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뉴스가 있는 저녁'에 출연한 천공스승. (사진=YTN 화면캡처)
정재계 수장 찾는 ‘일류 무속인’ 따로 있다
 
정치권 기웃거리는 경우는 대다수 허당…’진짜’는 단골만 상대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가대사는 가장 합리적인 영역이어야 할 것 같지만 틈틈이 무속인이 개입해 논란이 불거진다. 마치 무학대사가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조선왕조 도읍을 결정한 것처럼 “도사님을 스승으로 모신다” “무당의 말을 듣고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식의 알 수 없는 샤머니즘은 21세기에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대선 때마다 풍수지리, 역술, 미신 등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기자 출신 역술 전문가이자 전국의 무속인들을 연결한 온라인 플랫폼 ‘용하다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강용운 벨킷 대표에게 신비하고 알쏭달쏭한 한국 무속의 세계에 대해 물어봤다.
 
3번 낙선한 DJ, 부모 묘 이장 후 대권 성공으로 관심
 
김대중 전 대통령이 3번 낙선 후 부모 묘소를 이장하고 4번째에 당선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0년 당사를 여의도로 옮기면서 기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무속인의 조언에 따라 종로 관훈동 구 당사에 자기 사진을 남겼다. 풍수지리나 무속신앙과 관련된 일화는 특히 정치권에서 선거 때마다 끊이지 않는다. 지금도 여야,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무당을 만나고 굿을 할 정도로 정계의 무속신앙은 만연하다.
 
과학적으로 사고 하는 진보 정당이나 서울대 나온 엘리트 정치인도 선거 등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면 무당에 의존하게 된다. 지난 19대 대선 때 모 후보의 지지자들은 거금 20억 원을 들여 굿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물론 후보와는 관계없이 지지자들이 독자적으로 했다는 식으로 둘러대지만 지금도 무속계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다.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고위공무원들도 심심치 않게 무당을 찾는 경우가 목격되기도 했다.
 
윤석열의 손바닥 ‘王’은 명백한 ‘가짜’
 
지난 1일 MBN 주최로 열린 5차 TV토론회에서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홍준표 의원과의 1대1 주도권 토론에서 손을 흔드는 제스쳐를 하면서 손바닥에 적힌 '왕(王)'자가 선명하게 포착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TV 토론회에서 손바닥에 임금을 의미하는 ‘王’(왕)자를 그린 모습이 포착돼 ‘미신에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꼬투리가 잡혔다. 하지만 손바닥에 ‘王’을 쓰는 것은 무속의 세계에서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이다. 몸에 ‘王’자를 그릴 땐 ‘내가 잘났다’거나 ‘경쟁에서 이겨 달라’는 의미가 아닌, 보통 부정 타는 것을 막아달라는 의미로 쓰인다.
 
부적을 쓰는 건 주로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악한 존재를 물리쳐 주십시오’라는 바람이 담긴 것이다. 가령 상가를 갈 때 발바닥에 ‘王’자를 쓰고 가는 식으로 죽은 사람의 원기나 악귀가 달라붙는 것을 막는 ‘비방(秘方·비밀리에 하는 방법)술’이 있다. 하지만 토론에서 경쟁 후보를 상대로 경선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 ‘王’자를 그렸다면 전통적 무속신앙의 체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산 자를 해하려는 비방은 무속 세계에서 금지된 것이다.
 
강 대표는 이에 대해 “윤 전 총장에게 그런 비법을 제안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이비라고 봐야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윤 전 총장과 유승민 전 의원의 미신 공방전에 등장한 천공스승에 대한 견해도 내놓았다. 그러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무당과 점쟁이, 법사의 차이점에 관한 설명을 곁들였다.
 
무당과 점쟁이의 차이는 굿의 여부다. 무당은 자기가 모시는 신령님을 대우해야 한다. 신령님을 찬양하는 재료의식이 바로 굿이다. 한국 무속세계는 점과 굿을 모두 할 수 있는 무당, 즉 여자들 중심이다. 남자들인 법사, 도사는 수염도 길게 기르고 얼핏 행색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굿하는 걸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무당보다 못하다.
 
대개 이들 부류는 스님이나 무당도 되지 못했으나 신기는 조금 있는 경우로, 무당이 굿할 때 장구 치고 약간의 점을 보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옛날 법사는 먹고 살기 어려운 파계승이 무당 굿판에서 빌붙어서 산 경우가 많았다. 잘 알려진 인물 중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최태민도 법사 출신으로 알려졌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무속인, 대부분 유명세 노려
 
강 대표는 “천공 같은 경우는 말하자면 중국의 법사와 한국 무당의 경계선에 있는 그런 사람으로 보인다. 천공은 굿을 안 하니 무당은 아니다”며 “그렇다고 중국의 도사들처럼 점을 잘 보는 것도 아니고, 요사스럽게 자기만의 ‘법’을 꾸며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정부가 무속을 미신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배척했지만, 점집과 도사는 남아 있다. 그래서 홍콩에서 건물을 지을 때 풍수를 봐달라고 중국의 도사를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도사, 법사는 선거 등 정치적 이슈 때마다 불나방처럼 끼어들어 이슈를 만들고 유명해지려는 역술인들이 대다수다. 사실 언론에 노출되길 좋아하고 자기 잘났다고 선전하는 사람들은 다 사이비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모 유튜브 채널은 설익은 무당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수천만 원을 내고 출연한다.
 
방송에서 영험한 척 떠벌린 후 고객들한테 안 해도 되는 굿을 막 시켜 돈을 뜯어내는 게 이들의 목적이다. ‘무병’(귀신들린 것)에 걸린 사람에게 ‘신굿’(내림굿)을 내리지 않으면 횡액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도 한다. 내 제자가 되라고 현혹하고 대가로 수억 원을 획책하는 악질 사기도 횡행한다.
 
전국 20만 명 무속인 중 ‘진짜’는 200여 명 추산
 
강 대표는 “우리나라에 돈을 받고 점을 봐주는 사람은 20만 명 정도 있다”며 “이 중에서도 실제로 신기가 있는 사람은 2만 명, 그 중에서도 영화에 나오는 무속인처럼 정말 영험하다고 평가를 받는 일류 무속인은 전국에 200여명뿐이다”라고 했다.
 
삼성, 현대 등 재벌가에서 대를 이어 다닌다고 하는 점집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진짜’들은 오히려 정치인들이 찾아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애초에 정치에 관심도 없고 자기를 알아주는 고객들과 평생 가는 관계를 중시한다. ‘일류’는 영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입이 무거워야 하는 게 이 때문이다. 부산에는 사주 분야의 5대 문파가 있는데 이들은 기자들이 와도 만나주지도 않을 정도로 외부 노출을 꺼린다.
 
그럼에도 알만한 사람들은 알음알음 일류 무속인이나 역술인을 찾는다. 과거 모 대기업의 A회장은 채용비리혐의로 검찰 출두하기 하루 전 무당을 만나 도움을 구했다. 무당은 “내일 기자들이 모인 포토라인에 서지 마라”고 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그 말을 들은 A회장은 포토라인에 서지 않기 위해 출두를 하지 않았고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 물론 정권이 바뀐 후 A회장은 결국 구속을 당하긴 했다.
 
스님, 목사님, 심지어 신부님도 무속인이나 역술인을 찾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무당들은 속으로 비웃는다. “겉으로는 미신이라고 욕하면서 급할 땐 찾냐”는 거다. 모 유명스님은 죽기 전에 그의 제자가 무당을 찾아와 “큰 스님이 언제 돌아가시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요즘은 급 떠오른 IT 기업 재벌들이 점을 많이들 본다. IT 재벌들은 아예 중국 도사들을 불러 건물 방향을 잡아주는 풍수를 봐달라고 부탁하고 수천만 원을 쥐어준다고도 한다. 그래서 중국 도사들은 한번 한국에 오면 3개월 동안 있다가 간다는 것이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