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싸움 치닫는 국민의힘 경선…윤석열 버럭 “당 해체”

국민의힘 원희룡(왼쪽부터), 유승민, 윤석열, 홍준표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 11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KBS 광주방송총국에서 호남권 합동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2차 컷오프를 거쳐 후보 4명으로 압축된 국민의힘 경선 국면이 상대방 깎아 내리기식 출혈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무속인’ ‘항문침’ 등 자극적 프레임까지 부각되면서 토론을 통해 국가비전을 펼치기보다는 추문 폭로에 치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급기야 발끈한 윤 전 총장이 이런 식이면 국민의힘을 해체해야 한다는 과격 발언까지 내놓아 당을 뒤집어 놓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이처럼 후보들 간의 감정적 내홍이 점점 심해질 경우 더불어민주당 경선처럼 갈등과 불복심리를 유발하는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홍준표 “오만방자”, 유승민 “눈에 뵈는 게 없다” 맹공
윤 전 총장은 최근 ‘당 해체’ 발언으로 연일 경쟁 후보의 맹공을 받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13일 국민의힘 제주선대위 임명식에서 “정치판에 들어오니 여당이 따로 없고 야당이 따로 없다”며 경선 경쟁 후보들에 불만을 드러낸 뒤 ”이런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것이 맞다”며 언성을 높였다.
국민의힘 경선이 2차 컷오프 후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의 4자 경쟁 구도에 돌입하면서 윤 전 총장을 향한 나머지 후보들의 공격이 한층 집요해진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쟁 후보들은 지지 않고 일제히 페이스북에 윤 후보를 질타하는 글을 올리며 강경하게 맞섰다. 홍 의원은 "참 오만방자하고 뻔뻔하고 건방지기 짝이 없다", 유 전 의원은 “문재인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한 덕분에 벼락출세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다”며 거친 발언을 마다하지 않고 질타했다.
윤 전 총장의 ‘러브콜’을 받은 원 전 제주도지사 역시 “검증하다 보면 후보 개인은 매우 불편하거나 힘들 수도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게 낫다'는 발언은 분명한 실언이고 당원 모욕이다”라며 비판적 입장을 내놓았다.
윤 전 총장은 최근 ‘무속에 빠진 것 아니냐’는 프레임에 새롭게 휘말리며 당 안팎에서 유독 시달리고 있다. 3∼5차 TV 토론회에서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쓴 모습이 포착된 게 발단이 됐다. 관련 정보를 입수한 유 전 의원이 그에게 ‘천공스승’, ‘지장스님’, ‘이병환’ ‘노병한’ 등 무속인을 직접 거론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일조했던 미신 의존 프레임을 윤 전 총장에게 덧씌웠다.
여기에 항문에 침구를 넣어 환자의 척추를 찌르는 시술인 일명 ‘항문침’까지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윤 전 총장에 모욕적 프레임이 엉겨 붙었다. 유 전 의원이 6차 TV토론에서 윤 후보에게 “이상한 특정 부위에 침을 놓는다는 이병환이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라고 거듭 캐물은 것이다. 유 전 의원 캠프의 이수희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윤 후보는 무엇을 감추려고 자칭 항문침 전문 이병환을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나”라며 가세했다.
윤 전 총장도 울화를 참을 수 없었는지 토론회 이후 유 전 의원과 입씨름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 캠프의 김병민 대변인도 논평으로 “방송 토론회를 역술인 퀴즈대회로 만든 것도 모자라 거짓을 유포하며 윤 후보 흠집 내기를 하는 모습이 치졸하기 짝이 없다”고 반박했다.
윤석열 징계 취소 소송 패소로 정치적 명분도 흔들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최종 결정되는 11월 5일을 불과 20여일 앞둔 시점이지만 윤 전 총장은 다른 후보의 집중적인 견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심한 듯 내놓은 ‘당 해체’ 발언은 그간 전방위적 공격에 난타당하고 있는데 대해 쌓였던 불만을 한꺼번에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 실상 같은 당인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은 언론이나 민주당 등이 제기하는 의혹을 그대로 토론회로 옮기고 있는 실정이다.
윤 전 총장의 거듭된 실언이나 경솔한 발언도 스스로 빌미를 제공했다. 정책 관련 공약을 내놓았지만 잇따른 ‘설화’에 묻혀 조명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 ‘루리웹’ 등 웹사이트에서 특정 게시물을 보고 민주당원이 국민의힘에 위장 가입했다는 주장을 폈고, 민주당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서 고의로 홍 의원을 찍는다고도 했다.
하지만 당내 입지를 확보하지 못한 그가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당 안팎으로부터 냉소적 반응만 돌아왔다. 이번 당 해체 주장 역시 잡음만 키웠을 뿐 당 지도부의 변화를 이끌어내진 못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후보 입장이 (상대 후보) 공격에 반응하는 것이었다면, 그 화살을 당 해체로 돌리는 것은 개연성이 좀 떨어지기에 의아하다"고 말하며 일축했다.
여기에 윤 전 총장 자신을 둘러싼 논란들도 입지를 갈수록 좁히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윤 전 총장이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은 것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윤 전 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면서 면직 이상의 징계가 가능한 만큼 정직 2개월이 오히려 가벼운 처벌이라고 설명했다. 부당한 징계를 당했다는 윤 전 총장의 정치적 명분이 심각하게 훼손된 결과가 나온 셈이다.
더군다나 손준성 검사를 통한 고발사주 논란,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의 누나와 부친이 연루된 부동산 다운계약 의혹 등 굵직굵직한 의혹도 어느 하나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윤 전 총장이 경선 경쟁자들의 견제에 좁아진 당내 입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실상 국민의힘에서 겉돌고 있는 모양새다.
한편 토론의 화두가 윤 전 총장의 사생활로 집중되면서 경선 전체의 품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여러가지 의혹과 논란에 이슈가 집중되면서 정작 다른 후보들도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비전을 보여주거나 민주당을 향한 공격에는 날을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 전 지사는 지난 1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토론이 국민들의 어려운 삶과 고단한 국민들의 눈물을 공감할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의 토론이 돼야 하는데 그런 데는 진지한 관심이 없고 입으로 말싸움하고 말꼬리 잡고 있다”며 “그러다 점점 밑으로 내려가 ‘손바닥에 뭘 썼다’느니 ‘항문에다가 침을 맞았니’ 하며 점점 배꼽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가슴과 머리로 토론 수준이 올라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