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사라진 제3지대...과연 안철수의 시간은 다시 올까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관련 실무협상단 회의에서 권은희 국민의당 단장(왼쪽)과 성일종 국민의힘 단장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은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 최근 양당 관계자들이 합당을 놓고 내놓는 발언은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선을 넘나드는 감정적 발언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양당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당과의 합당이 지상과제가 아닌 것처럼 ‘들어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의 분위기가 엿보인다. 국민의당도 여차하면 합당 대신 안철수 대표의 독자 출마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내비치고 있다. 합당을 둘러싼 양당의 입장이 계속 평행선을 달리면서 접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서로 원하지 않는 합당?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연일 국민의당을 압박하면서 사실상 일방적 통보처럼 발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휴가 일정을 앞세워 ‘8월 버스 탑승론’을 제기하고 데드라인을 정했다. 자가격리 중인 안 대표와의 담판을 요구한데 이어 지난 3일 페이스북에서는 “(안 대표는) 만나는 것에 대해서 예스(Yes)냐 노(No)냐 답하시면 된다”고 고삐를 죄고 나섰다. 이 대표는 다음 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꼭 요란한 승객들을 태우고 (버스가) 가야 하느냐”며 “합당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어보인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격앙된 분위기다.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이 사무총장은 지난 3일 같은 라디오 방송에서 ‘갑질 사고’ ‘기고만장’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이 대표는 우리 당원들과 지지자들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그런 말들을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당세로 봐서 우리당이 돈과 조직이 없지 무슨 가오(자존심이나 체면을 의미하는 일본어)까지 없는 정당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발끈하기는 안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안 대표는 지난 4일 오후 중앙일보 유튜브 '강찬호의 투머치토커' 생방송에 출연해 “‘예스냐 노냐’ 이런 말을 누가 한 것 같다”며 “그 말이 원래 2차대전 때 일본이 싱가포르를 침략했을 때 야마시타 중장이 ‘예스까 노까’, ‘항복할래 말래’ 역사적으로는 그런 뜻”이라고 불쾌감을 표출했다. 에둘러 이 대표의 고압적 태도를 비난한 것이다.

양당의 합당은 지금까지 분위기로 보면 양당 모두 간절한 목표가 아닌 것처럼 비쳐진다. 국민의힘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당으로 한결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반면 안 대표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답답해졌다.

여기에 안 대표의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다. 우선 자신의 강점이었던 중도층을 기반으로 한 ‘제3지대’ 구상이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윤석열-최재형’ 카드를 앞세워 제3지대 영역을 공고하게 확장하려던 계획 자체가 엉클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대선 경험이 있는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지율도 낮은 상태에서 당장 합당을 할 경우 국민의힘 내부 경선에서 또 하나의 예비후보로 전락해 존재감이 미미해질 수 있다”며 “경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도 사실은 없다는 점이 고민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만약 안 대표가 재보궐선거에서 합당을 결단했으면 지금 서울시장 자리를 꿰차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합당 시기를 이미 실기했다는 해석이다.

국민의당, ‘플랜B’로 안철수 독자 출마론 흘려

또 다른 딜레마는 국민의힘과의 합당이 당장 어려워질 경우 ‘플랜B’ 문제이다. 플랜B는 사실상 안 대표의 독자출마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국민의당 대선 주자로 나서 국민의힘 최종 후보와 야권통합 단일화를 놓고 겨루는 방법이다.

합당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감정의 골이 깊어진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공공연하게 안 대표의 출마론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3일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지금으로선 안 대표가 대권후보로 출마해서 (합당을 통한 열린 플랫폼으로 대체하려던) 그런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권의 외연 확장을 위해 안철수의 역할이 다시 필요한 것 아니냐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사무총장도 이날 CBS 라디오에서 안 대표의 대선 출마와 관련해 “많은 분들이 다 대선에 나가야 된다고 생각을 한다”며 “전체 야권 대통합 과정에서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의견을 다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안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당헌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민의당 당헌 제75조에서는 대선 후보 출마자의 경우 대선 1년 전까지 모든 선출직 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헌 개정을 하지 않으면 안 대표의 대선 출마는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일단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중앙일보의 유튜브 생방송에서 안 대표는 독자 출마론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당에서 의논해본 적도 없다”며 여러 가능성을 놓고 의견을 낸 것으로 이해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달 21일 대구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하지만 국민의당 내부에서 국민의힘과 이 대표에 대한 반발이 거세질 경우 당원들의 요구에 의한 독자 출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4.7 재보궐 선거 전에도 안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하지 않고 대선에 임할 것임을 밝혔지만 결국 말을 뒤집고 출마를 감행한 바 있다. 상황이 바뀌었다는 점을 명분으로 삼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말 한 인터뷰에서 “서울시장이 바꿀 수 있는 것과 대통령이 바꿀 수 있는 것은 범위가 다르다”며 “정권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도 두 달 후 안 대표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상황 변화’는 국민의당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도 유효한 카드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측에서 계속 고압적 태도를 유지해 정상적인 합당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독자 출마를 감행해도 안 대표의 딜레마는 여전히 남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안 대표의 지지율은 2%대에 머물고 있다. 물론 여야 후보가 ‘1 대 1’ 구도로 가는 대선의 경우 2%의 지지율은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캐스팅 보트 역할이 가능하다. 그 점이 국민의힘과 계속 샅바 싸움을 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지율이 반등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고민이다. 독자 출마를 한 후 국민의힘측과 야권후보 단일화를 할 때 과연 승리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느냐는 당 안팎의 의구심이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에서 어떤 경우이든 승부를 내지 못할 경우 안 대표의 대권 ‘삼수’는 요원한 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또 다른 딜레마이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