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가 국회의원 선거나 지자체 선거와 다른 점은 불법선거에 의한 당선을 법으로 바로잡을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불법선거로 당선된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은 법의 판결에 의해 당선이 무효화됨으로써 사후적으로나마 불법이 응징되고 바로잡힐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에서의 불법행위는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혁명과 같은 초법적인 방법에 의해서 응징되거나 바로잡힌다. 이미 임기가 진행돼 면책특권을 갖는 현직의 대통령을 법으로 응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가능하다 해도 엄청난 국정의 혼란과 파행을 수반한다. 대한민국은 일찍이 1960년 3o15 부정선거를 그해 4o19혁명으로 부정한 역사를 경험했다.

일단 당선만 되면 결과를 뒤집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한국의 대통령선거를 혼탁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은 여기에서도 생생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1997년 15대 대선과 2001년 16대 대선 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이른바 ‘병풍사건’이다.

김대업이라는 사기범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들이 불법하게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내용의 허위 사실을 퍼뜨리자, 야당 진영에선 의혹을 최대한 증폭시키고 다음 선거에까지 재탕을 해서 써먹었다.

김대업의 주장은 선거 후 재판을 통해 거짓이었음이 드러나, 명예훼손과 무고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으나 선거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에 앞서 1987년 대선에선 북한이 저지른 대한항공 858편기 폭파테러가 발단이 된 ‘북풍’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것은 흑색선전이 아닌 국민의 대북경각심을 일깨운 실체가 명확한 사건이었으나 13대 대선 선거 전날인 1987년 12월15일 북한의 공작원인 범인 김현희를 김포공항으로 압송해옴으로써 당시 여당인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로 여야 모두 ‘북풍’을 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대체로 기대했던 효과 대신에 역풍을 맞았다. 특히 북측을 상대로 휴전선에서 긴장을 조성해달라고 사주했다는 ‘총풍’사건은 역풍을 초래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서울방문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북풍’의 일종이다. 남북관계, 한중관계의 개선을 과시해 선거에 이용하려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순풍이 될지 역풍이 될지는 불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우리 사회에 ‘김대업 항체’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시대의 부작용으로 수많은 정보 중에서 입맛에 맞는 정보만 편식하는 확증편향을 지적하지만 신속한 사실 확인을 통해서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않게 하는 순기능도 커졌다.

4o7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거짓말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제기된 ‘생태탕’이 그런 순기능의 한 예다. 의혹을 제기한 생태탕집 주인이 16년 전에 생태탕 집에 왔을 때 오 후보의 구두와 하얀 면바지 차림새까지 기억해냈으나 그것은 구체적 증거가 되기는커녕 거짓말 의심만 더했을 뿐이었다. ‘김대업 면역’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3월의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1, 2위 후보들에 관한 정치공작성 흑색선전이 횡행하고 있다. 야권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해선 부인과 장모에 관한 X파일이, 여권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관련해선 이 지사와 불륜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여배우 김부선 X파일이 있다.

괴문서 형태로 시중에 나돌던 윤석열 X파일의 진원지는 윤 전 총장 장모의 동업자였다가 사이가 틀어져 17년 동안 소송을 벌이고 있는 정 모 씨로 드러났다. 정 씨의 주장을 살펴보니 일부 사실관계가 확인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악의와 억측으로 제기한 의혹으로 여겨졌다.

지난 2일 장모가 유죄판결을 받은 요양병원 사건은 정 씨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로서 실체가 있지만 나머지는 근거 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가까웠다. 부인 김건희 씨의 강남 유흥업소 호스티스 설과, 유부남 검사와의 동거설은 요양병원사건과 함께 정 씨가 제기한 핵심 의혹이지만 김 씨는 두 가지 설에 대해 “기가 막히는 얘기”라고 부인했다.

정 씨가 제기한 김건희 씨 모녀에 대한 의혹은 대부분 윤 전 총장과 결혼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고, 이미 재판과 수사를 통해서 무죄나 무혐의 처리 된 사건들이다. 더욱이 2019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국회인사 청문회에서 야당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여당 측은 “문제가 안 된다”고 엄호하기에 바빴다. 장모 유죄판결에 대해 여당 측은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는데 먼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요양병원 사건 재수사 자체도 윤 전 총장이 문재인 정부에 반기를 들자 지난해 친정부 인사들이 제기한 고소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는 명백하다. 다만 2013년 장모의 무혐의 처분은 윤 전 총장의 결혼 뒤의 일이라, ‘검사 사위’의 영향력의 작용 여부를 살펴볼 여지는 있다.

이재명 X파일과 관련, 김부선 씨는 이 지사 신체의 은밀한 부분의 점에 대한 재검사를 법원에 신청함으로써 의혹의 재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때 크게 논란이 됐던 이 사건은 이 지사가 그해 스스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점이 없음을 확인받았다.

최근 민주당 후보자 토론에서 의혹이 다시 제기되자 이 지사는 “바지를 다시 내릴까요”라고 응수한 것이 여론에 회자돼 ‘토론은 없고 바지만 남았다’는 평을 낳았다. 불륜설의 폭발성이 여전함을 입증한 셈이다. 이를 극복해 경기도지사 선거를 통과한 이 지사가 대선도 통과할 수 있을지 관심사다.

윤 전 총장은 장모의 유죄판결에 대해 법의 집행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고 했다. 공직 후보에 대한 검증은 무제한적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장모 사건에서 영향력 행사 여부는 물론 부인의 호스티스 설까지도 사실이라면 당당히 밝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장인의 6o25 부역설에 대해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고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훌륭한 반면교사다. 윤 후보는 직업을 귀천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시대착오를 오히려 질타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의 X파일 대응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책임 있는 언론조차 근거 없는 소문을 각색해 사실인양 보도하는 태도는 지양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갈수록 기승을 부릴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유권자들의 식별안이다. 달콤한 말에 독이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 임종건 칼럼니스트 프로필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에서 편집국 국차장, 논설위원, 사장을 지내는 등 36년 동안 언론에 몸담았다. 사실과 경험에 입각해 글을 쓰겠다는 다짐에서 ‘드라이 펜(Dry Pen)’을 필명으로 삼았다. 한국일보 시절에 주간한국 기자와 부장을 지낸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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