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출된 378명 전원에 거주(F-2)비자 발급 계획…예멘 때는 2명만 받아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지난 26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우리 공군의 KC-330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과거 한국을 도운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우리 정부의 도움으로 탈레반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라는 신분을 부여하고 한국사회 정착을 도울 계획이다. 과거 한국으로 피난 온 외국인들이 까다로운 제도에 가로막혀 난민임을 인정 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송환돼야 했던 폐단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조처로 해석된다.

지난 26일 아프가니스탄인 378명이 한국군 수송기 KC-330을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프간 소재 한국 시설에서 일한 현지 협력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구조된 것이다. 이들은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과 KOICA(한국국제협력단), 바그람 한국병원,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 등 한국 관련시설에서 의사와 간호사, 정보기술(IT) 전문가, 통역 등으로 일한 전문인력인 것으로 확인됐다.

구출된 아프간인들이 한국 사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과제로 떠올랐다. 법무부는 이들에게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의 신분을 부여하고 향후 거주(F-2) 비자를 발급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거나 공익 증진에 이바지한 외국인에게 F-2 비자를 부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안도 이날 함께 입법예고했다.

정부의 신속한 조치는 외신들로부터도 주목을 받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가동됐지만 일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점에 대해 계속 비판을 하는 상황이다.

과거 난민 입국 사례에서 뭐가 변했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인천공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출입국 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F-2 자격을 취득하도록 해, 대한민국에 잘 정착하도록 하는 것이 이번 아프간인들을 받아들이는 우리 정부의 자세다”라고 밝혔다.

F-2 비자는 외국인이 국제법상의 난민으로 인정될 경우 주어졌던 체류 자격이다. 이 같은 비자의 성격을 감안하면 일단 이번에 구조된 아프간인 378명은 난민 이상의 대우를 보장 받을 것으로 해석된다. F-2 비자를 취득하면 일단 5년은 체류할 수 있도록 기간이 보장되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무제한 연장도 가능하다. 외국인은 F-2 비자의 체류기간이 만료된 이후부터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단순노무직을 포함한 다양한 업종에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고 취업활동 개시 등 신고 절차도 면제된다.

과거 집단 난민 신청 사례에 비하면 이번 아프간 사태는 비교적 안정적인 체류 여건이 조속히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사태 때는 예멘인 412명에게 ‘인도적 체류허가’를 적용하고 ‘기타(G1)비자’를 제공했다.

인도적 체류허가란 난민 신분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강제 추방할 경우 생명과 신체에 위협을 받을 위험이 있으므로 임시로 체류를 허용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G1 비자는 체류 기간이 1년(연장 가능)뿐이며 건설업이나 개인 과외 등 업종에 취업할 수 없어 F-2 비자에 비하면 제약이 많다.

G1비자의 이런 한계 때문에 다수 난민 신청자들은 한국에 정착하지 못했다. 예멘 난민 사태 당시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찾아온 예멘인 500여명 중 대다수는 결국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심사 끝에 난민으로 인정받은 건 고작 2명뿐이었다. 직업이 언론인인 이들은 이슬람 자이드 시아파 무장단체인 후티 반군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납치·살해 협박을 받는 등 박해 우려가 크다고 인정돼 난민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난민거부법’ 쓴소리 듣는 한국 난민 제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2019 통계연보'에 따르면 난민 집계를 시작한 1994년부터 2019년까지 25년 동안 누적 난민 신청 건수는 6만4357건이다. 2013년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한 후 난민 신청자가 급증했다. 난민 신청자 수는 난민법 시행 첫해 1574명에서 제주 예멘 난민사태가 일어났던 2018년 1만6173명까지 10배 가량 늘었다.

하지만 지금껏 난민으로 인정받은 외국인은 1022명에 불과하다.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경우도 2217명이 전부다. 전체 난민 신청 건 중 난민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1.5%뿐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난민 인정률이 30.9%(2017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이처럼 난민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보니 난민법이 실질적으로 ‘난민 거부법’에 가깝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난민인권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6월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정부의 난민 정책으로 어렵게 도착한 난민들이 강제로 송환되거나 장기간 구금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가고 있다"며 "난민 지위를 얻은 극소수도 정부의 무관심과 사회 차별, 빈곤 등을 이기지 못하고 사회 안전망의 바깥에 방치됐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도 난관

난민을 배척하는 사회 여론 또한 이번 아프간 난민 사태에서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손꼽힌다. 지난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난민 받지 말아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나흘만에 2만5000건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과거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때도 청와대 국민청원서 난민법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글이 71만5000여명의 동의를 얻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슬람, 아랍 문화권 난민에 대한 국민적 거부 반응이 온라인 환경에서 3년 만에 되풀이되는 모양새다.

한국 사회는 아직 이슬람 문화가 낯선데다 미디어는 탈레반 등 극단주의 이슬람 교파의 극단적 테러행위를 주로 부각시켜왔다. 그 여파로 이슬람 국가인 아프간의 난민에 대해서도 국민의 거부감을 산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재한 아프간인들은 자신들은 탈레반이 아니며 한국인들이 아프간 사태와 피해 국민들에 대한 온정적 여론을 가지길 호소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 거주 아프가니스탄 국민 34명은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가족들의 구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미군 군사기지를 건설하던 한국 기업에 종사했거나, 한국 NGO에 협력한 본인이자 그 가족이고 탈레반에 의해 박해당하는 하자라 종족이다”라며 "이제 돌아갈 나라가 없어진 재한 아프간 국민들의 난민 신청도 너그러이 받아준다면 한국 사회에 보답하는 아름다운 협력자가 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