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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칼럼]강경파들은 정치를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보수정당 몰락' 교훈 망각한 민주당 강경파,
-끊임없이 분열·갈등 조장하기보다
-공존·합의 민주주의 위해 개선될 필요


  •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최고위원(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최고위원이 지난 5월 14일에 ‘역사왜곡 방지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남국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2명이 함께 참여한 이 법안의 골자는 3·1운동 등에 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일본제국주의를 찬양·고무하는 행위, 욱일기 등 이를 상징하는 군사기나 조형물을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의 문제점은 심각해 보인다. 지난 역사에 대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왜곡’이고 ‘찬양·고무’인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 입장이 다른 상대를 향해 ‘토착왜구’라는 낙인을 찍으며 “추미애 장관 교체를 입에 담는 이들이 바로 토착왜구 혹은 그들의 협력자”(최배근 교수)라는 궤변들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시대이다. 일본이나 친일파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정치적 반대편 사람들을 겨냥하여 토착왜구라고 공격하는 일들은 이제 일상화되어 있다. 거기에 이런 법까지 통과될 경우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토론은 불가능해지고, 역사에 대한 하나의 해석만이 강제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대한민국에 진짜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법은 십중팔구 역사해석에 대한 '국가보안법'이 되어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용도로 사용되기 쉽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지난 정권 시절 그렇게도 비판했던 ‘박근혜 국정교과서’의 문재인 버전을 만드는 격이다. 기본적으로 역사 해석의 문제는 공론의 장에서 연구와 토론에 맡길 일이지, 이렇게 법을 앞세워서 국가의 단일한 역사해석을 강요할 일이 아니다. 평소 입만 열면 ‘토착왜구 척결’을 부르짖어왔던 사람들은 반길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의 법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 최고위원은 인권변호사들이 모여 활동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처장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과거 그가 말했던 ‘민주사회’와, 오늘 그가 발의한 전체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법안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와 모순을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사진=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김 최고위원과 종종 짝을 이루어 언론에 등장하던 같은 당의 김남국 의원은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의 내용도 자못 심각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뉴스 포털 이용자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가 포털의 기사배열 기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의원은 “알고리즘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왜곡된 언론 지형을 형성할 수 있는 상황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결국 권력이 개입하는 기구를 만들어서 뉴스 포털을 손보겠다는 얘기가 된다.

이 법안 역시 민간이 영역에 맡겨야 할 뉴스 포털에 대한 권력의 개입을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어떤 인물들로 구성된 어떤 위원회에서 ‘공정한 알고리즘’의 기준을 만들어낼까 하는 것이 관건인데, 결국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뉴스 포털을 만들려는 시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구설수에 올랐던 윤영찬 민주당 의원의 “카카오 들어오라 하세요”를 법률로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포털의 알고리즘이 보다 투명화될 필요는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포털에 권력이 직접 개입하여 정권에게 유리한 기사의 비중을 높이는 방식을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권력이 민간 포털을 통제하도록 하겠다는 발상이 깔린 시대착오적인 법안인 것이다.

이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두 명의 김 의원은 ‘친문’(친문재인)의 스피커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에 앞장서 온 초선 의원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떤 시기에는 당 대표보다 이들의 목소리가 언론에 더 많이 전해져 ‘당대표급 초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는데, 진영의 지지자들의 응원 속에 민주당의 강경한 노선을 선도하는데 적지않은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 발의한 법안들도 그런 강성 지지자들의 요구를 담은 결과물이다. 역사 해석이든 포털 시장이든, 권력이 개입해서라도 자신들 뜻대로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실려있다. 문제는 그러한 구상이 다양한 의견들을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의 성격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지금은 4.7 재보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논란이 되는 법안들을 거리낌없이 내놓는 모습들을 보면 민심마저도 무서울 것이 없는 강경파 정치인들의 담대한 용기를 보는 것 같다.

대체 민주당은 4.7 선거 참패의 의미를 제대로 읽고는 있는 것일까. 지난해 4월에 치러진 21대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을 때 당시 이해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당시 선대위원장이었던 이낙연 전 대표도 “그때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었다. 열린우리당 실패의 악몽이 민주당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열린우리당 시절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랬던 것일까. 열린우리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단독 과반을 확보했다. 그러나 ‘4대 개혁입법’ 추진 과정에서 선명성만 내세운 강경파들로 인해 순식간에 추락했던 악몽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있으면서 한나라당과 협상을 했던 이부영 전 의원의 증언이다.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다수결로 관철할 것이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던 한나라당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비밀회동을 갖고 국가보안법 폐지 대신 독소조항을 대부분 삭제하기로 합의하고 신문법, 과거사법, 사교육법 등을 여당안대로 개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우던 유시민 의원, 천정배 원내대표 등 '국보법 폐지파’들은 개정에 반대하며 여야 합의를 뒤집었다. 당시 열린 의원총회에서 강경파 의원들은 여야 합의를 도출했던 이부영 의장을 배신자라고 비난했고, 천 원내대표는 여야 합의안을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 전 부의장은 "여야 협상 추진을 지지했던 3선 이상 중진의원들은 유시민 의원 등 국보법 폐지파 의원들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눌려 침묵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국보법 개정을 비롯한 4대 입법 개혁은 무산되고, 이때부터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몰락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여야 간의 타협과 합의의 정치에 의미를 두지 않는 강경파들이 원내 과반수 여당을 어떻게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는가를 보여준 생생한 장면이었다. 그 때의 트라우마 속에서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민주당이 그 실패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정치란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드는 마법의 속성이 있나 보다. 정치는 대체 왜 이렇게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일까.

굳이 17년 전의 일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지난 몇 년 동안 보수야당이 겪었던 재앙들은 민주당의 반면교사가 될 법하다. 민주당 보다 앞서 강경파들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 쪽이었다. 새누리당은 충성심 하나로 무장된 ‘친박’(친박근혜) 강경파들 때문에 자멸하고 결국 정권을 넘겨주었다.

‘박근혜 탄핵’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았던 자유한국당은 탄핵당한 정권의 2인자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당 대표로 선출하는 대담함을 과시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선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의 투톱은 국정대전환을 촉구하는 단식농성과 패스트트랙 저지 육탄투쟁 등 일련의 극한적 투쟁을 선도했다. 게다가 '문재인 하야’를 요구하는 아스팔트 보수단체들의 집회에 참석해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연대에 적극 나섰다. 어느덧 보수야당은 태극기부대와 함께하는 극우정당으로 인식되었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모습에 고무된 강경파 정치인들은 막말을 쏟아내다가 21대 총선에서 최악의 참패를 자초하고 말았다.

잇따른 선거 패배로 폭망한 보수야당은 강경파들에 대한 입단속과 함께 아스팔트 극우 보수세력과 선을 긋는 분리전략을 추구하여 4.7 재보선에서 비로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 같이 막말을 떠올리는 정치인들이 국민의힘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도 당에 대한 비호감도를 낮추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한 기조를 흔들림 없이 유지했던 데는 중도강화 노선을 선도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연전연패를 당했던 보수야당 세력은 이제야 어떻게 하면 지고, 어떻게 해야 이기는지를 알게 된 모습들이다.

  • 더불어민주당 초선모임(더민초) 의원들이 12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2차모임 결정사항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기막힌 것은 그런 광경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이번에는 자신들이 그런 길로 들어선 민주당의 모습이다. 자기가 직접 겪어보아야 비로소 깨닫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기도 하다. 21대 총선에서 역대급 압승을 거두었던 민주당이 불과 1년만에 선거에서 참패하는 처지가 된 것은 강경파가 주도한 ‘오만의 정치’에 대한 심판 때문이었다. 보수야당 몰락의 흑역사에 대한 기억은 망각됐다.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하여 공룡 여당이 된 민주당은 그 뒤로 수의 힘을 앞세운 정치를 계속했다. 국회 원구성에서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상임위원장직을 여당이 독식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임대차 3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 정치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쟁점법안들은 야당과의 협의조차 없이 단독처리하는 일방통행의 정치를 반복적으로 보여왔다.

정치는 사라지고 전투에서의 승패만이 남곤 했다. 그 결과가 민심의 이반으로 나타난 사실은 4.7 선거의 뼈아픈 교훈이었다. 보수야당의 극단과 막말에 등 돌렸던 민심은 이제는 오만한 여당을 향해 죽비를 내리쳤다. 어지간하면 정신이 번쩍 들 법도 하건만, 그래도 민주당의 강경파들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 당은 당장 개혁의 고삐를 당기고 당원과 국민께 약속한 것들을 지켜내야 할 것"(김용민)이라는 결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강경파들은 자신들만이 절대선이라는 집단사고에 갇혀버렸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는 집단 본능을 분석한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인간에게는 부족 본능이 있으며, 이는 단지 소속 본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배제 본능을 겸한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어느 집단이건 일단 속하고 나면 우리의 정체성은 희한하게도 그 집단에 단단하게 고착된다. 가령 개인적으로는 얻는 것이 없다고 해도 내가 속한 집단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맹렬하게 나서고 별다른 근거가 없는데도 외부인에게 징벌적인 위해를 가하려 한다. 또한 집단을 위해 희생하며 목숨을 걸기도 하고 남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집단사고는 단순하고 극단적인 결론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다. 집단의 동질성을 강화하는 가장 손쉬운 길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은 집단사고를 고취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래서 집단사고는 다양한 판단의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진영의 이익과 일치하는 하나의 판단만을 정답으로 간주한다.

민주당을 지배하는 집단사고는 다른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민주당 강경파들의 뒤에는 문자폭탄의 위력을 앞세운 강성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있다. 그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딴 소리’를 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문자폭탄을 투하한다. 4.7 선거 직후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을 입에 담았던 청년 의원들은 ‘초선 5적’이라는 문자폭탄 앞에서 하루만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미 21대 총선을 앞두고 금태섭 전 의원을 경선 탈락시킴으로써 응징의 위력을 과시한 바 있다. 경선 기간 동안 “당연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적극적인 의사 표시는 권장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김용민 의원은 강성 친문들의 지지에 힘입어 수석 최고위원이 되는 기염을 토한다. “문자폭탄을 보내는 2천∼3천명의 강성 지지층들에 70만 권리당원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다”는 조응천 의원의 발언은 문자폭탄을 옹호하는 ‘친문’ 정치인들의 엄호 속에서 이내 덮여져 버린다.

“선출직이라면 그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윤건영)
"기어이 당원을 외면하자 한다면 정당정치의 자격이 없다.”(이재정)
'문자폭탄'이라는 의사 표현과도 마주쳐야 된다.”(박주민)


정치에서 강경파들이 해악이 되는 것은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언제나 분열과 갈등의 늪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경파들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낸다. 과거 보수 정권 시절의 극우적 강경파들은 종북몰이를 하면서 자신들의 공안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았다. 이제는 거의 실체조차 사라진 종북세력의 존재를 과장하거나 꾸며내면서 자기 진영 지지자들을 동원하고 통치의 안정적 기반으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이러한 ‘적 만들기’는 문재인 정부의 강경파들에게서 어김없이 반복되고 강화된다. 그들도 끊임없이 ‘싸워야 할 적’을 만들어냈다. 적폐세력, 토착왜구, 검찰과 윤석열, 보수야당과 언론이 청산하고 개혁해야 할 국민의 적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다주택자와 임대주택사업자들, 대출을 받아 내집 마련을 하려는 사람들마저 집값 폭등의 주범으로 낙인 찍는다.

  • 더불어민주당 2030 초선의원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감싸기만 했던 민주당의 모습을 반성한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내놓자, SNS에는 이들의 연락처가 공개되기도 했다.
물론 시장의 통계를 분석하면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구임이 드러난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은 민주당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민간 임대주택 활성화가 집값 상승세와 무관하며 오히려 전·월세 가격 안정에 기여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분석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책임을 떠넘겨야 할 ‘적’이다.

언제나 ‘적’을 만들어 진영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선동을 하는 것이 강경파 정치인들의 익숙한 정치적 기술이다. 얀 베르너 뮐러 프린스턴대 교수는 집권한 포퓰리스트들의 그러한 통치방식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집권한 포퓰리스트는 일종의 종말론적 대립 상태를 꾸며내 국민을 계속 분열하고 동요시킨다. 이들은 정치 갈등에 최대한 도덕적 수사법을 활용한다(예컨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은 유엔(UN) 총회 연단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을 악마로 지칭했다). 포퓰리스트에게 적으로 삼을 대상은 동나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 적은 언제나 국민 전체의 적이다…포퓰리스트에게 ‘위기’란 객관적인 시국 상황이 아니라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이들은 하나의 상황을 존재론적 위협이라 부르며 열심히 위기 상황으로 규정한다. 그와 같은 위기가 포퓰리스트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甄? 달리 표현하면 ‘위기’는 일종의 퍼포먼스이며, 정치는 지속적인 계엄 상태로 묘사된다.” (얀 베르너 뮐러,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강경파들은 공존을 거부한다. 우리만이 ‘선’이고 상대는 ‘악’이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를 제압하여 굴복시켜야 한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마이클 린치 코네티컷대 교수의 지적은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과 같다.

“불안과 결합한 우월감은 수차례에 걸쳐 혼합되고 마음을 뒤흔드는 서사로 강화되어 인종주의와 적개심을 양산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 파벌이 진리와 선을 동시에 거머쥐고 있다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자기 파벌의 입장이 틀릴 리가 없다는, 이런 사실들이 정책과 정치적 실천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좀 더 일반적인 사고를 부추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파벌적인 오만함을 부추긴다.” (마이클 린치,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

그러니 그들이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며 언제나 투쟁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며 살았다고 하던 사람들이 정작 정치를 부재하도록 만드는 장본인이 된 현실은 무척 그로테스크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공존의 정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정치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정치의 약속』에서 “정치는 인간의 복수성에 기초한다. 정치학은 서로 다른 인간들의 공존과 연합을 다룬다”고 말했다. 신은 단수의 인간을 창조했지만, 지상에는 복수의 인간들이 만들어졌으니, 사람들은 정치적 삶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소통하고 공존하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아렌트가 해석하기에 플라톤은 다양한 의견을 경멸하고 절대적 척도를 요구했다. 그래서 아렌트는 소크라테스를 소환함으로써 서양 역사에서 잊혀진 다원성의 전통을 복원하려 했다.

아렌트가 쓴 『인간의 조건』은 그러한 인간의 다원성에 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그런 아렌트에게 민주주의는 다양성에서 출발해 다양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생각을 갖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렌트가 말한 공동체의 정치적 삶이었다. 그러니 자기와 다른 의견을 배척하고 함께 살아갈 의사가 없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오늘 여든 야든, 상대를 공존과 타협의 관계로 인정하지 않고 박멸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에서 강경파가 득세하면 결국에는 권력이 몰락하더라는 것은 우리 정치사의 법칙과도 같은 경험이다. “부산, 마산 시민 1~2백만 명쯤 죽이는 것 별 것 아닙니다”라고 했던 차지철 경호실장이 박정희 정권의 실세로 군림했을 때 결국 박정희의 죽음이 발생했고 정권이 붕괴됐다.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직선제 요구를 거부하고 ‘호헌’을 선언하면서 6월 항쟁의 불을 붙여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김영삼 정권은 1996년 12월 26일 아침에 신한국당 의원들만 국회에 모여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일이 계기가 되어 몰락하기 시작했다.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경한 정치는 결국 자신들의 권력이 몰락하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곤 했던 것이 역사의 경험들이다. 독재정권 시절의 아득한 얘기만은 아니다.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신념에만 갇힌 강경파들의 정치 또한 권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멸의 길을 자초한다. 그런데도 권력이 위기에 처할수록 강경파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욱 커지고 과격해진다. 물러서면 죽는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4.7 재보선에서 민심 이반을 확인한 민주당의 풍경이 그러하다. 충격적인 참패 앞에서 잠시 숨죽였던 ‘친문’ 강경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중단 없는 개혁’을 외친다. 검찰개혁은 대체 언제나 끝이 나는 건지, 아직도 검찰개혁을 해야 한단다. 언론개혁을 해야 한다면서 언론에 대한 권력의 개입을 제도화하려 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파의 미래를 위한 것들이다.

5년 짜리 유한한 정권이 무한히 정권을 잡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집권세력이 처한 상황은 명확하다. 강경파들이 물러서면 살 것이고, 강경파들이 나서면 죽을 것이다. 세상은 다 아는데 그들만 모르는 사실이다. 극단의 정념에 갇힌 정치가 아니라 합리와 이성이 인도하는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강경파들이 거세되어야 한다. 결국은 우리 시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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