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 범위를 놓고 여야정의 대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1차 재난지원금을 두고 여야정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논란을 매듭지은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 가이드라인은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되 소득 상위계층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자는 내용이었다.

이후 1년 만에 재난지원금 논란은 또다시 불거졌다. 더불어민주당이 당정 합의를 깬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기획재정부와 당정협의를 열고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80%로 한정하기로 합의했다. 민주당의 ‘전 국민 지급안’과 정부의 ‘소득하위 70% 지급안’을 절충한 결과였다.

민주당, ‘포퓰리즘’ 비난에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주장
당정합의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전 국민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나왔다. 소득 하위 80% 지급안에 따를 경우 다수 국민의 소외와 박탈감을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1인 가구와 2030 신혼 부부 등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정하고 당 지도부와 협의하면 의원들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토론하고 숙의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의회주의"라며 당정합의를 깰 가능성을 열어놨다.

민주당은 결국 지난 13일 전 국민 대상 재난지원금 지급안을 당론으로 정했다. 이날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소득하위 80%에게 지급하는 방안의 선별기준이 대단히 모호하고 형평성 문제와 논란이 제기되고 있고, 특히 청년층이 많은데 1인 가구의 소득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결정했다"면서 "4단계 사회적 거리두기에 진입한 만큼 경제적 침체를 감안할 때 내수 진작 차원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서 포퓰리즘 공세를 단행한다는 비난도 일었다. 민주당 소속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달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에 대해 “정치논리에 매몰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정 전 총리는 “집단면역 전까지는 손실보상이든 재난지원이든 힘겨운 피해계층에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도 내홍… 이준석, 여야 합의 100분만에 번복
국민의힘은 이른바 ‘이준석 리스크’로 시끄러운 분위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2일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합의했지만 당내 반발로 100분만에 이를 번복했다. 이 같은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에서 원내대표단과의 교감이 없었다는 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 대표 리더십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며 비판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그간 전국민 대상 지원금을 지급할게 아니라 자영업자의 생존 자금으로 지급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런 제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여당이 더 좋아하는 의도대로 동의해준 것이다. 송 대표가 국민의힘을 비웃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이 대표 때리기에 한몫했다. 안 대표는 "여당의 포퓰리즘 매표 행위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라며 "이번 2차 추경 예산에서 소득하위 80% 재난지원금과 신용카드 캐시백 등을 전형적인 선심성 매표예산이라고 비판했던 그동안의 제1야당 입장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일침을 가했다.

한 발 물러선 김부겸, 홍남기…이주열 한은총재는 “재원 한정”
김부겸 국무총리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다. 김 총리는 지난 15일 국회 예결위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결정해 오면 정부로서는 (하위 80% 지급안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재검토) 과정에서 왜 재정 당국이 이렇게 고민했는지, 또 국민이 원하는 것은 모두 똑같이 나눠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두텁게 지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위 80% 지급안을 고수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 13일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분들(맞벌이 가구나 1인 가구)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탄력적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일각의 지적을 수용하기도 했다.

또 홍 부총리는 "정부로선 여러가지 내용들을 종합 고민해서 국민께 80%까지 지원금을 드리고 이에 병행해 소상공인에 대해선 가능한 한 두텁고 넓게 피해보상 드리고자 이번 추경에 3조9000억원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이 총재는 지난 15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적으로 재원이 한정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재정의 효율성 측면에서 피해를 입은 계층을 중점 지원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계층이 있는 반면 오히려 부가 늘어난 계층도 병존한다”며 “코로나가 언제 종식될 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 재원이 얼마나 더 소요될 지 가늠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청와대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민주당 당론 변경을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8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당정 간에 충분히 논의해 (선별지급안을) 합의한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은 이런저런 생각을 밝힐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당정 간 합의안에 충실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여야정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