년 인사들은 ‘혁신론’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신구(新舊) 세대교체 경쟁으로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당권을 둘러싼 정풍운동인 셈이다. 단순한 지도부 선출이 아니라 대선을 겨냥한 국민의힘 내부의 전면적인 쇄신을 놓고 신구 세력간의 생존을 건 투쟁의 서막이 올라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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