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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했던 계파 갈등 수면 위로...쇄신 대신 진흙탕 빠진 국민의힘

  • 28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국민의힘 경북도당에서 열린 핵심 당직자 간담회에서 당권주자인 나경원 후보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구시대 유물이 된 계파 정치를 단호히 거부하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한 팀이 되겠다.”

지난 4월 8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퇴임에 맞춰 초선 의원 42명은 이 같은 내용의 집단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들은 “우리 당이 잘해서 거둔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자만 말고 쇄신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뜻으로 받아들이고 승리의 기쁨은 묻어두겠다"고 다짐했다.

쇄신은 진행되는 모양새였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시작된 당권주자들의 논쟁은 과거와 달랐다. 네거티브 공격은 없었고 ‘묻지마 의혹’도 나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치명적 단점인 막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스포츠카, 화물트럭 등 비유를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표현하며 맞대응 하는 등 성숙한 언어술사들의 경쟁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를 두고 김기현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달 25일 "굉장히 좋지 않나. 매우 신선한 아이디어로 격돌하는 것 같다. 아주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이준석 돌풍 이어지자 ‘계파라는 유령’ 다시 등장
쇄신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초 이번 전당대회는 중진그룹과 신진세력간의 신구(新舊)대결 양상을 보였다. 초선도 아닌 원외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여론조사 1위에 오르는 등 당권 경쟁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중진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들고나온 카드는 계파 갈등이었다. 그동안 수면 아래 잠겨 있던 고질적인 ‘계파 갈등’이 결국 모습을 드러내며 ‘도로 새누리당’을 연상시키고 말았다.

당권 주자 중 계파 문제를 처음 거론한 인물은 나경원 전 의원이었다. 나 전 의원은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특정 계파 당대표가 뽑히면, 윤석열·안철수가 과연 오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김웅 의원을 사실상 겨냥한 것이다.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인 유승민 전 의원을 밀어주는 편파적인 당 대표를 선출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 전 의원은 "차기 당 대표는 어느 때보다 중립성, 공정성이 요구된다"며 "특정 주자를 두둔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당 대표라면 국민의힘은 모든 대권 주자에게 신뢰를 주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 밖에 있는 윤석열 (전) 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같은 분들이 선뜻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하려 할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이어 "저는 계파 없는 정치를 해왔고, 지금도 그 어떤 계파 논리나 세력과도 얽혀 있지 않다. 모든 대선주자에게 가장 중립적인 심판이 되어드릴 수 있다"며 "계파로부터 자유로운 당 대표, 그것이 정권교체 당 대표의 최고 스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이 전 최고위원은 즉각 반박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작심한 듯 다음 날 페이스북에 ‘심판’, ‘탐욕’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심경을 밝혔다. 그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캠프에 있으면서 언젠가는 심판하겠다고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며 “당의 후보가 선출된 뒤에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 밖의 사람들에게 줄 서서 부족함이 없던 우리 당의 후보를 흔들어댔던 사람들, 존경받지 못할 탐욕스러운 선배들의 모습이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저도 나경원 후보의 말씀에 공감한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구 친박계의 전폭지원을 받고 있는 나 후보가 대표가 되면 윤석열 총장이 상당히 주저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탐욕을 부려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나 전 의원을 직접 겨냥한 셈이다.

김웅 의원도 받아쳤다. 김 의원은 이날 “존재하지도 않는 계파를 꺼내 후배들을 공격하고서 용광로 정치가 가능하겠느냐”며 “계파 정치 주장은 이제 흉가에서 유령을 봤다는 주장과 같다. 두려움이 만든 허상”이라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이 갑자기 ‘계파’ 논쟁을 꺼내 당내 불협화음을 조장한 데에는 의도가 있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복권을 노리고 있는 친박계로서는 유승민계가 달갑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며 “유승민계가 집권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고조시켜 구 친박계를 결집시켰다”고 분석했다.

나경원·주호영 겨냥한 하태경 “난 오늘부터 이준석계”
주호영 전 원내대표도 나 전 의원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주 전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페이스북에 "지역 논란, 세대 논란에 이어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계파 논란 망령까지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고 일성을 날렸다. 그러면서 "계파정치의 피해자였던 유승민계가 전면에 나서 계파정치의 주역으로 복귀하고 있다"며 "이들의 그림자가 이번 전당대회 시작부터 아른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진기예로 인기를 얻는 어떤 후보는 공공연히 '유승민 대통령 만들기'가 자신의 정치적 꿈임을 고백하여 왔다"며 "당대표가 되면 공정한 경선 관리가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계파 싸움 양상이 과열되자 하태경 의원까지 나서 중진의원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하 의원은 지난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35살 청년 이준석 하나 이겨보겠다고 무덤 속에 파묻혔던 계파까지 끄집어내 모처럼 찾아온 축제 판을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사태의 본질은 단순하다. 이른바 ‘중진’들의 치졸한 낙인찍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준석이 ‘유승민계’라 대선을 말아먹는다고? 그러면 이참에 ‘이준석계’를 하나 만들면 되겠다.”며 “하태경은 오늘부터 이준석계를 하겠다”고 일갈했다.

문제는 주 전 원내대표도 친이(친이명박)계 지원을 받고 있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옛 친이계와 비박(비박근혜)계가 중심인 야권의 보수 단체 국민통합연대가 친이계 출신인 주 전 원내대표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문건이 나온 것이다. 이는 국민통합연대가 지난 25일 지역 조직에 ‘긴급 중앙임원 회의 결과’라는 문건을 보내면서 불거졌다. 문건에는 당 대표 후보로 주 전 원내대표를 지원하기로 했으니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자 국민통합연대 중앙집행위원장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해명에 나섰다. 그는 언론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나한테 결재도 받지 않은 공문이 내려갔다”며 “내가 지시한 바도 없는 결정을 취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 측도 해당 문건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주 전 원내대표측의 박종희 선대본부장은 성명을 내고 “사전에 논의한 바 없다”며 “계파정치라는 공격은 터무니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평론가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인 유승민계라는 계파를 언급해 당내 분열을 만들고 있다”며 “이 같은 당에 윤석열이 오고 싶겠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면 김종인을 모셔오겠다는 것도 이 같은 계파를 정리하겠다는 의도”라며 “계파 교통정리가 되어야 윤석열이 입당하기가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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